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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무제)

한무제(漢武帝)는 어떻게 황태자경쟁에서 승리했는가?

by 중은우시 2007. 6. 19.

 

 

한무제는 웅재대략(雄才大略)의 황제였고, 그의 일생에는 여러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가 황제에 오르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모친 덕분이다. 이 여인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한경제(漢景帝)가 즉위한 해에 어느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붉은 돼지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바로 숭방각(崇芳閣)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깨어나보니 기괴한 꿈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의 후궁인 왕지(王?)가 임신중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왕지를 숭방각으로 옮기게 하고, 숭방각의 이름은 기란전(綺蘭殿)으로 바꾸게 했다. 오래지 않아, 왕지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한경제는 이 아이에게 유체(劉?)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체"는 "돼지"라는 뜻이었다.

 

왕지는 입궁전에 이미 남편이 있는 여자였고, 아이를 낳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평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기 싫어했고, 그래서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내감을 속여 궁중으로 들어왔다.

 

입궁이후에 왕지는 명을 받아 태자 유계(劉啓)를 모시게 되었다. 예쁜 용모와 성숙한 여인의 세심함으로 그녀는 바로 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년후 왕지는 태자 유계를 위하여 딸을 하나 낳았고, 궁안에서는 그녀를 왕미인(王美人, 미인은 후궁의 직위)이라고 불렀다.

 

왕기는 연속하여 유계와의 사이에 4명의 낳는데, 첫 3명은 모두 딸이고, 네번째가 아들로 바로 "유체"이다. 왕미인은 평범한 백성의 처에서 이러한 높은 직위까지 올랐으니, 만족했을까? 아니었다. 그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인 "유체"를 위하여 황태자의 지위를 빼앗고자 했고, 그녀 자신도 "황후"의 직위를 빼앗고자 했다.

 

왕미인은 사냥개처럼 출격의 기회를 노렸다.

 

황후인 박(薄)씨는 원래 태황태후(太皇太后) 박씨의 조카손녀였다. 한경제가 태자로 있을 때, 그녀는 태자비(太子妃)가 되었고, 한경제가 즉위하면서 그녀는 순조롭게 황후에 올랐다. 한경제는 그녀에게 별다른 감정도 없었고, 그녀와의 사이에 자식 하나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태황태후가 뒤를 받치고 있으므로,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지 못했다.

 

기원전 155년의 봄날, 태황태후가 사망했다. 박황후는 자녀도 없고, 한경제의 총애도 받지 못하는데다가, 뒤를 받쳐주던 태황태후마저도 사라졌다. 오래지 않아, 한경제는 성지를 내려 박황후를 폐위시켰다. 박황후가 처참하게 황후의 지위에서 쫓겨나자 황후의 지위는 공석이 되었다. 게다가 태자의 지위는 공석이었다. 이리하여, 황태자의 자리와 황후의 자리를 놓고 다툼이 시작되었으며, 아주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고대 제왕들은 모두 후궁을 많이 두었다. 한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후궁이 많았지만, 박황후와 율희(栗姬)를 제외하고는 왕미인은 다른 사람을 눈에 두지 않았다. 지금 박황후가 폐위되었으니 강적이 하나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율희는 여전히 그녀가 황후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율희는 한경제가 태자일 때의 비(妃)였다. 용모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궁중에서 최고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경제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에 유영(劉榮)이 장남이었다. 그녀는 한경제의 총애를 받았고, 자기의 용모도 아름다우며, 자식도 많이 낳았다. 그래서 그녀는 황후의 자리를 계속 노려왔다. 여러해동안 그녀는 갖가지 계책을 써서 황후가 되고자 애를 썼고 황제를 잘 모셨으며, 조금씩 박황후를 밀어낸 것이다. 박황후를 폐위시키는 과정에서는 그녀의 공로가 가장 컸다.

 

박황후가 폐위되자 율희는 목적을 달성하였고, 자연스럽게 기고만장하게 되었다. 황후의 자리는 곧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샴페인을 빨리 터뜨렸다. 그녀는 심계가 깊은 왕미인을 너무 낮게 평가했던 것이다.

 

박황후가 폐위되고 황태자가 없었으므로, 궁중의 아들을 가진 모든 후궁은 황태자의 지위를 자신의 아들이 갖게 하려고 애썼다. 왕미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희망이 보였다. 그녀는 심계가 뛰어나, 한경제의 마음을 잘 읽었다. 한번은 그녀가 한경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첩이 유체를 임신했을 때, 신녀가 붉은 태양을 나에게 건네주어서 제가 입으로 삼킨 적이 있습니다" 한경제는 그녀에게 속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유체"를 태자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왕미인은 이 이야기를 주변의 궁녀를 통하여 온 궁중에 퍼지도록 만들었고, "유체"에게 하나의 신비한 경력을 더해주었다.

 

왕미인은 한경제가 우유부단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유영을 황태자로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그녀는 황실에서는 황권을 하늘에서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신비한 꿈을 조작해낸 것도 원래 그녀가 낳은 아들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진명천자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자기의 아들이 황태자의 지위를 노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왕미인의 이런 꾸며낸 이야기는 과연 역할을 하였다. 원래 한경제는 이미 율희에게 유영을 황태자로 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나중에 왕미인이 만들어낸 "유체"의 상서로운 이야기에 현혹되어 그는 원래의 약속을 어기려고 생각하고, "유체"를 황태자로 삼으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한경제는 율희를 아주 총애했고, 이것때문에 그녀와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과정에서 시간은 두 해가 흘렀고, 한경제는 여전히 황태자를 정하지 못했다.

 

율희는 한경제가 계속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밤이 깊으면 꿈이 많을 것을 두려워해서, 자주 머리맡에서 한경제에게 예전에 한 약속을 지키라고 재촉했다. 한경제는 율희의 공세를 견디기 힘들었고, 게다가 장남을 버리고 막내를 태자로 세우는 것도 조상의 유훈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기원전 153년에 장자인 유영을 황태자로 세운다. 동시에 3살인 "유체"를 교동왕(?東王)에 봉한다. 황태자싸움에서 패한 왕미인에게 약간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

 

자신도 황제의 총애를 받고, 아들은 황태자에 오르자 율희는 황후의 자리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히 교만방자하게 되었다. 후궁들도 모두 큰 틀이 정해지자 율희가 황후가 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명분이 정해졌고, "유체"는 평생 '왕'으로 지낼 운명인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모친인 왕미인은 비록 황후의 자리를 오랫동안 눈독들였지만, 더 이상 인연이 닿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운명은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안정된 국면을 흔들어놓은 사람은 다름아닌 관도장공주(館陶長公主) 유표(劉?)였다. 그녀의 개입은 황태자의 국면을 졸치에 왕미인에게 유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관도장공주 유표는 원래 한경제와 같은 모친을 둔 누나였고, 오누이관계은 아주 친밀했다. 유표는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들었고, 그가 하는 말은 한경제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유표는 궁내외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모든 후궁들이 그녀에게 잘보이려고 했다. 그녀가 황제앞에서 좋게 말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던 것이다. 유표는 후궁들이 그녀를 받들자, 아주 득의만면했고, 자주 이런 후궁들을 한경제가 가까이하도록 도와주곤 했었다.

 

유표는 당읍후(堂邑侯) 진오(陳午)의 처였고, 부부간에는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아교(阿嬌)였다. 유표는 아교는 아주 예뻐했다. 그리하여 그녀를 꼭 황후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녀는 한경제가 이미 유영을 황태자로 삼자, 바로 아교를 유영과 결혼시키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아교는 나중에 바로 황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율희에게 결혼얘기를 꺼낸다. 그녀는 두 아이는 배분이나 나이가 적당하므로 말만 꺼내면 바로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도 못하게, 율희는 그 자리에서 거절해버린다.

 

율희는 원래 마음이 좁은 여인이었고, 안목이 좁았다. 궁궐내에서의 투쟁과정에서 책략이나 수단이 없었고, 그저 황제가 그녀를 총애하자, 눈앞에 뵈는 것이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늘 질투심만 느꼈다. 그녀는 유표가 다른 후궁을 도와서 한경제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원한을 풀데가 없었다. 그런데, 유표가 결혼이야기를 꺼내자 율희는 바로 이 기회를 빌어 그 화를 배설해버렸다. 그녀는 한마디로 혼사를 거절했을 뿐아니라, 중매쟁이를 모욕주었다. 그러나, 자기의 화는 풀었지만, 이는 큰 실수였고, 평생의 한을 남기게 되었다.

 

사냥개처럼 언제든지 출격할 준비가 되어 있던 왕미인은 이 일을 알고난 이후에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하면 일격에 율희를 격파할 수 있고, 황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유표는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고, 이로써 율희와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린다.

 

유표는 어느 날 왕미인의 침궁을 찾아온다. 몇 마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은 아교의 혼사를 꺼내게 된다. 이 말이 나오자 마자 유표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스럽게 말했다: "나는 딸을 율희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는게, 그녀가 나를 무시했다. 이 천한 것이 내가 추켜세워주는 줄도 모르고..."

 

왕미인은 유표가 한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속으로 기뻐했다. 바로 기회를 잡아서 장공주에게 잘보이고자 했고, 자기의 계획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유표에게 웃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사실 장공주께서는 이 일로 화내실 필요없습니다. 몸이 중요하니, 홧병이라도 나면 안됩니다"

 

유표는 왕미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자 아주 감동받았다. 그래서, "황후가 폐위되었고, 내가 보기에 황상이 율희를 아끼고, 그녀의 아들이 태자가 되었으니, 나는 그녀를 위해서 그녀가 황후가 되도록 황제에게 말하려고 했는네,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가 이렇게 정리를 모르는 사람일 줄이야.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후궁을 주재할 수 있겠는가"

 

왕미인으로부터 이 말을 듣자, 장공주 유표는 바로 강하게 말했다: "화나 복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우고 폐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다. 그 천한 것이 자기의 아들이 태자가 되었으니, 자기가 황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본데, 흥. 내가 있는한, 그녀의 아들이 황제에 등극할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걸.." 

 

왕미인은 속으로 기뻐하면서, 다시 기름에 불을 붙였다: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국가대사인데,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괜히 장공주께서 끼어들지 않으시는 것이..."

유표는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일은 내가 반드시 관여해야겠다. 그녀가 자기를 세워주는 줄도 모르니, 나도 더이상 봐줄 수가 없다"

 

그녀는 돌연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왕미인에게 말했다. "아. 맞다. 내가 보기에는 아교를 너의 아들 유체에게 시집보내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비록 아교가 유체보다 나이는 좀 많지만, 괜찮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듣자, 왕미인은 정심환을 �은 것처럼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지만, 겉으로는 겸손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좋지요. 감히 바라지도 못하는 일입니다. 다만, 유체가 태자가 아니어서, 아교가 손해보지 않겠습니까?"

 

유표는 웃으면서 말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유체가 비록 지금은 태자가 아니지만, 나중에 태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 너만 원한다면, 이 일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자."

 

이렇게 장공주 유표와 왕미인은 각자의 속셈을 가지고 사돈이 되기로 했다.

왕미인은 기회를 잡아 이 일을 한경제에게 말했다. 그러나, 한경제는 "아교는 유체보다 몇살이나 많은데, 이 혼사는 적절하지 않은 것같다"고 말했다. 왕미인이 어찌 입안에 들어온 고기를 놓칠 것인가. 그녀는 이 사정을 즉시 유표에게 알렸다. 그래서 유표는 딸을 데리고 궁에 들어가 한경제를 만났다. 한경제는 누나가 찾아오자 급히 나가서 맞이했고, 왕미인도 아들 유체를 데리고 장공주에게 문안인사를 했다.

 

장공주는 유체를 데리고 가서 자기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음띈 얼굴고 그에게 물었다. "체아는 장가가고 싶지 않아?" 어린 유치는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마침 궁녀들이 전각내에 시립해 있었다. 장공주는 그들을 가리키며 농담처럼 물었다. "이 사람들을 네 처로 삼는다면, 좋겠니?" 그러자, 유체는 고개를 흔들며, 잘라서 대답했다. "싫어요"

 

장공주는 입술을 실룩이며 다시 아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교를 너에게 시집보내주면 어떻겠니?" 유체는 아교를 한참 쳐다보더니,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목소리로 "만일 아교가 나에게 시집와주면 나는 황금으로 만든 집을 지어서 아교를 살게 해줄 거예요." 금옥장교(金屋藏嬌)의 이야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런 천진한 말을 듣고는 사람들은 모두 한바탕 웃어제꼈다. 장공주는 아주 기뻐서 동생인 한경제에게 이 혼사를 승락해달라고 말한다. 한경제도 유체가 이렇게 어린데도 아교를 아주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이것도 인연인가보다 생각해서 응락했다. 그녀는 왕미인이 머리에 꽂고 있던 금비녀를 빼내서 어린 아교에게 주게 하여, 이를 정혼의 예물로 삼았다. 왕미인은 혼사가 정해지자 너무나 기뻤다.

 

왕미인은 장공주와의 혼사가 이루어지자, 유체를 태자로 삼으려는 욕망이 더욱 강해졌다. 그녀는 일부러 유표에게 말하곤 했다: "사돈께서 이렇게 우리 모자를 돌보아주시니, 우리는 평생 당신의 은혜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아교에게 미안합니다"

 

장공주는 바로 말을 받아서, "내가 있는데, 절대 그들 어린 부부들이 속상하게 만들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장공주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한경제에게 왕미인을 황후로 삼고, 유치를 태자로 삼게 하도

록 노력했다.

 

한경제는 박황후를 폐위시킨 이후에, 원래 율희를 황후로 삼으려고 했는데, 율희가 너무 교만방자하여, 거의 손에 넣었던 황후위를 놓치고 만다. 한번은 한경제가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조정과 후궁에서 둘 다 좋지 않은 일만 있어서, 마음 속으로 크게 고민하면서 궁내를 걷고 있었다. 그는 율희의 궁에 들어가서 탐색하듯 물었다. "짐이 죽은 후에 너는 모든 황자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원래 율희를 후궁의 주인으로 삼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율희는 성격이 못되어, 다른 후궁들이 낳은 자식까지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마음 속에 다시 질투심이 들끓었다. 얼굴을 굳히고, 황제가 하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머리가 단순한 여인은 한경제가 물은 말의 속뜻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한경제는 그녀가 말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겠는가?" 그러자 율희는 "나는 보모가 아닙니다. 그들도 모두 모친이 있는데, 왜 내가 돌봐주어야 합니까"라고 했다. 한경제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 일이 장공주 유표의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 즉시 궁중으로 달려가서 한경제에게 말했다. "율희는 도량이 너무 좁아서,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뒤에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욕합니다. 특히 왕미인에 대하여 질투심과 원한이 대단하여 심하게 욕을 합니다. 이런 여자가 황후가 된다면 아마도 다시 비참한 인체(人?)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장공주가 말한 인체사건이라는 것은, 한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치 즉, 여후가 척부인을 잔학하게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한고조 유방이 척부인과 그녀의 소생인 조왕 유여의를 좋아해서 일찌기 여후 소생인 태자 유영을 폐위하고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한 바 있다. 여치는 이 일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유방이 죽자, 여치가 대권을 장악한 후, 미친 듯이 복수를 했다. 여치는 척부인의 사지를 절단하고 그녀의 두 눈을 파낸 후 말못하는 약을 먹인 후, 돼지우리에 던져 버리고, 이를 "인체(사람돼지)"라고 불렀다. 척부인이 비참하게 죽어간 후, 조왕 유여의도 살해당했다. 이 일을 생각하자, 한경제는 전률이 일었다. 장공주의 말을 듣자, 그는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율희를 황후로 삼으려던 계획은 다시 미뤄두게 되었다.

 

장공주 는 황후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과 황태자를 끌어내리려는 싸움이 이미 공개화되었다고 보고, 자주 궁궐을 드나들었고, 계속하여 한경제의 앞에서 왕미인과 유체를 칭찬했다. 왕미인이 얼마나 현숙하고, 온순하며 겸손한지, 다른 후궁들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그리고 유체가 얼마나 총명하고 효성스러운지를 말했다. 왕미인은 율희가 총애를 잃은 것을 보고는 빈틈을 노렸다. 그녀는 한경제에게 아주 잘 대했고, 온순하게 행동했으며, 다른 후궁들에게도 잘 대해주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는데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명성은 후궁내에서 갈수록 높아졌다. 나중에 한경제마저도 왕미인이 확실히 현숙하고, 율희보다는 훨씬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자연히 왕미인이 얘기했던, 유체가 출생할 때의 여러가지 현상들도 다시 생각했다. 귀여운 어린 유체를 볼 때마다 마음 속에는 태자 유영을 폐위하려는 마음이 일었고, 왕미인을 황후로 삼으려는 마음이 일었다.

 

이 때 궁내에 미인들은 많았고, 한경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은 가비(賈妃)등 여러명이 있었다. 게다가 황후를 정하는 일은 황태자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일이었다. 이 황태자는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한경제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걱정이 있었다. 황태자의 스승은 두태후(竇太后)의 조카인 두영(竇영) 이었는데, 그는 황태자를 적극 지지했고, 황태자를 폐위하는데 극력 반대했다. 이리하여, 누구를 황후로 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최종 결말이 나지 않고 있었다.

 

중궁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심계가 뛰어난 왕미인은 다시 음모를 꾸몄다. 그는 극력 한경제와 율희의 관계를 이간질했다. 그녀는 장공주의 말이 이미 한경제의 마음 속에서 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경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율희를 황후로 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마음 속에 하나의 독계가 형성되었다.

 

하루는 왕미인이 몰래 궁내의 의식을 담당하는 내관에게 말했다. "황후의 위치가 비어있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하니, 내 생각에는 황상에게 권해서, 태자의 생모인 율희를 황후로 하면 될 것같은데, 생각이 어떤가요?"

 

왕미인은 율희에 대하여 나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황후로 올리려고 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고려치 않고 대국적인 입장을 고려하여서인가? 그 내관은 분명히 감동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의식을 담당하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미래의 황후에 대한 첫번째 추천인이 자기가 되면 나중에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왕미인의 말을 들은 후, 바로 한경제에게 진언했다: "아들은 어미로 인하여 귀해지는 것이며, 어미는 그 자식으로 인해 귀해지는 법입니다. 현재 유영이 이미 태자로 되었으니, 그의 모친인 율희를 황후로 책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경제는 마음 속으로 유영을 태자위에서 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 있는 상황인데, 내관 따위가 와서 다시 율희를 황후로 올리라고 하자, 이것은 분명히 율희가 뒤에서 조종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크게 화를 내며,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말이냐?"라고 하면서 즉시 수하에 명령하여 그 내관을 참수하게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한경제는 최종결심을 하게 된다. 기원전 150년 정월, 그는 태위인 주아부(周亞夫)와 태부인 두영의 진언도 무시하고, 태자 유영을 폐위시키고 임강왕(臨江王)으로 봉한다.

 

어떤 대신들은 한경제의 처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한경제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이므로 아무도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율희의 형제인 율경(栗卿)이 나서서 반대해 보았지만, 여전히 대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그는 한경제에 의하여 감옥에 갇혀 죽음을 받았다. 이후 아무도 그에 반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율희는 황후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아들의 황태자의 지위까지 빼앗기고 형제까지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한경제는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깊은 궁궐에서 적막한 율희는 가슴 속깊이 원한을 품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결국 병이 들었고, 냉궁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두달 후, 한경제는 성공적으로 자기의 동생인 양왕(梁王) 유무(劉武)가 황태제(皇太弟)가 되려는 것을 막고, 왕미인을 황후로 세우면서 그녀의 아들인 유체를 황태자로 세웠다. 이해에 유체는 막 7살이 되었다.

 

황태자는 황위계승자이다. 유체는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한경제는 "체"라는 이름이 고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고, 마침 <<장자. 외물편>>의 문구인 "심지위철(心知爲徹)"이라는 문구와 합쳐서, 그리고 "체"와 "철"이 한자발음이 비슷하므로 "유체"를 "유철"로 개명하게 한다.

 

한 평범한 집안의 여인이 궁중내의 잔혹한 권력투쟁을 거쳐 방향을 잘 읽고, 황제의 총애를 끌어내고, 기회를 놓지지 않고, 임기응변을 잘하여 최종적으로 적수를 끌어내리고 중궁의 위치를 차지하여, 황후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기나긴 중국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