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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외국인투자

인텔이 중국 대련에 25억달러를 투자하게 된 경위 (1)

by 중은우시 2007. 5. 25.

글: 왕기령(王琦玲), <<IT시대주간>> 2007년 5월호

 

국제적인 반도체칩의 거두인 인텔이 최종적으로 아시아의 첫번째 공장을 중국 대련에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3년동안 아시아의 반도체칩공장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미결이었는데, 결국 최종확정되었다.

 

만일, 강력한 내수시장과 뛰어난 제조능력은 인텔이 공장을 중국에 두기로 결정한 주요한 요소였다. 그렇다면, 왜 인텔을 대련을 점찍게 된 것일까? 대련은 세계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반도체분야에서 무명소졸이다. 반도체중심도시 상해만큼 산업기초가 튼튼하지도 못하고, 반도체의 신귀족인 성도만큼 원가측면의 장점이 있지도 못하다. 서방의 매체들도 의론이 분분하다. 그들은 프로젝트의 배후에 특수한 우대정책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대련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세계시장조사연구기관인 Gartner의 한 분석가는 이렇게 예측한 바 있다. 인텔의 대련투자계획에는 아마도 정부측의 10억달러 자금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오자, 대련시정부는 바로 부인했다. "대련이 승리하는데 중요한 것은 고효율의 서비스와 조직의 직업정신이었다"라고 하였다.

 

1992년에 아일랜드에 공장을 지은 지로부터 15년이 지나서 인텔은 대련에 장소를 정했다. 아시아시장을 더 확대하겠다는 전략은 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주 조심스럽기로 유명한 인텔이 과연 '고효율서비스'와 '직업정신'으로 인하여 수십억달러 투자를 결정했을까?

 

<<IT시대주간>>은 대련으로 가서 인텔이 대련을 선택한 배경을 알아보고자 했고, 2년 3개월의 기나긴 시간동안, 대련의 어떤 특수한 것이 전세게IT업계의 다국적기업으로 하여금 마음이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2007년 3월 26일, 인민대회당 마카오청에서 아주 융중한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세계 170여개의 매체가 몰려들었다는데서도 관심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국가발개위 부주임 장효강(張曉强), 신식산업부 부부장 누근검(婁勤儉), 상무부 부부장 요효기(寥曉淇), 요녕성 부성장 유국강(劉國强), 미국주중대사 레이드, 미국상무부장특별보좌관 캐롤라인,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관리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는 인텔의 대련공장건설에 더욱 큰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대사 레이드는 "이정표적인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이고, 아직 시작단계에 있는 중국의 반도체사업에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치켜세웠다. 중국반도체발전의 판도에서 "대련"이라는 글자가 새겨지는 순간이다. 인텔의 반도체칩공장이 건설됨으로써 부대되는 효과는 이 대련에게 있어서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대련시 신식산업국 국장인 난경위(欒慶偉)는 격동했다. 대련이 자신의 반도체사업을 갖기 위하여, 인텔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대련시 시정부는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3년간의 전략배치를 되돌아보고, 2년여간의 힘들었던 협상과 밤낮없었던 업무를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했다.

 

대련시 시장인 하덕인(夏德仁)이 인민대회당의 발표회장에서 그의 목소리는 거의 오열이었던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일은 되돌아보기도 싫다"

 

"06프로젝트" 이것은 현재 대련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이다. 당시 비밀유지를 위하여 인텔대련프로젝트에 붙인 프로젝트명이다.

 

프로젝트 번호가 "06"으로 한 것은, 먼저 인텔이 대련프로젝트를 시작한 날이 2005년 1월 6일이었고, 시정부의 대옥림 부시장이 회의를 개최한 날이었다. "6"은 또한 중국민속문화에서 아주 좋은 숫자였고, 순조롭다는 의미었다. "06"으로 명명한 것은 첫째, 인텔투자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완성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2006년에 이 투자협상을 마무리짓자는 것이었다.

 

"06"이라고 이름붙인데서 알 수 있듯이, 대련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매우 중시했다. 이 프로젝트를 따기 위하여 대련시는 여러가지로 신경써서, 서신 하나로 대련과 인텔간을 인연을 맺었다.

 

2004년 년초, 인텔이 전세계에서 공장부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식산업국은 <<인텔의 전략투자를 대련에 유치하는데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대련시 시장 하덕인의 책상위에 놓았다.

 

반도체칩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대련시는 일찌감치 2003년 반도체칩산업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비록 이런 조치를 취했지만, 대련시의 반도체칩산업의 발전속도는 더디었다. 2004년, 대련은 얼마 되지 않는 반도체칩설계기업이 있을 뿐이고, 모두 저급한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해, 심천, 소주등의 도시에 있는 반도체산업과 비교하자면, 대련은 아주 많이 뒤처져 있었다.

 

산업에 대한 선천적인 장점이 없었으므로, 우회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3월 8일, 전국양회(전인대, 정협)를 개최하는 틈을 타서, 하덕인은 인텔중국본사를 찾아갔고, 쌍방은 처음으로 가깝게 자리할 수 있었다. 하시장은 인텔에 초청장을 보내고, 인텔이 대련에 투자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장건설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최근 몇년간, 국내의 각도시의 외자유치경쟁은 아주 치열했다. 반도체산업과 같은 하이테크프로젝트는 고투입 고산출로서 더더구나 각 지역이 유치하려는 핵심프로젝트였다. 각지는 시장이 직접 나서서 대규모의 반도체칩프로젝트를 따고자 하는 일이 드문 일도 아니었다. 하덕인이 적극적으로 방문한 것도 대련의 성의를 충분히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만한 인텔에게 한번의 만남으로 충분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했다.

 

2004년 4월 7일, 인텔의 글로벌 CEO인 Craig Barret가 아홉번째로 중국을 방문했다. 두번째 들른 곳이 심양이었다. 대련시 시정부가 보기에 이는 대련을 소개할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덕인 시장은 아주 열정적이고 성의있는 태도로 서신을 썼다. 과학기술을 주관하던 부시장인 대옥림으로 하여금 Barret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4월 8일, 대옥림은 서신을 가지고 심양으로 갔다. 과연 Barret와 15분간의 면담기회가 주어졌다. 이후의 사실을 보면, 바로 이 편지가 대련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이 된다.

 

당시, 인텔은 바로 국내에 Wimax 무선브로드밴드기술시험네트워크를 깔고 있었고, 협력도시를 찾고 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대옥림은 15분의 면담기회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대련이 이 테스트에 참가할 생각임을 밝혔다. 전 동북재경대학 경제학 교수였던 대옥림 부시장은 아주 열심히 대련을 소개했다. 이 해변도시를 가 본 적이 없던 Barret는 아주 흥분한 것처럼 보였고, 대련에 대하여 아주 큰 흥미를 나타냈다. 대록림은 다시 한번 인텔에 대련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여전히 공장을 짓는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소위 "곡선구국"의 방식은 아주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 2004년 6월 9일, 인텔과 대련시는 Wimax기술을 대련에서 테스트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이는 인텔이 대련과 더욱 전면적으로 접촉할 기회를 갖게 해주었다.

 

흙속에 씨를 심기만 하면 결국은 꽃이 피는 법이다. 1차는 Wimax기술시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이는 인텔의 대련투자에 교량역할을 했다. 이후 대련시 시정부는 여러차례 인텔의 본부를 찾았고, 당시 대련시 서기이던 손춘란, 대옥림 부시장, 신식산업국 부국장 당충덕은 모두 대표단을 구성해서 미국을 갔고, 인텔 본사와의 연락을 강화했고, 인텔의 대련투자를 위하여 충분히 공을 들였다.

 

2004년 11월, 인텔의 CEO인 Barret은 아시아태평양지구를 방문하다가 인도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인텔은 오래지 않아 아시아에 반도체칩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중국과 인도는 모두 중요한 후보국이라고.

 

2004년 12월 31일, 대련시 신식산업국은 인텔중국본사의 전화를 받았다. 중국책략합작총감인 왕려는 대련이 인텔투자프로젝트의 후보도시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2개월후, 대련은 이 4억달러의 테스트공장프로젝트는 비록 기술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대련시정부가 보기에는 인텔의 투자만 끌어들인다면 얼마가 되든지간에 모두 대련의 반도체칩산업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치열한 경쟁이 뛰어든 것은 전세계의 20개도시였다. 중국내에도 대련과 경쟁하는 곳이 4곳이었고, 강자들이 모두 모였다.

 

산업규모가 거대한 상해, 7대국가급 IC설계산업화기지로 인정받는 성도, 서안, 산업실력이 비교적 약한 청도도 유명한 기업들이 뒤를 받치고 있어서 양호한 시장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국내도시들의 공동적수인 인도였다.

 

인도는 반도체칩설계에서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인텔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인텔은 인도에 IC설계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2004년에만, 인텔은 인도의 뱅갈로르 IC설계센터의 인력을 50% 증가시켜 2400명에 이르도록 하였다. 2007년에 이 설계센터는 3000명의 규모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싸움에서 인도가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다. 경쟁적수의 프로젝트투자를 위한 진전상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난경위는 사람을 상대방도시들에 보내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오히려 자기의 발등을 찍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인텔이 알게 된다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결국 난경위는 이런 생각을 접고, 착실하게 스스로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갔다.

 

2005년 6월의 어느 날, 인텔 중국총재 진위정이 돌연 대련시를 방문했다. 시정부 회의실에서 진위정은 인텔프로젝트는 이미 부지가 정해졌고, 대련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유지를 위해서 당시 회의실에는 하덕인과 대옥림만 있었다. 비록 실망이 컸지만, 여전히 이 소식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1년여동안 열심히 준비하였는데, 대련의 반도체칩프로젝트는 이렇게 조용히 중단되게 생겼으니, 두 사람이 받은 실망은 충분히 예상이 간다.

 

그러나, 7월에 다시 전기가 마련된다. 인도의 신식산업부장관인 Dayanidhi Maran은 2005년 5월 4일, 대외적으로 사전에 인텔의 테스트공장을 인도에 지을 것이라는 소식을 공포하고 만다. 이것은 쌍방의 비밀유지협약을 위반한 것이었고, 강경한 인텔은 인도공장건설프로젝트를 중단해 버렸다.

 

인도프로젝트가 의외로 유산되자, 세계는 인텔의 엄격함과 가혹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는 대련에게는 다시 기회가 되었다. 더구나 이번은 더 좋은 기회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규모는 4억달러가 아니라, 25억달러였던 것이다. 만드는 것도 8인치의 테스트공장이 아니라, 첨단의 12인치 반도체칩생산공장이었다.

 

이것은 인텔이 아시아에 건립하는 첫번재 공장이기도 하다.

 

기회는 두번 왔다. 그러나 운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인텔중국지구 대외사무총감이 Allen Lu가 보기에, 대련이라는 도시가 그를 끌어들이는 것은 푸른 바다, 깨끗한 공기, 가지런한 도로이외에 현지인의 솔직함과 정부관리의 적극적인 태도였다.

 

Allen은 최초로 대련프로젝트에 참여한 인텔직원이다. 2005년 1월 17일, 인텔의 제1차 투자시찰단이 아무 사전설명도 없이, 대련개발구를 찾아왔다. Allen은 바로 이 시찰단의 핵심인물이었다고, 대련의 인프라시설에 대하여 현지조사를 한 것이다. Allen과 동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계속 물었다. 사람들이 대답하는 것에서 대련은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Allen은 지금까지도 2006년 7월 10일저녁을 기억한다. 인텔과 대련이 최종합의서를 체결하기 전날, 대련시와 계약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기 위하여 인텔의 일행이 대련시정부를 떠날 때는 이미 밤9시가 넘었다. 당시, 전체 정부빌딩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거의 모든 사무실이 불이 켜져 있었다. 이는 Allen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2005년 3월, 또 다른 인텔의 간부들이 미국에서 날아왔다. 여름, 또 다른 사람들이 대련으로 왔다. 매번 서로 다른 사람이었고, 서로 다른 직급이었고, 서로 다른 목적이었다. 각각 인력자원, 교육환경, 인프라시설, 주변환경을 조사했다. 매번 인원수도 달랐다.

 

7개월에 걸친 조사를 끝내고, 800여개의 문제와 1200여항목의 질문서로 인텔은 모든 정보와 데이타를 확보했다. 이는 모두 데이타베이스에 들어갔고, 다른 도시의 자료와 하나하나 비교하기 시작했다.

 

2005년의 어느 날, 경제기술개발구를 떠난지 1개월도 되지 않은 인텔회사의 시찰인원이 돌연 개발구로 되돌아 왔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구의 담당인원이 그들을 예정부지인 개발구 동가구가도로 데려갔다. 인텔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은 저번에 왔을 때는 민가가 있던 거주지역이었는데, 이 때는 이미 민가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완전히 평지화시켜놓은 넓은 땅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짧은 1개월의 기간내에, 어떻게 이런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가? 자세히 물어본 후에 미국측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루빨리 인텔 프로젝트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대련에서는 개발구의 여러 부서가 협력하여, 최단기간내에 300여명의 주민을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인텔은 "동가구속도"에 감동했다. 이런 속도의 배후에는 대련정부의 고강도의 업무와 참을성있는 동원이 있었던 것이다.

 

인텔을 놀라게 한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1일전의 통지만으로 인텔회사가 개발구를 시찰하게 되었을 때도, 개발구는 밤을 세워 자료를 준비했다. 자료의 인쇄품질과 속도를 위하여 업무인원은 인쇄공장에서 하룻밤을 잠도 자지 않고 지켰다. 둘째날 그림이 포함된 책자가 시찰단원의 눈앞에 제공되었고, 인텔 시찰단은 놀라면서도 감동했다.

 

대련사람들이 보기에, 민첩하면서도 집행력이 있는 회사를 데려오려면, 인텔도 놀랄만한 속도와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5년 3월, 인텔의 사람들이 대련으로 와서 현장을 살펴보았다. 프로젝트팀이 제시한 기초설계도면을 본 후에, 소프트카피를 요구했다.

 

시찰단은 오후에 현장을 본 후에 바로 공항으로 가게 되어 있어서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의 시찰이 끝난 후 인텔 사람들로 하여금 개발구의 은범호텔에 있는 화장실로 안내한 후에 빈 시간을 이용하여, 대련경제기술개발구관리위원회 부주임인 왕연휘는 전화로 어레인지하여, 시찰단원들이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타기 직전에, 구운 디스크를 그들의 손에 쥐어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속도가 고효율을 중시하는 인텔로 하여금 한번 또 한번 놀라고, 감동하고, 믿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대련이 아주 좋은 점수를 얻었다. 2006년 2월 7일, 대련은 인텔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도시가 되었다. 결과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은 대련의 고효율에 탄복하는 동시에, 계속되는 노력에서 느껴지는 진지함에도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