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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일본 전쟁배상거부의 배후

by 중은우시 2007. 4. 4.

글: 유앙(劉仰)

 

제2차세계대전후, 독일은 그들이 약탈해온 대량의 재물과 예술품을 반환했고, 피해자들에게 550억달러이상이 배상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나치가 당시 많은 재산을 스위스은행에 감춰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스위스의 일부은행가들은 정색을 하고 부인했다. 어떤 평론가들은 은행가들이 탐욕때문에도덕을 버렸다고 비난했다. 왜냐하면, 나치의 재산은 스위스은행에 숨겨져 있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이것은 바로 아무도 찾지 않는 재산이 되고, 주인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거액을 당신 집에 놔두었는데, 다음날 그가 죽은 것과 같다. 이 돈을 네가 내놓지 않거나 모른척 하면, 증거가 없는 한, 바로 네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스위스은행의 규칙중 하나는 이렇다. 우리의 사업은 바로 너를 위하여 돈을 보관해주는 것이다. 스위스은행과 유사한 많은 은행에는 전쟁전에 많은 유태인들이 개인재산을 예금해두었다. 전쟁기간동안 600만의 유태인이 사망했다. 많은 유태인 구좌는 전후에 죽은 구좌가 되었고, 이들 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그저 은행가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유럽의 일부 유태인기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전쟁과 관련된 돈과 재물을 추적하고 있고, 은행가의 양심을 추궁하고 있다.

 

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 완전히 다르다. 2차대전후 독일이 각국의 재물을 반환한 선례에 따라 그리고 피해자의 재산을 반환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한 등등의 방법을 참조하여, 아시아국가들은 이렇게 물을 권리가 있다. 일본은 도대체 2차대전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재물을 약탈했는가? 아시아의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일본은 2차대전기간동안, 아시아 각국의 황금, 주보, 문화재, 골동, 전적등등의 재물을 엄청나게 약탈했다. 어떤 증거에 의하면,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는 기간동안, 도굴한 조선의 고묘가 5000개이고, 약탈당한 문화재는 부지기수라고 한다. 1965년, 한국은 일본에게 확인가능한 문화재 4432건을 반환해달라고 했으나, 일본은 그저 1432건만 반환했다. 그리고, 이 반환에도 전후 30년의 시간이 들었다.

 

일본은 도대체 중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재물을 빼앗아갔을까. 아마도 통계를 잡기도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9상자의 무가지보인 북경원인화석이 정말 일본인에게 도난당해 보관되고 있는 것일까? 부의는 이렇게 인정한 바 있다. 자금성에 있던 마지막 기간동안 그의 동생 부걸은 연속반년동안 매일 한꾸러미의 고궁안의 문화재를 들고나갔다고. 부의는 또 인정했다. 그가 "만주국"으로 가져간 문화재에는 1000여폭인데, 200여개의 벽걸이서화, 그림, 그리고 200여본의 송나라 진본출판물, 절판서가 있었는데, 나중에 모두 일본인에게 넘겨주었다고. 이렇게 약탈당한 재물은 현재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왜 유럽은 나치가 약탈한 황금과 재물을 회수했는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약탈한 황금과 재물을 회수할 수 없었을까? 이 문제에 관하여는 한권의 책을 소개하는 편이 낫겠다.

 

그 책은 바로 <<황금사무라이 --2차대전 일본이 약탈한 아시아의 거액황금내막>>이다. 작자는 두 명의 미국인으로 스털링 시그레이브와 페이지 시그레이브이다. 그들은 이 책을 쓰기위하여 18년의 시간동안 자료를 수집했다. 번역자는 왕선이다.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황금은 현재 세계의 최대 비밀의 하나이다. 전세계에 모두 얼마의 황금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정부도 그들이 보유한 황금수량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1950년, 미국은 일찌기 황금감사결과를 발표했는데, 8000톤의 황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승인했다. 이후 세계에서 더 이상은 황금총수에 대한 어떤 데이타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세계황금에 대하여 추정하는데 차이가 크다. 1조달러에서 200조달러까지 각양각색이다. 작자는 이 책을 통하여, 일본이 2차대전때 도대체 아시아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황금을 약탈했는지는 비밀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다. 당연히 이 비밀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작자는 이차대전기간동안, 일본은 아시아각국에서 진공청소기처럼 대량의 재물을 흡입했다. 그중 황금이라는 한 항목만 보더라도, 적어도 당시의 가격으로 환산하여 수십억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현재 이것은 50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작자는 일본인이 남경에서 30만의 평민을 죽이는 죄행을 저질렀을 뿐아니라, 약탈한 것은 개략 6000톤의 황금이고, 그 중에는 죽은 사람의 금이빨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쟁후, 미국은 일본이 약탈한 중국의 고대서적을 통계낸 바 있다. 미국인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일본은 모두 300만권이상의 진본과 수고(手稿)를 중국각지의 도서관에서 약탈해왔다고 한다. 전쟁후 반환한 수량은 6%를 넘지 않으며, 일본의 "스미토모"는 전쟁기간동안 전문적으로 중국의 청동기를 약탈했다. 작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암시한다. 항일전쟁기간동안 실종된 북경원인화석은 아마도 일본이 현재 황국의 한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의 작자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한 후, 싱가포르 중국계들에게 5000만일엔(당시가격으로 약 1200만달러)을 일본국왕에게 내고 죄를 용서받으라고 했다. 이를 일본국왕에 대한 생일선물로 하자는 것이었다. 2차대전기간동안 일본국왕의 개인재산은 매년 이자만 5000만달러에 달하였다. 전쟁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본국왕의 개인재산은 1943년부터 중립국으로 이전되었고, 전쟁후에 확인된 수량만 1억달러에 달하였다. 그러나, 일본국왕은 전후에 표면적으로는 공손하게 행동하고, 아주 가난한 것처럼 행동했다. 일본정부도 이에 장단을 맞추어 매년 2.2만달러의 연봉을 주었다.

 

작자는 일본이 전쟁기간동안 아시아의 각국에서 약탈한 재물은 그 중에 상당한 부분이 2차대전때 이미 일본으로 운송되었고, 각각 스위스, 남미, 포르투갈, 스페인, 바티칸의 여러 은행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산보관된 은행의 구좌는 100개가 넘는다. 지금까지, 바티칸은행은 나치재산과 관련한 문건만 비밀해제하였고, 일본과 관련한 문건은 여전히 비밀로 하고 있다.

 

2차대전후기, 미국이 일본의 해상통로를 봉쇄하였으므로, 일본이 최후로 발악할 때, 미친듯이 약탈한 재물을 일본으로 후송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침몰한 "아파환(阿波丸)"호는 싱가포르에서 출발하였는데, 미국잠수함에 의하여 중국근해에서 침몰되었다. 현재 이 침몰된 배를 건져낼 계획으로 있는데, 거기에는 대량의 재물이 실려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자는 바로 2차대전후기에 미국이 해상봉쇄하였기때문에, 일본은 할 수없이 대량의 재보를 동남아국가에 그대로 매장해두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필리핀이라는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처음에는 일본에 비교적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신사를 철거한다든지, 일본국왕제를 폐지하려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1950년경에 미국의 태도는 돌연 바뀌었다. 일본에 대하여 크게 관용을 베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평가하면서, 일반적으로 미국이 냉전의 필요에 따라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고 하며, 일본을 강력한 동맹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어서 그랬다고 본다. 그러나, 이 책의 작자는 또 다른 보충해석을 내놓는다. 냉전의 필요이외에, 미국은 일본이 약탈한 아시아각국의 재물에 탐욕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과 공모하여 이 거대한 재산을 나누어가졌다는 것이다.

 

1950년전후, 미국은 일본이 이미 돈을 다 썼으므로, 전쟁배상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영국마저도 불쾌하게 생각했다. 영국은 일본이 대량의 전쟁기간동안 약탈한 황금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알선하에 영국도 결국 타협했다. 현재 조사된 외교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1951년 미국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화협정중에 황금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에 동의한다". 이 평화협정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샌프란시스코평화협정"이다. 이것은 전후 각국의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의 기본원칙을 정한 것이다. 이 샌프란시스코평화협정은 기본적으로 전후 아시아각국이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모든 문을 막아버렸다. 이외에 주의할 하나의 사실은, 2차대전종결후, 나치전범재판에 대하여 동맹국은 공동으로 진행하였는데, 일본전범재판은 미국이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다. 미국군인의 간을 요리로 만들어 먹던 일본 고급전범도 미국은 용서해 주었다.

 

일본은 전후에 본국국민에게 지급한 전쟁보상금은 4000억달러에 달한다. 그 중에는 기소된 전범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했는가? 미국은 2차대전기간동안 일본교민을 억류했다. 전후에 미국은 1인당 2만달러의 보상을 해주었다. 이런 행위는 보기에는 인도적이다. 그러나, 대비해보면, 일본이 붙잡은 미국, 영국의 전쟁포로는 어떤 사람은 중노동에 종사하였는데도 일본의 배상은 받지 못했다. 이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은 왜 본국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는가? 그 이유는 샌프란시스코평화협정에 따르면, 일단 어느 국가의 피해자의 보상을 허용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동일한 권리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미국에 감금된 교민들은 일본의 피해자에 속하지 않으므로 보상을 받았다. 만일 미국이 배상을 요구한다면, 아시아, 유럽, 대양주 모두 48개의 일본으로부터 피해본 국가의 국민들이 모두 일본에 배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전쟁기간동안 약탈한 아시아의 재물은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고, 미국이 나눠먹은 추악한 행위도 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인가?

 

미국은 샌프란시스코평화협정을 이용하여 일본이 전후에 알거지가 된 것같은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일본과 전쟁기간동안 아시아각국에서 약탈해온 장물을 나눠가졌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공동의 비밀이다. 이것은 또한 미국이 일본은 전쟁배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거나 그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은 진정한 원인이다. 미국이라는 공범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각종 전쟁피해배상요구 앞에서 기세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후에 일부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의 정계요인이 나서서 이를 말렸다. 예를 들어, 미국의 주일대사등이 그들이다. 이 책의 작자는 이런 배상을 저지하는데 참여한 미국의 정계요인은 모두 각종 경로를 통하여 일본의 기업으로부터 거대한 뇌물을 받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스미토모, 미쓰비시등.

 

2002년이 되어, 미국국회는 비로소 수정안을 하나 통과시킨다. 미국국무원이 일반인이 일본인이나 일본기업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도록 된다. 그러나, 꼬리가 하나 붙었다. 이 민간인은 일본에 의하여 강제노역을 당한 미국포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후에 개별적인 중국노동자들도 일본의 제한적인 배상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그 때 피해를 입은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누가 일본에 배상요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전에 일부 미국의원들이 일본이 위안부에 배상하는 의안을 올린 적이 있다. 금방 일본과 미국정부가 손잡고 말살시켰다. 작자는 말한다. 미국은 유럽에서도 대량의 나치재산을 숨겼고 자기 것으로 했다고. 유태인의 재산에 대한 추적조사는 미국정계요인이 유태인의 지지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주은래 총리가 당시 일본이 전쟁배상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동의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그러나 실질은 중국은 먼저 미국과 양해를 이루었다. 미국의 강력한 압력하에 중국은 부득이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일본과 수교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국가전체적인 고려에 의하여 중국은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벼랑 끝까지 몰 수가 없어다. 중국이 일본배상을 끝까지 우긴다면, 그것은 미국의 추악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겠다는 것과 같았다.

 

이 책의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전쟁기간동안 많은 재산을 약탈했고, 그중 상당한 일부분은 전후에 미국이 지배했으며, 이 돈으로 비밀기금을 만들었다. 그 후 이 돈은 세계각지의 친미정치활동을 지원하는데 쓰였다. 여기에는 일본자민당정권을 도와주고,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포함된다. 이 거대한 기금은 지금까지도 세계정치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작용을 하고 있다.

 

필리핀의 전대통령 마르코스의 개인재산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미국인은 전혀 발표한 적이 없지만, 추정에 의하면 100억-1000억달러사이라고 본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재산을 모았을까? 작자는 마르코스가 재직기간동안 당시 일본이 필리핀에 숨겨둔 황금재보를 발견했고, 이것이 바로 마르코스가 금방 재산을 부풀린 진정한 이유라고 한다. 마르코스는 독재수단으로 3기연속 집권했다. 그후 군사적인 통제를 통하여 계속 연임했다. 미국의 지원외에 그는 필리핀에서 계속 일본인이 남긴 황금을 찾았고, 그는 확실히 많이 찾아냈다. 작자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마르코스는 그 중의 한 곳에서 가치 80억달러의 금괴를 찾았다고 한다.


작자는 이런 옛날 일본이 남긴 황금을 어떻게 갖고,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하여 욕심이 많은 마르코스와 욕심을 가진 미국간에 갈등이 발생했고 마침내 마르코스를 하야시키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키노부인은 이전에 계속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의 동의가 없더라면, 그녀는 미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힘들었을 것이고, 민중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코스 하야후에 다시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미국 재정부가 최종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마르코스의 이 황금보유증은 '위조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위조된 황금보유증을 가지고 있다? 필리핀이 일본이 숨긴 황금을 캐냈다는 것은 완전히 감추기가 어려웠다. 마르코스는 일찌기 황금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던 일부 현지인들을 협박했다. 마르코스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 한 재판에서 마르코스는 피해자에게 600만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그러나, 마르코스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지에 대하여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의 미망인도 현재 여전히 미국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이 책의 작자는 또 하나의 견해를 나타낸다. 전세계의 황금이 부족하고, 다이아몬드가 부족하다는 개념이다. 이는 모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이다. 목적은 황금의 가격을 높이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전세계의 황금수량은 영원히 비밀이다. 그래서 그것은 소수인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일찌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어본 바 있다. 일본이 전후에 신속하게 재기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겟느냐고. 나는 먼저 예를 하나 들었다. 장개석이 대륙을 도망치기 전에 금원권을 이용하여 대량의 황금을 긁어모았다. 이는 대만의 이후 경제발전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일본이 긁어모은 황금과 재보는 전체 아시아에 걸쳐있고, 수량도 장개석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미국인도 일본인과 비밀리에 장물을 나눠가진 후, 일본은 아시아각국이 수백년, 수천년 쌓아온 재산을 가지고, 미국과 한패거리가 되어서, 신속하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쟁으로 인하여 파산한 것이 아니다. 1952년, 전쟁이 끝난 7년만에, 일본경제는 이미 전쟁전의 수준을 초과했다.

 

나치의 대학살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60년의 기간을 들여 스위스은행에 숨겨진 자산을 찾아냈다. 아시아의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까? 아시아의 피해자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으려면 핵심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자유, 민주의 아래에 자본가의 도덕무시, 정의농락의 탐욕이 숨겨져 있다. 이책은 비록 거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