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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중국역사상의 벽(癖)

by 중은우시 2007. 3. 30.

과거에 벽(癖)이 벽인 이유는 세 가지 특징때문이었다: 편이(偏異), 극치(極致), 은밀(隱密).

 

남북조시대에, 유송의 관리중에 유옹(劉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맹령휴(孟靈休)를 만나러 갔는데, 마침 맹령휴는 몸에 난 종기를 치료하고 있었으며, 딱지가 앉았다가 시간이 되어 침대에 떨어져 있었다. 유옹이 이를 보고는 아무 거리낌없이 딱지를 주워서 먹어버렸다. 맹령휴는 놀라서 온몸에 식은 땀을 슬렸다. 원래 유옹은 상처난 다음에 앉은 딱지를 먹는 괴벽(怪癖)이 있었다. 그는 이 딱지의 맛이 '전복'과 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맹령휴가 나중에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의하면, 그날 그는 다 앉지도 않은 딱지를 떼어 유옹에게 주느라고 온 몸에 피가 났다고 했다. 이것은 '벽'의 하나의 특징 즉 '편이' : 일반인들의 행위, 애호, 관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는 좋아하는 물건에나 행위가 무든 "편이"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도 있다. 송나라때, 조광윤의 총애를 받았던 대신 사경인(謝景仁)이 있었다. <<송사>>에 따르면 그는 청결을 지나치게 따졌다. 그의 신분이나 지위로 봐서 집안의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했던 점은 그가 침을 뱉을 때, 절대로 땅바닥에 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를 따르던 아랫사람의 몸에 뱉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아주 아랫사람을 아꼈다. 그의 침을 받은 아랫사람은 하루를 쉬면서 옷을 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아랫사람들은 서로 그의 침을 받으려고 다투었다고 한다. 이것은 '벽'이 되려면 행위가 극치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이' '극치'와 관련있는 세번째 특징은 '은밀'이다. 이것은 공개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중국어에 당당히 많은 '벽'이 아주 돌려서 표현되고 있다.

 

"단수지벽(斷袖之癖)" 또는 "용양지벽(龍陽之癖)"은 동성애를 가리킨다.

"계상지벽(季常之癖)"은 공처가를 가리킨다.

"반룡지벽(盤龍之癖)"은 도벽을 가리킨다.

"연하지벽(煙霞之癖)"은 아편을 피우는 것을 가리킨다.

 

'편이', '극치', '은밀'의 세가지 특성으로 인하여, 과거 중문사전에는 '벽'에 대한 정의를 "기호의 병'이라고 하였다. 사전속에서 '벽'이라는 글자가 출현한 것은 남조 양나라때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옥편>>에서 였고, 그 해석은 이랬다.

 

"벽(癖): 식부소, 유두중야(食不消 留中也)"

 "벽 : 먹어도 소화되지 않고 뱃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당시는 '소화불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어떤 사람들은 '벽'을 이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문제' '기호'라는 의미호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전에서 즉 명나라때 매응조의 <<자회>>에는 벽에 대하여 '기호의 병(嗜好之病)'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중국어에 "벽"자는 많이 쓰인다. 사전을 뒤져 보아도, "서화벽" "매벽" "국벽" "죽벽" "차벽" 이런 벽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벽은 누구나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고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21세기인 지금은 "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대만교육부의 <<국어사전>>에 의하면 "벽"에 대하여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는 "소화불량" 또 하나는 "습성, 기호"라는 것이다. 여기에 의하면 그저 '습성, 기호'라고 하고 있고, '어떤 병적인 것'과는 관계시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