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수상동지:
1957년 12월 16일과 25일 두번에 걸쳐 보낸 서신은 이미 받아보았습니다.
서신중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철수하는 문제에 관하여 제출한 두 가지 방안을 우리는 이미 자세히 검토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적극적으로 외국군대가 조선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하고, 그 후 중국이 조선정부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비교적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12월 16일 서신에서 제출한 방안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안에 대하여, 우리는 일부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겠습니다. 이 의견은 우리가 이미 소련정부와 협의하였으며, 그들도 완전히 동의하였습니다. 이제 이 의견을 아래와 같이 알려드리니, 당신과 조선노동당중앙이 타당한지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최고인민회의는 유엔에 서신을 보내서, 유엔군이 조선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확실히 좋은 점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여야 소련이 유엔의 성원국으로서 유엔내에서 주장을 하고 유엔이 행동을 취하도록 하기 편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결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체 유엔국을 우리의 적대국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침략군대를 파견하여 연합군을 구상한 것은 소수 유엔의 성원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가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하기를 바랍니다. 성명에는 조선과 중국측이 1954년 제네바회의에서 조선문제에 대한 기본주장에 근거하여 아래와 같이 건의를 제출합니다.
(1) 유엔군과 조선인민지원군은 동시에 조선에서 철군한다;
(2) 조선남북쌍방은 대등한 기초하에 협상을 진행하고, 남북조선간의 경제와 문화관계를 건립발전시키며, 전조선의 자유선거를 준비한다;
(3) 외국군대가 남북조선에서 완전히 철군한 이후의 일정기간동안 중립국기구의 감독하에 전조선의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가 공개성명을 발표한 이후, 중국도 이어서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정부의 주장을 지지할 것이며, 정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와 협상하여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표할 것입니다. 동시에, 유엔군측에도 각국정부에서 동일한 보조를 취해주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3. 소련정부는 이어서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 중국정부의 성명을 지지합니다. 유엔군측면의 각국정부는 마땅히 중국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또한 관련국가의 회의를 소집하여 조선문제를 토론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건의합니다.
4. 금년 2월중으로, 주은래 동지가 중국공산당을 대표하여 조선을 방문하는 기간에, 조선, 중국정부는 공동성명으로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중국인민지원군의 동의를 받았고, 중국인민지원군은 1958년 년말이전에 단계별로 나누어 조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공동성명에서 조선, 중국의 양국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국인민지원군은 유엔군보다 먼저 조선에서 철수하는데, 이는 긴장국면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남북조선 쌍방이 대등한 기초상에서 조선의 평화통일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엔군은 마찬가지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중국인민지원군도 성명을 발표하여, 중국인민과 조선인민은 순망치한의 관계이며, 어려움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다.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철수하는 것은 절대 조선 중국인민의 이익을 저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승만과 미국이 다시 도발하여, 휴전선을 넘어온다면,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정부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다시 한번 조선인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격퇴할 것이다라고 발표할 것입니다.
5.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철수하는 시간표에 대하여 우리는 초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1) 1958년 3월 내지 4월, 조선 중국 양국정부가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1/3을 철수함. 나머지 2/3는 모두 제2방어선으로 내리고, 조선인민군이 제1방어선을 접수함.
(2) 1958년 7월 내지 9월, 두번째 2/3까지 철수함.
(3) 1958년 년말이전, 마지막 1/3을 철수함.
6. 조선중국양국정부가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중립국감시위원회의 양측방면은 아마도 다시 한번 감시위원회를 철수할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유엔군이 아직 철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그들에게 최소한도의 인원이 판문점에 남아 감시업무를 집행하여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경우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상의 여러 의견에 대하여, 당신들도 검토한 후 회신주기 바랍니다.
모택동
1958년 1월 24일
[중앙당안관에 보존하고 있는 원본을 근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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