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울(吳蔚)
친구와 바깥에서 만날때, 자주 상대방이 늦게 도착하는 경우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보통 책을 한권 들고 같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에 읽을 것이 있으면 마음이 그다지 조급하지 않게 된다. 최근에 가장 자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이다.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하나이다. 이미 읽었지만, 들고다니면서 반나절을 뒤적이게 되는 그런 책에 속한다. 책의 작자인 기효람은 TV드라마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니,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열미초당필기>> 자체는 전설적인 내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열미초당필기>>는 이미 원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중의 원인은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구음진경>>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다.
<<열미초당필기>>의 원래 이름은 <<열미필기>>였다. 바로 기효람이 문진각(文津閣)에서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수할 때,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비본진적 및 금서중에서 구해서 기록했던 것이다. 어떤 곳에는 자기의 평석주석을 달아놓았다. 이것은 중화문화의 드넓은 사료의 정화를 필기한 것이다.
청나라때는 문자옥(文字獄, 글을 잘못써서 처벌받는 것)이 아주 심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가는 해를 입게 되었다. 기효람과 같은 건륭제가 아끼던 대신까지도, 일찌기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하고, 멀리 신강에 3년여 유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귀한 문화자료를 보전하기 위하여, 차마 비본진적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앉아서 보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 필기를 기록해둔 것이다.
기효람이 사사로이 <<열미필기>>를 기록해둔다는 사실이 화신(和珅)에게 발각된 후, 그는 바로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 다행히 왕정(王丁)이라는 의사(義士)가 자신의 무공을 바탕으로 화신이 수색하기 전날 밤에 문진각에 숨어들어, 이 <<열미필기>>를 꺼내어 비밀리에 야외의 쌍탑산에 묻었다고 한다. 기효람은 이로써 멸문지화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바로 이 책을 묻었던 왕정이 돌연 사망함에 따라, 이 <<열미필기>>는 사라지게 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열미초당필기>>는 바로 <<열미필기>>가 사라진 후 기효람이 기억에 의존하여 다시 써서 남겨둔 것이다. 옛날에 읽은 것을 다시 기록하고 기억이 나는대로 글로 써서 십년만에 비로소 이 책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기록한 내용은 원래의 책내용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내용도 원래의 필기만큼 풍부하지 못하다. 이 책음 호귀신괴(狐鬼神怪)의 이야기를 위주로 하였는데, 문필이 담아질박하여, 당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매번 원고를 탈고할 때마다, 서로 다투어 배껴갔다고 하며, 특히 상류사회에서 널리 전해졌다고 한다. 일거에 <<홍루몽>> <<요재지이>>와 나란히 인기를 얻었었다.
<<열미필기>>를 잃어버린 것은 중국문화사상의 중대한 손실임에 틀림없다. 청나라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건륭제가 <<사고전서>>를 편수하여 중화문화를 널리 드날리겠다고 말한 배후에는 또 다른 음험한 목적이 있었다. 이것은 바로 "우금어훼(寓禁於毁)"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미명하에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훼손시키려는 목적을 실행하였던 것이다. 기효람이 감히 그러한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살신지화를 각오한 것이다. 그는 일부 진귀한 사료를 남기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분위기에서는 매우 용감하고 대담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열미필기>>의 원고는 지금도 남아있는지 사라졌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의 일들중에 이런 것들이 많다. 유감스러운 것은 영원히 유감이다. 아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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