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람들은 제지술의 발명자는 동한(東漢) 때 궁중의 환관인 채륜이라고 믿어왔다. 이 주장이 처음 나타난 것은 남조 송(宋)나라때의 범엽(范曄)이 지은 <<후한서(後漢書)>>이다.
그러나, 갈수록 많은 사료들은 이미 서한(西漢)시대때 제지술은 이미 중국에서 사용되었고, 동한때의 채륜에 이르러 비로소 발명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1933년, 고고학자인 황문필은 신강의 뤄부쭤얼 한나라때의 봉수대 유적지에서 서한때의 마지(麻紙)를 발견했다. 1957년에는 사람들이 섬서성의 한 서한고묘에서 한무더기의 종이를 발견했는데, 모두 88조각이었다. 이는 현재의 신문지보다 약간 두터운 것으로서 일종의 마섬유지(麻纖維紙)였다. 1973년과 1974년, 다시 감숙에서 두 조각의 서한시대 종이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대마섬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마,선혼합섬유지였다. 1986년, 감숙성에서 출토된 한 장의 종이지도는 지면이 편평하고 윤이 났다. 가는 먹선으로 그렸다.
1990년에서 1991년까지 출토된 24조각의 마지중에서 4장에는 글씨가 있었다. 이로써 추단해보면 서한시대에 이미 종이가 있었을 뿐아니라, 종이에 글까지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에서는 이미 서한시대에 종이를 만들 줄 알았으며, 채륜은 동한시대에 제지술을 발전시킨 공로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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