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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일종의 역사논리

by 중은우시 2007. 3. 7.

글: 왕약문(王躍文)

 

맹자(孟子)는 아성(亞聖)으로 존경받으며, 후세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맹자와 동시대에 대학자인 추연(鄒衍)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소진(蘇秦)도 다행히 6국을 엮어서 합종책으로 진나라에 맞선 일때문에 후인들이 기억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당시 이름을 날린 것은 추연, 소진과 같은 인물이었고, 맹자는 아주 홀대받았다는 것을. 당시는 제후들이 할거하던 시대였고, 전쟁이 빈번했으며, 학문있는 사람들은 제후들에게 유세를 하고, 자기의 학설을 앞다투어 팔면서, 세상과 백성을 구제하고자 했다.

 

가장 인기있던 것은 당연히 추연이었다. 그가 양(梁)나라에 갔을 때는 양혜왕(梁惠王)이 직접 교외까지 영접을 나왔다; 조(趙)나라에 갔을 때는 평원군이 몸을 굽혀 그와 나란히 걸었고, 자기의 옷으로 그가 앉을 자리를 닦아주었다; 연(燕)나라에 갔을 때는 연소왕(燕昭王)이 국경까지 마중나왔을 뿐아니라, 친히 그가 걸을 길을 청소하기까지 하였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써 이처럼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추연이 얘기하는 음양현묘지술(陰陽玄妙之術)에 대하여 각 군주들이 들으면 고심막측하게 느껴졌고, 그를 거의 신인(神人)처럼 대해서 그런 것이다. 소진이 얘기하는 공벌(攻伐)의 도리도 바로 제후들의 나라를 지키고 강하게 하려고 하거나 천하를 독패하려는 요구조건에 맞아떨어졌다. 소진은 그래서 여러 나라의 제후들로부터 후하게 대접받았고, 몸에는 여섯 나라의 재상도장을 지니고 다녔다. 중국역사상, 추연, 소진처럼 인기있던 선비들도 몇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맹자는 아주 불쌍했다. 추연을 친히 교외까지 나가서 영접했던 양혜왕은 맹자를 보자, 선생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저 그를 "수(叟)" , 즉, 늙은이라고 불러주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당신이 불원천리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방법으로 우리나라를 이(利)롭게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공자의 수제자로서 어찌 "이(利)"를 입에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대답하기를 "왜 이익을 얘기하십니까. 인의(仁義)만 있으면 됩니다" 라고 하면서 맹자는 인의의 도에 대하여 한바탕 얘기하고 양혜왕에게 인의를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양혜왕에게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그저 맹자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은 역사이다. 만세의 존중을 받는 것은 추연도 아니고, 소진도 아니다. 오히려 당시 무척이나 홀대받던 맹자이다. 현세에 인기를 누리는 것이 만세의 존중을 받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역사의 논리가 된다. 현세는 항상 세력과 이익을 따진다. 그리하여 성현들은 항상 고난을 겪게 된다. 바로 당현종이 시에서 감탄한 것처럼 "夫子何爲者, 棲棲一代中(공자가 어떤 사람인가? 그저 일생동안 바삐 돌아다녔을 뿐이다)"인 것이다.

 

공자도 좋고, 맹자도 좋다. 그들이 살던 세상에서는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운명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현실에서의 사람들은 영원히 근시안적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장사재주가 있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공자의 말년에는 자공이 공자의 생활을 돌보아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에게 아부하여 말하기를, 자공의 학문이 스승보다 나은 것같다고 한다. 그러나, 자공은 역시 공자의 제자였고, 공자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 알겠는가. 나는 작은 문과 작은 집을 가지고 있는데 불과한 것에 비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집안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고, 그리고는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스승은 아주 화려한 궁전에 비유할 수 있다. 담장이 너무 높아서, 사람들은 그 안이 얼마나 화려한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담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도 문조차 찾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찌 스승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어떤 때는 필자는 순식간에 몸이 맹자의 시대로 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곁에는 순식간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비록 그들이 글자는 몇 개 알지 못하지만(추연의 학문에 대하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아주 인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호풍환우하고, 곳곳에서 대접을 받는데, 이것은 그들이 아주 실용적인 수단 하나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현실의 냉혹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들이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이런 사람들은 현세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리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행운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이들이 눈앞의 이익에 귀기울이지 않고, 천하창생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송나라때의 대유학자인 장재(張載)가 말한 것처럼...;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하여 명을 세우고, 과거 성인들의 절학을 승계하며, 만세의 태평을 열어가겠다" 인류는 이들때문에 광명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