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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손중산)

손중산의 네 개의 관(棺)

by 중은우시 2007. 3. 6.

중산릉을 참배하는 손중산의 대만유족들 

 

손중산이 서거한 후 셋째날, 유체는 북경협화의원으로 옮겨져 방부처리를 했다. 그리고, 미국식의 남목관(楠木棺)에 염을 했다. 이것이 손중산의 첫번재 관이다.

 

손중산의 유체가 입관된지 얼마되지 않아, 공상희(孔祥熙)는 이 남목관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좀더 큰 남목관으로 교체한다. 이 남목관은 타원형이고, 앞부분은 정방형이었다. 관의 안에는 유리로 층을 나누어 관두껑을 열고 사람들이 손중산의 유용(遺容, 죽은 사람의 얼굴)을 뵙기 편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두번째 관이고, "남목유리관"이라고 부른다.

 

손중산이 임종전에 레닌처럼 유해를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치상처(治喪處)에서는 소련에 수정관(水晶棺)을 주문했다. 이 관의 외곽과 외층은 모두 강철에 니켈도금을 하여, 은빛으로 빛났다. 전문가들이 검사를 해보니, 이 관의 재질이 비교적 약하고, 열이 쉽게 전도되고, 게다가 장거리를 운송하는 바람에 균열도 약간 있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북경 벽운사(碧雲寺) 중산기념당에 보관하게 된다. 이것이 손중산의 세번째 관이다.

 

손중산의 네번째 관은 미국에 주문한 자동관(紫銅棺)이다. 이 자동관은 길이 2.24미터, 높이 0.65미터, 너비 0.8미터이며 제작이 잘되었고, 외형도 아름다웠으며, 가격이 1.5만냥백은이었다. 1925년8월 상해의 손중산선생 상사준비처로 운송되어 왔다. 송경령이 이 관을 보고는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1927년 4월, 상해장사준비처는 남경으로 이전하였고, 자동관도 남경으로 옮겨졌다. 1928년 12월 30일, 자동관은 북경으로 운송된다.

 

1929년 5월 22일, 국민정부는 북경의 서산 벽운사에서 손중산을 위한 융중한 환관의식(換棺儀式)을 거행한다. 손과(孫科, 손중산의 아들)는 협화의원의 의사와 간호사를 청하여 손중산의 유해를 깨끗이 씻고, 여기에 흰비단을 두르고, 이발을 하였다. 그 후 손과, 정홍년(鄭洪年), 마상(馬湘)이 내외의복, 백릉내의, 백사양말, 흑단신발을 입히고, 바깥에 남사두루마리, 흑소단마과, 백사장갑을 입혔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손중산의 유체는 조심스럽게 자동관내에 안치된다. 관의 사방에는 백색비단금침을 깔고, 몸에는 비단으로 덮었다. 1929년 6월 1일, 자동관은 남경의 중산릉으로 운구된다. 손중산의 8명의 호위들이 들어서 묘혈에 안장한다.

 

바꾼 남목유리관에는 손중산의 의복, 신발, 양말을 넣은 후, 북경 서산벽운사의 석탑안에 넣는다. 입법원장인 호한민이 "손중산선생의관총"이라는 글을 써서 석비를 세운다. 첫번째 남목관은 현재 북경중법중학(北京中法中學)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