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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손중산)

손중산이 원세개에게 중화민국 총통의 지위를 양보한 이유

by 중은우시 2006. 6. 13.

1911년 신해혁명의 성공이후, 임시대총통에 올랐던 손중산(손문, 쑨원)은 곧 대총통의 지위를 북양군벌인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양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군사력이었다.

 

군사력에서 남경임시정부는 당시 북양군벌에 비하여 너무나 열악했다. 원세개는 당시 잘 훈련된 북양육진의 7만여 정예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여전히 청나라정부에 충성하는 금위군과 기타 신군이 있어, 총병력이 14만여명에 달하였다(신군 총수는 24만1천명이었음). 그러나, 남경임시정부에는 혁명군을 자처하는 각종의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오합지졸이었다. 인원수로만 따진다면 북양군벌보다 많았으나, 무기나 장비, 훈련, 지휘, 기강등에 있어서 모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시 총통부 비서장을 맡고 있었으며, 손중산을 도와 일을 처리하던 호한민은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남경군대에세서 육군에 예속되어 있는 자가 17개사단이라고 불리웠지만, 광동, 절강의 군대만이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광동군은 1만명에 미치지 못하였고, 절강군은 원래 극강(황흥. 당시 육군부장 겸 참모총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명령을 듣지 않았다. 다른 부대들은 오합지졸이어서 적과 싸울 만한 정도가 되지 못하였다"

 

둘째, 경제력이었다.

 

남경임시정부는 당시에 이미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쌍방이 모두 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원세개는 청제국의 내각총리를 맡은 이래로 여전히 동북지방과 화북지방을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었고, 중앙정부재정의 기초도 여전히 온존하고 있었으며, 원래의 징세시스템도 유지되고 있어, 군비는 비교적 풍족한 편이었다. 그래서 원세개는 정상적인 운용이외에 상당한 자금을 내놓아 청나라의 왕공대신과 혁명당사람들을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임시대총통인 손중산은 임시정부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하여 여러군데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솔직히 인정한 적도 있다. "최근 며칠동안, 자금부족이 초미의 급선무이다. 군대가 해산되고 혁명정부가 와해될 운명에 처했다. ...일본과 합작하여 5백만위안을 끌어드리는 것도 이를 위함이고, 고심하고 고민해서 초상국을 담보로 1천만위안을 조달하고자 하는 것도 이를 위함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까지 결과가 없다.  군대를 해산하고 혁명정부가 붕괴되기 전에 최후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원세개와 손을 잡는 것이 천하대란을 방지하는 일이다." 당시에 각 성들은 연이어 청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는데, 자기들도 지출할 일이 많아 중앙정부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고, 오히려 중앙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 여기에 서구열강들도 중립을 이유로 관세를 납부하지 아니하여 임시정부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었다.

 

셋째, 인심의 향배였다.

 

"만주족을 물리치자(排滿)"는 구호는 신해혁명의 중요한 요소였다. '만주오랑캐를 몰아내자'는 구호는 동맹회 정강의 제1조였다.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한족은 청나라 정부에 대하여도 불만은 있었지만 더욱 싫어한 것은 이민족에 의한 통치였다. 1912년 2월 12일 융유태후가 <<손위조>>를 반포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민족에 의한 통치는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호한민이 말한 바에 의하면, "동맹회는 민중에 깊숙히 파고들지 못했다. 민중들이 받아들인 것은 삼민주의중의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뿐이었다. 바로 '만주족을 몰아내자'는 구호는 간명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어 전국에 바로 퍼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점도 있었다. 민중들은 청나라 정부가 물러나자 이미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고, 당시 민중들의 심리는 서로 화의하기를 원하였다. 이를 거슬려 일을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넷째, 외국열강의 지지였다.

 

무창의거이후 손중산은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자금조달문제로 인하여 그는 각국을 다니며 유세를 하였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가 귀국할 때는 빈손이었다. 남경임시정부성립후에 손중산은 여러차례 열강에 승인을 요청하였는데, 이전의 불평등조약을 먼저 인정하라고 요구하면서 거절하였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는 각국에 남경임시정부를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열강은 원세개가 버티고 있는 북경쪽을 지지하였다. 이로써, 혁명당사람들은 국가정권을 원세개에게 두 손으로 바치고서 열강의 중화민국에 대한 승인을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