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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중국은 자산버블에 대비해야 한다

by 중은우시 2007. 2. 27.

글: 좌소뢰(左小)

 

최근 일본의 와세다대학의 학자들과 일보금융시장발전의 경험과 교훈에 대하여 토론했다. 그 당시를 회고하면, 플라자합의이후 일본경제는 엔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오르고, 자산거품이 꺼지고, 여러해동안 제로성장을 보이며, 10년간 경제가 쇠퇴한 광경을 경험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일어나는 인민폐절상, 자본의 급속한 유입, 자본시장의 시가총액이 하루에 1조억위안이 증가하고,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잡히지 않는 부동산가격은 마치 일본의 당시를 보는 것같다.

 

일본은 이미 자산버블경제를 특징으로 하던 경제위기의 뿌리를 잘라버렸다. 동남아 각국도 1990년대말에 일찌기 이를 뿌리를 잘라버린 적이 있다.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는 아주 경계해야 하고, 정확한 조치를 취하여,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중국은 10년불경기라는 대가를 치를 능력이 되지 않는다.

 

일본경제버블의 형성과 영향

 

1985년전에, 일본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전세계 제2의 경제실체로 성장하였고, 1인당 GDP는 30000달러에 근접했다. 경제적으로 일본은 이미 미국의 강력한 적수로 등장했다.

 

그러나, 일본경제는 동시에 저축율이 높고, 내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본토기업위주의 수출제품경쟁력이 강한 외향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일본국제수지는 계속적으로 대량의 흑자를 나타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엔화는 절상압력을 많이 받았고, 미일무역마찰은 날로 격화되었다. 일본정부는 1985년 9월과 1987년 2월 각각 서독, 영국, 미국등과 환율조정을 위주로 하는 플라자합의와 이자율조정을 위주로 하는 루브르궁합의를 체결했다.

 

압력을 받아 1985년 9월부터 엔화가 절상되기 시작했다. 4년간의 점진적인 절상을 거쳐, 1989년에는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였고, 나중에는 과도하게 절상되어 1995년에는 1달러당 78엔까지 되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여, 2003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수준으로 안정되게 되었다.

 

엔화가 지속적으로 절상하던 기간동안 일본은 외부의 압력으로 내수를 확대하고 경제자유화와 국제화의 구호하에 황급히 금융개혁을 실시하고, 외국자본의 일본투자와 기타 금융업무에서의 제한을 철폐하였다. 동시에 이자율자유화를 실시하고, 분업경영의 관리제도를 취소하였으며, 은행/신탁/증권이 서로 다른 업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심지어 상호지분보유도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부 사회보장적인 성격의 자금이 하이리스크의 주식, 외환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자본관리감독을 완화하였으며, 혼업경영과 금융자유화를 시행하였다.

 

엔화의 절상기대는 많은 해외자금을 대규모로 유입하게 하였고, 부동산가격과 주식가격은 지속적이고 대폭으로 올라갔다. 닛케이지수는 1985년의 1만에서 1989년의 근 4만에까지 올랐다. 그중 1987년의 1년간 지수는 17000에서 30000가까이 올랐다.

 

1979년, 국외에서 일본주식을 구매한 순금액은 1.92억달러이었는데, 1980년에는 61.5억달러로 늘어났다. 1987년 동경증권거래소의 주식시가총액은 26,600억달러로 급증하여, 뉴욕증권거래소의 26,520억달러를 넘어섰다. 일일교역량도 대폭 상승하여, 1989년에는 교역량이 25,000억엔에 이르렀다.

 

자본의 계속적인 유입은 부동산가격, 토지가격을 상승시켰다. 금융제한이 풀린 후, 도시부지와 택지는 금융기구가 서로 투자하려는 인기품목이 되었다. 이로써 주요도시의 부동산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동경의 지가는 황당할 정도로 비싸져고, 가격과 가치간의 심한 괴리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심한 것은 은행대출행위의 변화였다. 1986년이후 은행은 이전에 제한받던 제3산업에 대한 대출(여기에는 건축업, 금융보험업과 부동산업이 포함됨)이 일본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에 대한 대출을 훨씬 초과하게 되었다. 특히 부동산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가가 뛰고, '부동산불패'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1989년, 전국의 평균지가는 1980년에 비하여 150%증가하였고, 삼대도시권(동경, 교토, 오사카)의 평균지가는 280% 올라갔다.

 

자산가치의 지속적인 상승기대하에서 신용팽창이 나타나고, 자본관리가 느슨해지며, 환율이 대폭적인 조정은 자본유입을 가속화시켰고, 자산가격을 계속 올리게 되었으며, 버블경제시기의 투자과잉을 불러왔고, 자금으로 투기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루게 되었다. 자산버블은 금융버블을 불러오고, 버블경제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1989년말, 일본정부는 문제의 중대성을 깨달았다. 대장성은 어쩔 수 없이 이율수단을 동원하였고, 1989년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350포인트의 이자를 조정했다. 이리하여 일본의 이율은 급격히 6%까지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당국은 금융기관의 부동산대출을 금지시켰고, 은행으로 하여금 점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자금투입으로 형성된 허위번영은 마지막 하나까지 철저히 무너졌다. 버블이 붕괴되고, 주가와 부동산가격은 대폭으로 하락했다. 1990년의 니케이지수만 40%가 하락했다. 평균지가는 미친듯이 46%나 떨어졌다. 대다수의 기업, 증권회사와 은행은 순식간에 결손상태가 되었다.

 

버블경제붕괴후, "부동산불패"의 신화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부동산가격은 끝간데를 모르고 떨어졌고, 부동산회사는 자산이 부채보다 적었다. 이는 또한 주택전문금융회사 및 그 모기업에도 영향을 미쳐서 대량의 기업불량채권으로 인한 도미노현상이 나타났으며, 크고작은 금융기관들이 파산에 이르렀다. 파산사건은 연최고 2만건에까지 달하였고, 금융부채는 년최고 25조엔에 이르렀다. 금융시장은 거대한 파괴를 맞이한 것이다. 일본경제는 이때부터 십여년간의 불경기에 접어든다.

 

와세다대학의 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본버블경제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정책에도 큰 잘못이 있었다. 일본정부의 잘못은 금융업에 대한 여러가지 제한을 폐지한 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상응하는 금융관리감독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 일본정부는 부동산신용대출에 대하여 "총량규제"를 실시하였는데, 적지 않은 은행들은 각자 알아서 조치를 취하고, 계속하여 자은행(子銀行)을 통하여 대출을 확대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러한 명시적인 위법행위에도 그저 눈감고 모른척하는 태도를 취하였고, 최종적으로 부동산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은 파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또 다른 실책은 장기간동안 저리의 이율을 유지하여 금융긴축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1985년이후,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토지등등에서 자산가격의 거품이 커져갔다. 화폐정책은 저이율을 통하여 자본유입을 막으려는 태세를 보였다. 그러나, 저이율은 자본유입을 막지 못했을 뿐아니라, 반대로 엔화의 계속적인 절상기대를 갖게 하여 더욱 유입을 촉진시켰다. 이를 통하여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고, 자본이 계속 유입하여, 자산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결국 버블은 붕괴하였고,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와 "부동산불패"의 신화는 모두 파괴괴었다. 일본경제는 깊은 늪에 빠진 것이다.

 

중국은 자산버블을 경계해야 한다.

 

일본의 거품경제 형성과정은 중국 현재의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인민폐절상의 외부압력하에 점차적으로 절상될 것이라는 기대는 강화되고 있다. 자본유입이 가속화되고, 주식시장의 시가총액도 20일만에 3조위안이 늘었다. 심지어 하루에 1조위안이라는 공전절후의 증가도 이루어졌다. 유동성은 중대하게 과잉되었다. 주식구매예치금이 8000억위안, 1조위안에 이르렀다. 기금은 하루에 400억위안을 팔았다. 매일 구좌를 개설하는 사람이 하루에 15만명이 증가하였다. 은행대출, 개인부동산담보대출금도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현상을 보인다. 부동산가격상승은 아무리 조정해도 멈추지 않는다. 체제문제이외에도 인민폐절상의 기대 및 무환율리스크의 환경과 극심한 유동성과잉이 모두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비슷한 것은 계속적인 경제성장과 대외무역흑자의 계속적인 확대 그리고 국제수지불균형의 모순, 내수확대, 혼업경영, 금융시장개방가속화, 경제글로벌화의 압력등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중국의 경제실력은 당시의 일본경제실력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은 10년경제불황을 견딜 여력이 없다.

 

90년대이래의 경제위기는 모두 자산가격버블이 그 특징이다. 투기성자본은 글로벌화, 정보화의 추세하에서 유동성이 늘어나고 있고, 버블위기폭발의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은 특히 이런 현재의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경제가 발전과정중에 자산버블로 인한 경제위기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환자와 마찬가지로, 조기에 발견할 수록 치료할 개연성은 커진다. 그래서 최근 자본시장버블경제의 경고는 특히 버블경제형성특징의 초기단계에 대하여 다시 일본의 교훈을 연구하고, 동남아경제위기의 교훈을 연구하고, 버블경제위기의 파괴성을 인지하고, 유효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취하는 것이 아주 필요하다.

 

단기간내에, 중국은 3가지 측면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첫째, 적당한 때 적당히 이율을 올려야 한다. 인민폐가 점진적으로 절상되는 것이 확실히 기대되는 한, 자본유입으로 인한 무환율리스크환경은 자본으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없는 계속적인 유입을 가능하게 한다. 5% 심지어 더 높은 절상수준은 달러와 인민폐간의 3%의 이자율차이와 비교하면, 사실상 이미 자본유입을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저이율이 자본유입을 억제하는 작용은 갈수록 적어진다. 이율을 올림으로써 자산버블을 억제하는 작용은 비교적 명확하다.

 

둘째, 적당한 때 적당히 환율변동폭을 확대시켜야 한다. 인민폐는 일년내에 누계 5% 절상한 이후, 최근들어 절상이 가속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최근의 절상가속화는 환율변동폭을 확대시키는데 유리하다. 만일 적당한 때 적당히 환율변동폭을 확대시킨다면, 환율메커니즘이 탄력성을 갖게 되고, 더욱 더 신축성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계속 일방적으로 절상도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셋째, 관리감독제도를 강화하고 엄격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일본은행의 많은 부실채권은 실제상 버블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축적되고 늘어난 것이다. 은행은 버블경제중 비이성적인 신용대출의 팽창은 자산버블을 도우는 역할을 했고, 스스로에게도 재난을 초래했다. 중국은 엄격히 통제하고 자산가격의 계속적인 상승시기에 위법위규한 부동산 또는 자본시장대출행위를 적발해야 한다. 일본의 교훈을 보면, 자산가격의 팽창과정에서 사람들의 행위는 자산팽창과 마찬가지로 미친 것같았다. 중국이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거액을 투입하고, 부실채권을 분리시킨 후 탈태환골한 은행에 다시 엄청난 자금을 무저동처럼 집어넣어야 한다. 더욱 엄중한 것은 자본시장 내지 전체 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비무역적이고, 비QFII적인 증권투자자본의 유입도 엄격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일본의 버블경제에서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금융자유화가 자유방임으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자본구좌의 개방은 국내경제와 금융체제개혁의 정도와 상응해야 한다. 금융체제가 발전의 질곡이 되면, 반드시 체제에 대하여 조정하고 변혁해야 한다. 그러나, 체제변혁은 반드시 경제발전에 상응해야 하고, 한꺼번에 해서도 안되고, 하룻밤만에 바뀌어서도 안되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시간표를 초과하여 비정상적인 속도로 진행해쇼ㅓ도 안된다. 왜냐하면 구조조정, 경제모델의 전환은 단기간내에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계좌의 개방은 더더욱 박자를 잘 맞추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자본계좌의 개방과 환율의 변동은 함께 완화시키는 것은 정확한 선택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말하면, 반드시 중국경제개혁의 시간표에 따라 개혁의 진전을 가속화하고 가능한 한 간섭을 없애거나 줄인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금융체제개혁을 추진하여야 하며, 경제발전모델을 전환시켜야 하고, 경제구조를 조정해야 하며, 법치환경을 건설해야 하고, 경제위기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발전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당연히, 중국경제의 현상은 일본의 당시상황과 많은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 중국과 일본의 은행체제가 다르고, 존재하는 문제도 다르다. 특히 일본은행개혁은 절상이 조성한 자산버블이 파괴된 후에 피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의 은행개혁은 그러나, 환율개혁전에 핵심적인 첫걸음은 내디뎠고, 역사적인 이유로 인한 부실채권은 철저히 청산하였다. 중국은행이 피해야 하는 것은 일본은행이 당시 버블경제를 조성하게 된 새로운 은행문제이다.

 

둘째, 금융자유화추세는 일본과 다르다. 중국은 성급하게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

 

셋째, 일본 버블경제형성과정에서 내부의 경제구조조정을 포기하고, 개혁시기를 놓쳣다. 중국은 다르다. 내수를 자극하고, 내부저축-투자의 불균형이라는 모순을 조정하고, 국제수지균형을 개선하고, 토지제도,세수제도를 개혁화는 것도 이미 기정방침이 되었으며, 현재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내부경제체제의 가속화는 위기의 근본적인 소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넷째, 1인당 GDP의 각도에서 보면, 현재 중국의 경제실력은 당시 일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경제위기에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취약하다. 중국버블경제의 파괴는 아마도 경제쇠퇴뿐아니라 사회안정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점중에서 가장 특출하게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이미 일본금융위기의 원인을 의식하고 있고, 이미 자산버블이 축적될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다. 만일 일본 당시의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근대에 자산버블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위기의 신모델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며, 성공적으로 자산버블의 경제위기를 방지하는 새로운 금융체제를 건립할 수 있을 것이며, 중국경제는 지속적이고 빠른 발전이라는 더욱 큰 기적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