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에 6국을 멸하고 통일대업을 완성한 후, 스스로 공적이 삼황오제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서 수도인 함양에서 크게 토목공사를 벌였다. 건축한 궁전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아방궁이었다. 아방궁에는 당시 전국각지 궁전의 장점을 모두 모아놓았다. 규모도 공전절후였고, 기세도 대단했다. 원래, 아방궁은 그저 조궁(朝宮) 전전(前殿)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진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궁전은 준공되지 못했고, 그래서 전체 궁전은 아방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궁전은 왜 "아방(阿房)"이라고 이름했을까? 역대이래로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나누자면 세 가지 정도의 견해가 있다.
첫째, 아방은 궁전의 부지가 함양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진 아방궁은 즉 아성(阿城)이라고 한다. 옹주(雍州) 장안현(長安縣)의 서북 14리에 위치하고 있다. 궁은 상림원(上林苑)의 가운데 있었고, 옹주 곽성의 서남면이 바로 아방궁성의 동남면이다" 그래서, 안사고(顔師古)는 "아(阿), 는 근(近, 가깝다)이다. 그곳이 함양에서 가깝기 때문에, '아방'이라고 하였다" 이 첫번째 견해는 부지의 위치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는 말이다.
둘째, 아방궁의 건축품격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아방이라는 말은 "사아방광(四阿旁廣)"의 형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阿)라는 것은 고어중에는 정원의 굽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두목의 <<아방궁부>>에서 이 궁은 '5보에 1루가 있고, 10보에 1각이 있다, 회랑의 허리는 굽어 있고, 처마는 뽀죡하고 높다"는 것은 바로 아방궁의 "아"의 특색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사기. 진시황본기>> 색은중에 이 궁명을 해석할 때, "이것은 그 형태를 따서 명명한 궁이다. 그 궁이 사아방광이라는 것이다"
셋째, 아방이라는 것은 궁전이 대릉(大陵, 큰 언덕) 위에 건축되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한서. 가산전>>에 나온다. 그곳의 주석에는 "'아'라는 것은 '대릉'이다. 그래서 '아방'이라고 한 것이다. 그 말은 높이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방궁은 확실히 높은 언덕위에 기초를 하고 지었다.
위의 세가지 견해는 모두 일리가 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옳은지를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천고에 이름을 남긴 아방궁이 왜 그렇게 이름지어졌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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