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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공자)

공자의 성은 공(孔)이 아니다.

by 중은우시 2007. 1. 31.

공자의 성은 자(子)이고, 공(孔)은 그의 씨(氏)이다.

 

<<통지.씨족약삼>>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공은 씨이고, 자는 성이다. 송민공(宋閔公)의 후예이다. 민공은 불부하(弗父何)를 낳았으며...삼세는 정고부(正考父)를 낳았다....고부는 공부가(孔父嘉)를 낳았는데 대사마에 올랐다...가(嘉)의 자(字)는 공부(孔父)여서, 후세는 자를 따라 공씨(孔氏)라고도 하고, 공부씨(孔父氏)라고도 했다. 공부의 육세에 중니(仲尼, 즉 공자)를 낳았다. 이 기재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공자의 성은 자이고, 씨가 공이라는 것을.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서도, 공자의 조상은 송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송나라는 원래 상(商)의 후예들의 봉국이었다. 상의 시조는 계(契)인데, 계의 조상이 송나라 사람이었다. 계의 모친은 간적(簡狄)이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춘분때 간적이 교외에 기도하러 갔는데, 홀연히 현조(玄鳥, 제비)가 날아왔다. 간적은 무의식중에 현조의 알(子, 卵)을 삼켰고, 임신하여 계를 낳았다. 계가 어른이 된 후에, 순임금을 도와 공을 많이 세웠다. 그리하여 순은 그를 상(商, 지금의 하남성 상구)에 봉하였다. 계는 모친이 현조의 알을 먹고 낳았다고 하여 순임금은 계에게 "자(子)를 성으로 내린다. 상나라가 망한 후, 후대들은 주나라에 의하여 송에 봉해진다. 송왕실의 후예들은 씨(氏)가 각각 달랐다. 공자의 선조는 조상인 공부가의 자인 '공부'를 씨로 하였다. 그러므로, 확실히 말해서 공자는 성이 '자'이고, 씨가 '공'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성'과 '씨'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에는 '성'과 '씨'는 명확히 구분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원시사회에는 모계위주의 사회였으므로, 성은 모친의 것을 따랐다. 그리하여 성의 대부분은 계집 녀(女)가 들어간다. 예를 들면, 요(姚), 강(姜), 희(姬), 안(安), 영(), 위(魏), 운() 등이 그것이다. 씨(氏)는 같은 성을 가진 집단내에서 분화된 것이다. 그리고, 귀족들만이 씨를 가졌다. 진나라 이전까지는 성과 씨는 구분되었고, 남자들은 씨(氏)로 부르고 성으로 부르지 않았으며, 여자들은 성으로 부르고 씨로 부르지 않았다.

 

동씨부동성(同氏不同姓, 씨는 같으나 성은 다른 경우)에는 결혼할 수 있었으며, 부동씨동성(不同氏同姓, 씨는 다르나 성이 같은 경우)에는 결혼할 수 없었다.

 

진나라이후에는 성과 씨가 합쳐졌고, 씨도 성으로 되어버렸다. 한나라 이후에는 성과 씨가 서로 섞여서 구분되지 아니하였고, 현재는 씨라고 하든, 성이라고 하든 관계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공자의 성이 무엇인지를 고증해야 한다면 여전히, 공자의 성은 공(孔)이 아니라 자(子)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