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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정보통신

일본 핸드폰의 중국시장 퇴출 (II) : 오만과 편견

by 중은우시 2006. 12. 26.

 

일본계 핸드폰은 왜 중국시장에서 실패했는가? 원인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의 취재과정에서 발견한 일본계 핸드폰의 가장 큰 패인은 중국시장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아태연구센터 교수 겸 부소장인 장림화생(長林華生)은 기자의 방문을 받고, 중국에서의 일본기업의 실패원인은 일본측 경영관리의 실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식의 경영방식(위계질서에 따른 임금방식. 승진제도등)이 중국에 들어간 후, 적시에 중국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중국의 급변하는 외자정책과 법률에도 적시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패인 1 : 중국본토 경영진에 대한 불신임

 

2차대전후, 일본은 30년이 안되는 시간을 들여, 경제가 급속히 발전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일약 전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단체협력정신과 혁신정신을 가진 일본기업문화가 대중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일본역사, 종교와 민족심리의 심원한 영향을 받은 기업문화는 일본궐기의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그러나, 무사도정신과 이론전통민족심리로 꽉찬 기업문화는 일본기업문화는 일본기업이 새로운 경제환경하에서 한 걸음더 발전하는 것을 속박하는 질곡이 되었다.

 

노키아, 모토롤라등 구미의 대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역량을 강화하고, 중국에서 현지화전략을 시행할 때, 많은 일본 핸드폰기업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본본토를 위주로 한 집중적인 의사결정체계는 일본의 중국에서의 핸드폰사업에서 어떤 의사결정도 층층이 위로 결재를 올렸고, 본사의 결재를 받은 후에 비로소 집행되었다. 한 일본기업의 중국주재대표의 말을 빌면 "우리는 세계500대기업에 속하는 한 고객에게 서류를 요청했는데, 본사의 층층의 결재를 받고 나니 2개월 후에야 문서를 손에 쥐었다"

 

삼엄한 등급제도로 인하여, 일본기업의 중국주재기구는 자주성이 결핍되어 있었다.

 

NEC는 몇 안되는 중국에 R&D센터를 건립한 일본계 핸드폰기업이었다. 북경에 3G R&D센터를 건립한 후, NEC의 전세계 70%이상의 핸드폰을 중국에서 연구개발했다. 그러나, 신제품기획시, 북경연구개발센터는 일본본사에 연구개발결과를 보고해야 하고, 일본본사의 마케팅허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연구개발성과를 중국에서 제품화하였다. NEC는 번잡한 결제체제로 큰 대가를 치루었고, 중국의 연구개발기구는 제대로 효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민감한 시장촉각을 곤두세우도 있더라도, 층층시하의 결재시스템은 시장기회를 흘려보냈고, 거대한 손실로 되돌아왔으니,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도 당연했다.

 

일본의 저명한 리서치회사인 JETRO는 2005년 321개의 중국의 일본계투자기업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본사와의 협조가 곤란하다"는 것이 조사대상기업의 구조조정중 첫번째를 차지했다. 삼엄한 등급제도는 기업의 업적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문화전통을 받드는 일본기업의 관리시스템은 개혁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충(忠)"을 숭상하는 일본기업문화는 직원의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중시했다. 중국에 투자하여서도 여전히 대량의 일본직원들에 의지했고, 중국직원들에 대하여는 신뢰하지 못했다. 마쓰시다. 미쓰비시에서 도시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중국회사고위층은 하나같이 일본인이었다.

 

비록 중국본토의 경영진을 임명하는 일본기업도, 기업문화에 깊이 뿌리박은 관리제도로 인하여 중국의 경영진으로 하여금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2004년, 다시금 깃발을 세워든 NEC는 중국에 NEC통신(중국)공사를 설립하고, 노뢰(盧雷)를 중국회사총재로 임명했다. 이 사람은 모토롤라에서 온 전문경영인이고 일본계기업에서의 최고위직인 중국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관례를 깬 임명도 NEC가 오래 기다려온 개혁을 가져오지 못했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술이 강력한 새로운 플랫폼에서 일을 벌이려고 생각하던 노뢰는 금방 이상과 현실간의 잔혹한 낙차를 경험하게 된다.

 

총재를 맡은 1년여의 기간동안, 노뢰는 이 통신회사에서 주로 핸드폰 마케팅업무를 진행했다. 이것은 과거에 모토롤라에서 행하던 마케팅업무와는 전혀 달랐다. 노뢰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은 유한한 범위내에서 자주적으로 마케팅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그리 많은 권한을 갖지 못했다.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하여 노뢰는 빈번하게 북경과 동경 사이를 오고갔고, 본사에 중국의 상황을 보고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NEC본사 고위층의 핸드폰 이외의 통신업무에 대한 최신전략배치를 듣기 위한 것이었다. 노뢰는 부득이 완전히 본사의 전략에 의지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정도 부득이한 점이 있다.

 

비록 이왕의 마케팅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엄격한 결재제도하에서, 중국에서의 의사결정시스템은 거의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과 같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장에서 의사결정의 지연은 실적에서의 패배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NEC의 현지화도 이 기업의 중국2G시장에서의 실패를 막지 못했다. 노뢰는 총재를 맡은 지 2년이 되지 않아 사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사람은 NEC사업에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 본사는 이 젊은 경영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앟았다는 소식도 동시에 들려왔다.

 

노뢰는 재임기간중에 명확히 밝혔다. "NEC가 하나의 전체적인 솔루션 공급상이 되려면, 반드시 각종 자원을 통합하여 핸드폰사업이외의 부문과 공동으로 성장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업무통합은 일본본사의 허가를 받지 못해서 시행할 수 없었다. 더구나 NEC가 중시한 것은 노뢰의 뛰어난 마케팅능력이었다. 한  NEC의 고위층은 노뢰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얻기 힘든 전신분야의 마케팅인재이다. 현재 NEC통신의 단말기가 실적이 좋지 않으므로, 노뢰는 이에 대하여 분명히 일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노뢰의 거취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일본기업이 하는 현지화전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비록 현지화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편집적인 기업문화는 이 전략을 시행하는 것이 힘들게 한다.

 

패인2: 중국시장에 대한 오만

 

구미의 대기업들이 계속하여 "중국은 다르다(China is different)"고 외치고 있을 때 일본기업들은 조심스러운 눈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이라는 시장을 주시했다. 그러나, 많은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의사결정자의 눈에 중국은 여전히 단순한 판매시장이었고, 중국본토에서 쓰던 마케팅전략을 그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일본핸드폰시장전략은 묵수성규(墨守成規), 불선변통(不善變通)이었다. 그러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시장에 대한 오만한 태도가 일본경영진의 의사결정에서 실수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일본에서, 2G시대에 독특한 PHS네트워크(전세계에서 사용하는 GSM, CDMA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았다)를 채택했다.  일본 핸드폰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외래기업으로부터 본토시장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일본시장은 일본기업들이 독점하는 시장이 되어 버렸다. Gartner Japan의 통계숫자에 따르면 NEC의 시장점유율은 19.8%로 연속 2년 1위였다. 마쓰시다는 2위로 16.4%, 샤프는 그 뒤를 이어서 3위로 13.4%이며, 도시바가 4위로 시장점유율은 7.8%이다. 미쓰비시전기는 5위로 4위와 0.1%의 격차를 두고 꼴찌이다.

 

일본기업들의 중국에서의 실적은 믿기 힘들 정도이다. 1980년대에 중국인들은 일본전기제품을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컬러티비, 냉장고, 녹음기, 에어컨. 그것은 품질, 신분, 품위의 상징이었다. 히타치, 도시바, 산요, 마쓰시다, 소니등 중국인의 귀에 익숙한 브랜드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제품라인이 중국에서 전례없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IT업계의 전문가인 조선생은 자주 다국적기업과 접촉하고 있는데, 일본계 핸드폰의 현상에 대하여 그는 아주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일본기업은 구미기업처럼 개방적이지 않고, 마음도 구미기업처럼 넓지 않다고 한다. 만일 어떤 신문기자가 어떤 이슈에 대하여 일본기업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그들과 인터뷰하거나 그들로부터 데이터를 받으려고 한다면 아마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당연히, 그들이 그들의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리는 경우는 제외). 그들은 아주 예의바르게 거절할 것이가, 아니면 위로 결재를 올려야 한다고 할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나면, 결국 너 자신이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미기업은 다르다. 그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고, 많은 문제에 대하여 대답해 줄 것이다. 특히 IBM, HP, Motorola, Nokia, Intel등의 경우. 그들은 아주 대범하게 많은 1차적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고, 어떤 회사는 네 주제를 더욱 완벽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일본기업에 대한 뉴스는 기본적으로 깊이있는 보도가 없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 그러나, 구미기업은 신제품에 대한 소식을 제외하고도 더 많은 깊이 있는 보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런 제품을 산다면 더 많은 문화적 부가가치가 있겠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자의 인터뷰도 이렇게 어려우니, 매체의 광고판매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마케팅부인원은 그들의 호의적인 얼굴을 보기 힘들 것이고, 나와서 맞이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광고를 책임지는 마케팅부의 인원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매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자부심이 크다. 그들이 위탁하는 대리상도 모두 그들 일본의 광고회사이다. 일본인들은 그저 일본인만 믿는다. 일본기업의 광고지면은 왕왕 많은 돈을 주고 사오지만, 그러나 이류 매체의 광고면이 된다. 한 일본에서 전문적으로 정보시스템소프트웨어를 하는 기업은 그들이 상해에서 찾은 광고대리인이 공공연히 매체에 커미션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든지 커미션을 많이 주기만 하면 그에게 광고를 맡긴다. 이로써 이 소트트웨어회사는 중국에 온지 오래 되었고, 돈도 적지 않게 썼지만, 시장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다. 그러나, 구미기업의 마케팅인원은 전혀 다르다. 새로운 매체에는 시간을 내서 만나주고, 한번을 얼굴을 본다. 만일 충분한 이유를 들어 설득한다면, 광고협력을 고려해볼 것이다. 당연히 당신의 매체가 별로라면 다음에 만나는 것이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번 기회는 주고, 자신의 시장에 대하여 계속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는 할 것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의 노동자는 대부분 지위가 없다. 그들은 영원히 실무자이다. 이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든지간에, 너는 영원히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 본사는 10배의 임금을 들여서 중국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파견해서 너를 관리할 것이다. 그러나, 구미기업은 많은 고위층들이 바로 중국현지 직원이다.

 

전문경영인사이에 떠도는 한 이야기는 잊어버리기 어렵다. 한 유명한 일본기업이, 중국에 파견내보낸 동사장은 나이가 이미 많았다. 자주 보고를 들으면서 졸앗다. 중국노동자는 그가 휴식을 취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보고를 중단했는데, 그는 기묘하게 갑자기 깨어났다. 한쪽 눈만을 뜨고는 "왜 멈췄지? 계속 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금방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로 오만해하는 태도는 일본계기업으로 하여금 쓴맛을 보도록 만든 것이다.

 

패인 3: 기술보수의 죄

 

소니 내부의 전력기획은 그가 산업연관성에 대한 판단을 이미 명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답은 하나이다. "투자를 강화하여 선도적인 지위를 빼앗는 것"이다. 그 후에 기술혁신이 이끄는데 따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업계인사는 이런 전략사고는 명확히 구미화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일관되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던 일본기업으로 말하자면, 진정 이런 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주 여러 방면의 곤란에 부딛치게 될 것이다. 중국가전협회 부이사장 겸 비서장인 강풍은 기자들에게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기업의 중국에서의 기술혁신은 한국기업에 비하여 5년이 늦다"고 하였다. 일본인들은 너무 보수적이고 너무 민감하다.

 

2003년 상해 마쓰시다의 PDP모니터유한회사의 PDP프로젝트는 본사에 의하여 "기술승급"에서 "생산량확대"로 조정되었고, 투자금액도 1억달러가 감액되었다. 그러나 2005년 7월, 마쓰시다는 16억달러를 들어 일본 니기현(尼岐縣)에 세계 최대의 PDP패널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마쓰시다의 PDP공장은 5개로 늘어났다. 그 중의 단 하나가 상해에 있다. 혼다회사는 2006년 투자전략에서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30년내에 처음으로 일본국내에 신규공장을 짓는다는 것이다. 기옥현의 기거정에 새 공장을 짓는데 주로 환경영향이 매우 적은 차세대 자동차엔진을 연구개발, 생산하는 것이다. 혼다회사는 이 공장을 "기술혁신의 실험장"으로 운영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국내외 각지의 자동차엔진 및 완성차 생산을 이끌겠다고 하였다. 분명히 차세대 자동차엔진의 핵심기술이 관건적인 요소이다. 귀국하여 공장을 짓는 것은 근본적인 책략에서 기술혁신의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근년들어, 혼다, 도시바, 마쓰시다와 소니등 대기업은 다시 일본본사로 되돌아가서 공장을 짓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분석가들은 이것은 각 회사의 일본본토에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외에 핵심기술의 유출을 방지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일본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하이테크기술의 연구개발과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는 것은 하이테크기술이 경쟁회사에 의하여 복제되는 것을 막는데 유효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일본경제산업성은 일찌기 해외의 일본기업에 기술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엄밀한 조치를 취하라고 한 바 있다.

 

보스톤컨설팅은 일본기업은 돈을 목숨처럼 아낀다고 말하였다. 일찌기 구미기업은 중국시장에 거액을 투자했지만 그것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과도하게 기술을 봉쇄하여 일본기업은 중국에서의 생산라인에서의 기술혁신에 있어서 구미기업, 한국기업에 많이 뒤쳐졌고, 몇년은 낙후되었다. 중국기업을 기쿠고, 흐름을 타고 움직이며, 개방이 더 많이 된 한국과 구미기업에게 선점당한 후에, 일본기업에게 남은 공간은 그리 많이 않다.

 

기록 공간이 많이 장ㄶ지만,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취약하고 민감한 일본인은 여전히 암중으로 이미 외부유출된 하이테크기술의 제조라인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부도 일본제조업체에 반드시 10%가량의 핵심산업은 일본에 남겨두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신흥 전자류시장, 오디오비디오설비 및 신형 모니터등에서는 한국삼성, 필립스등이 중국기업과 마찬가지로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요 몇년간의 전철이 있어, 소니, 마쓰시다, 도시바등 일본계기업은 기술을 중국으로 다시 가져올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사이노시장연구센터의 섭평은 말했다. 그러나, 현재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데, 아직 어느 정도의 숙성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패인 4: 경쟁격화의 희생품

 

시장에 대하여 몇 박자 늦게 반응한 것이, 일본계 핸드폰기업이 중국시장에서 실패하는 운명을 낳았다.

 

중국이동통신연구원의 리서치에 따르면, 2006년 5월까지, 중국핸드폰시장의 모델은 1853개에 달한다. 그 중에 20개 모델이 판매가 비교적 괜찮고, 43%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 이것은 1%의 모델이 핸드폰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만일 정확하게 제품포지셔닝을 하고, 급속한 시장반응과 강력한 시장프로모션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핸드폰시업은 도태될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중국시장을 10년간 개척해 오면서, 정교하고 작게 만드는데 익숙했던 일본기업은 시종 중국핸드폰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중국소비자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제품포지셔닝과 제품설계에서 계속 실패하였다.

 

노키아, 모토롤라 및 삼성과 비교하면, 기술을 우선시하는 일본계 핸드폰기업든 제품설계에서 시장의 선진적인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들은 고집스럽게 일본시장과 같이 중국의 소비자들도 제품외관보다는 성능을 중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2003년, 2004년의 2년간, 마쓰시다핸드폰은 중국시장에서 17개의 모델만을 출시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동안 노키아는 48개의 제품을, 삼성은 30여개의 제품을 출시했다. 비록 마쓰시다가 2005년에는 10개의 신제품을 내놓았지만, 눈에 확뜨이는 창의적인 뛰어난 제품은 없었다. 대부분의 일본계 핸드폰회사의 핵심연구개발센터는 모두 중국에 있지 않고, 중국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로써 중국소비자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핸드폰판매실적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연구개발팀은 중국에 설립되어 있지만, 모든 설계방안은 반드시 본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번잡한 절차를 거쳐서 신제품이 나오면 이미 시장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이런 혁신이 결핍된 관리시스템은 일본기업의 비애이다. "경영의 신"이라는 마쓰시다(松下幸之助)가 40년전에 창시한 사업부제를 지금도 일본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각 사업부는 독립채산제로 하며 모회사의 경영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런 느슨한 조직구조와 관리시스템은 당연히 자회사의 잠재역량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다. 동시에 관리의 막힘과 저해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중국에 투자한 일본 가전기업을 잠깐 묘사해보면, 우리 가 받는 인상은 거의 모두가 사업부의 화신인 것같다. 히타치는 현재 중국내에 설립한 기업이 122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기업은 모두 각자 자기가 할 것을 하고 있다. 그러나 히타치 동경본사의 입장에서는 122개의 자회사들이 각각 다른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히타치와 비교하면, 마쓰시다의 중국에서의 합자회사는 더욱 느슨한 조직이다. 중국에서 마쓰시다는 그저 1개의 총체적인 투자기구만을 두었고, 각 자회사는 독립채산이다. 이뿐아니라 판매네트워트에서도 마쓰시다는 스스로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로 인하여 마쓰시다의 중국투자회사와 독자회사는 기본적으로 1개회사마다 1개씩의 판매망이 건설되어 있다. 비록 마쓰시다(중국)이 4년전에 사업부제도를 개혁하는 발걸음을 내딛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자회사들이 각자 따로 일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또 다른 반도체기업인 NEC는 일본기업의 사업부제를 중국내에서 최대한 발휘하였다. 현재, NEC는 중국내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지기구를 두고 있고, 엄청난 수의 독립한 "작은 NEC"는 중국내의 "본사" NEC의 독립한 사무실빌딩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