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왕기령(王琦玲) ; <<IT시대주간>>잡지기사.
2006년 11월 22일 오전 9시 30분, NEC의 일본본사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침통했을 결정을 내렸다. "NEC는 중국시장에서 모든 2.5G핸드폰 신제품의 출시를 중지하기로 결정했고, 상응하여, 중국핸드폰사업의 구조조정이 바로 시작되고, 연내에 완료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NEC핸드폰은 중국 시장에서 결국 퇴출된 것이다.
오만한 자세로 일관하던 일본계 기업들은 아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해동안 고생하면서 버텨오던 일본계 핸드폰기업들이 집단으로 중국시장에서 퇴출될 줄은.
이제 중국시장에서 일본핸드폰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상, 2005년에 이미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2005년 3월, 도시바는 보천(普天)과 결별하고, 2006년 3월, 미쓰비시는 중국핸드폰시장을 떠났고, 2006년 초, 마쓰시다는 GSM핸드폰시장에서 철수했다.
왜 집단으로 대응하는 것에 익숙하고, 가전제품, 소비전자, 디지탈제품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이는 일본제조업체들이 중국핸드폰시장의 경쟁에서는 왜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미끄러지는가?
제1장 휘황한 과거는 추억이 되고
1987년 11월, 초가을의 광동은 여전히 여름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때의 기온은 광동중해(中海)집단 동사장 서봉(徐峰)의 심정과 같았다.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금방 매입한 NEC의 아날로그핸드폰은 그를 아날로그핸드폰의 중국내 첫번째 소비자가 되도록 해주었고, 그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모바일폰을 들고 호화호텔을 드나들면 바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핸드폰을 들고 고객과 협상하고, 시장판도를 그려나갈 때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했다. 이 NEC에서 온 핸드폰은 비록 커다랗고, 무거웠찌만, 그것이 서봉에게 가져다준 존귀한 신분체험은 전에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기간동안 당시 2만위안이던 핸드폰은 금전, 지위,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이 막 이동통신에 접어들던 아날로그시대에, 핸드폰통신기술을 도입하면서, 일본계 핸드폰도 신비로운 면사를 벗고 중국에서 금맥을 캐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짧았던 풍광
"중일우호" 이 역사적인 목소리는 중일양국의 여러해에 걸친 민족갈등을 깨뜨렸다. 1972년 9월 25일, 일본수상 다나카 카쿠에이의 중국방문은 중일관계개선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중일우호관계의 건립에 힘썼던 이 수상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위성통신기자재를 가져왔고, 나중에 북경에 이동위성지상기지국을 건설하였다.
"이 설비는 NEC가 제공한 것입니다" 당시 NEC(중국)의 총재인 가네코(金子肇)는 확인해 주었다. 1993년 NEC의 진출이후 NEC(중국)의 수석부총재를 맡았던 두군(杜軍) 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제1차로 중국과 협력한 국가중의 하나입니다. NEC는 가장 먼저 발을 내딛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NEC의 중국내에서의 발전은 일본계 핸드폰의 중국시장에서의 운영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진적인 기술의 우세를 바탕으로 일찌기 NEC는 중국시장을 좌지우지했다. 1977년, 기세등등하던 NEC의 고바야시(小林宏治)가 이끌던 NEC는 전세계 50%의 통신설비시장을 장악한 바 있었고, 모토롤라와 나란히 1G시대의 세계이동통신의 패주가 되었다.
선도적인 통신기술우세를 확보하고, 1억여명의 본국인구만을 가진 시장은 일본계핸드폰기업의 확장욕r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일본핸드폰은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1G시대의 휘황함을 가지고 NEC는 먼저 중국시장에 발을 내딛였다.
1993년, 경치가 뛰어난 무한의 동호에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일본인 특유의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2300만달러의 등록자본을 가지고 가토(加藤浩太郞)는 일본 NEC본사의 중국시장내에서 핸드폰사업을 개발하라는 사명을 받고, 무한 관동과기공업원에 무한NEC이동통신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주로 이동통신과 관련 통신설비를 연구, 생산,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찌기 BP기와 아날로그핸드폰시대에 중국시장에 발을 디딘 때로부터, 무한 핸드폰생산기지를 건립하여 GSM핸드폰을 생산하는 사업을 할 때까지, NEC는 중국사람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졌다. "당시 NEC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자기의 첫번째 핸드폰이 NEC였음을 기억하는 무한 가신디지탈과기유한공사의 사장인 주일범(周一凡)은 말했다. "비론 약간 덩치가 컸지만, 통화품질은 아주 괜찮았다"
2001년에서 2002년사이에, NEC는 중국에서 판매하던 몇 개의 흑백모니터 핸드폰모델의 판매를 시작했고, 중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은 한 때 3%에 달하여, 최대의 일본계 핸드폰제조상이 되었다.
NEC가 먼저 단맛을 보는 것을 본 다른 일본계 기업들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중국시장에 들어왔고, 일본계 핸드폰의 중국내에서의 금맥탐사는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 짧은 몇년은,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허상만을 보여주었다.
현저한 쇠락
짧은 번영이후, 일본계 핸드폰은 급격하게 진흙탕으로 미끄러져버렸다.
2002년에서 2004년까지, 중국핸드폰시장은 가장 발전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일본계 핸드폰은 시장에서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소비자들의 심리를 휘어잡지 못했다.
2003년초의 하루, NEC의 전 사장인 서환호사(西桓浩司)는 예전처럼 회사의 일상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손님들도 전부 만나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신이 NEC의 사장으로 재직했던 4년동안에 한 모든 것을 되돌아보았다. 책상에 놓인 손실245억엔의 2002년도 대차대조표는 그로 하여금 좌절을 느끼게 했다. 서환호사는 아픈 마음으로 쓴 사직서에서 이렇게 썼다. "....사장을 맡은 이후 NEC회사의 구조개혁은 지금 한 고비를 넘겼다. 이외에, 사장을 맡은 4년동안 전력을 다해서 일하였고, 이제는 정력이 더 이상 없으며, 건강상황도 나빠졌다..."
그러나, 이것은 한 면만을 말한 것이다. NEC의 전무이사겸 NEC 솔루션회사 사장이었던 금삼명신(金衫明信)은 사장직을 이어받은 후, NEC는 2G및 2.5G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NEC는 2003년 9월, 노설(盧雪)에게 NEC중국의 총재를 맡겼다. 그는 사장직에 오른 후, NEC라는 이 오래된 브랜드의 통신기업은 시장에서 기술귀족식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강렬한 "제품을 팔줄 모르는 엔지니어"문화가 강렬했다. NEC직원의 상호교류과정에서 노설은 NEC의 기술에 대하여 집착적으로 추구했고, 이것은 NEC로 하여금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흐르게 하여 시장의 냉대를 받은 것이다.
이런 기술편집은 전체 일본계 핸드폰기업의 브랜드발전중에서 일본계 핸드폰기업들에게 심각한 아픔을 주었다. 2005년말에 되자, NEC는 당해 년도 핸도폰판매량목표를 종전의 1500만대에서 1000만대로 낮추어 잡았다. 업계인사의 추정에 따르면 판매적자가 아마도 250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은 2.1%에 불과했다. 마쓰시다는 시장에서 계속 패퇴하였다. 사이노자문회사가 공포한 2005년도 상반기 핸드폰시장의 랭킹에 따르면, 마쓰시다 핸드폰은 GSM시장에서 40%가 격감했고, GSM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하락이 가장 빠른 외국브랜드였다. 그 중 마쓰시다, 교세라, 산요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적어서 모두 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런 참혹한 실적앞에, 마쓰시다전기(중국)유한공사 이동통신회사 사장인 판창태랑(板倉太郞)은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바로 중국시장에서, 마쓰시다 전기는 중국국내핸드폰판매채널을 잘 몰랐고, 시장에 대한 판단착오등으로 인하여 대량의 재고가 쌓이게 되었다. 이로써 채널 및 최종사용자에 손실을 입었고, 직접적으로 핸드폰 대리상들에게 마쓰시다핸드폰의 경영에 대한 믿음을 주지 뫃한 것이다"
마침내,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 일본계 핸드폰은 집단궤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2005년 3월, 도시바는 보천도시바로부터 자본철수를 선언했고, 정식으로 중국 CDMA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로써 일본계핸드폰의 집단 궤멸의 구멍이 열린 것이다.
같은 해 6월, 미쓰비시는 중국핸드폰시장을 떠났다. 12월 마쓰시다는 GSM시장에서 퇴출했다. 마치 도미노처럼 일본계 핸드폰기업들은 핸드폰시장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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