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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개석)

이오(李敖) : 장개석, 나는 못속인다.

by 중은우시 2006. 12. 20.

[이오는 대만에서 말빨이 세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자부한다. 어떤 이름을 남기냐고? 적어도 나는 내가 두 가지 점은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나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살아있는 책을 읽고 죽은 책을 읽지 않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 이것은 어떻게 학문을 하느냐는 것이다. 둘째, 나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두가지는 허풍떠는 것이 아니냐고? 사실 나는 또 하나의 나의 진정한 재주를 숨기고 있다. 여러분에게 얘기해 주겠다. 중국의 옛 선인들은 3가지는 영원하다고 하였다. 즉,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 즉 덕을 세우고, 공을 세우고, 말을 세우는 것이다. 대만은 무슨 공을 세웠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 이오도 무슨 공을 세운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말은 세웠으므로 나는 영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1천오백여만자의 글을 썼다. 내 생각에 나는 인격적으로 독래독왕(獨來獨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내가 허풍떠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내 회고록을 본다면 독래독왕하고, 한 길을 걸어오고, 시종여일하고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그래서 나는 "5.4"시대의 인물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호적(胡適) 선생이다. 호적선생은 한번은 나에게 붓으로 글을 써주었다. 바로 이 글자이다. "영번무략, 영하무고, 영근무원, 영졸무교(寧繁毋略, 寧下毋高, 寧近毋遠, 寧拙毋巧)"(차라리 번잡하고, 아래이고, 가깝고, 고졸한 것을 택하지, 생략되고, 높고, 멀고, 교묘한 것을 추구하지 말라). 이것은 주자의 말이다. 조회옹의 말이다. 호적선생이 이오선생에게 주었다. 나중에 도장을 찍었다. 그의 글자는 아주 수기(秀氣)가 있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약간은 여자들이 쓴 글씨같다. 대륙의 계공(啓功, 치공)선생의 글씨도 수기가 있어서 매우 비슷하다. 여자들의 글씨다. 2차대전때 일본인들에게 속거나 끌려가서 군중에서 성뇨예로 지닌 이런 위안부를 위해서, 이 글을 팔아버렸다. 대만돈 1백만에 팔았다. 약 3만달러이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은 내 손에 없다. 호적은 말한 바 있다. "학문을 하려면, 의심스럽지 않는 곳을 의심하고, 사람이 되려면 의심할 곳을 의심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의심스러운 사람도 쓰고, 사람을 쓰면서 계속 의심하라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호적은 학문을 할 때는 의심스럽지 않은 곳도 의심하라고 하였다. 이 말은 맞다. 어떤 사람이 이런 재주를 가지는가? 호적 자신은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장개석에게 아부하는 글에서 말하기를, 민국전4년에 두번째 일본으로 갔다. 다시 한번 동쪽나라로 간 것이다. 일본의 진무학교를 졸업할 때 나이가 22세였다. 이것은 장개석의 군복입은 사진이다. 다른 한장은 24살때이다. 군대에 들어갈 때의 사진이다. 이것은 장개석이 친필로 쓴 것이다. 일본의 다카다야포병대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가 날조했다고 의심한다. 장개석 자신이 날조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는 근본적으로 다카다 야전포병연대에 가본 적이 없다. 이 연대의 첫번째 조건은 바로 일본사관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사관학교는 바로 일본군관학교이다. 너는 일본사관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다카다포병연대에 들어간단 말인가? 진무학교는 중학교에 해당한다. 그것은 일본사관학교가 아니다. 일본사관학교의 준비반도 아니다. 일본사관학교의 예비학교도 아니다. 일본사관학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 좋다. 나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러분 보라. 중화인민공화국의 10대원수중의 하나인 서향전이다. 그는 황포군관학교 제1기이다. 서향전이 회고록을 썼는데, <<역사의 회고>>라는 것이다. 같이 보자. 제27페이지, 황포군관학교 제1기는 470명을 뽑았다. 봤는가? 첫째날 수업을 들어가면서 신청서를 작성해 냈다. 집단으로 국민당에 가입한 것이다. 우리 다시 보자. 모택동 동지는 말했다. 장개석은 황포군관학교때문에 일어섰다고. 황포군관학교를 만들면서 시작했다고. 장개석은 손중산의 혁명이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봤는가? 나중에 서향전은 뒷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장개석과 면담했다. 단독으로 얘기했다. 그와 얘기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물었다. "너는 어디 사람인가?" 나는 "산서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집에서 뭘했지?"라고 물었다. "교사직을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한편으로 물으면서, 한편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때로는 어떻게 대답하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때로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같았다. 어쨌든 학문을 하는 사람같지는 않았다. 사실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의 졸업생일 뿐이고, 도대체 얼마나 배웠는지, 군사에 대하여 얼마나 아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을 봤을 때, 서향전과 같이 황포군관학교 제1기생들도 모두 장개석이 일본사관학교 졸업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잘못 된 것이다.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에서 배운 적이 아예 없다. 왜 그런가? 학문을 하려면 의심스럽지 않은 것부터 의심해야 한다. 모두 의심하지 않고,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한다.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너 이오는 왜 의심하는가? 나는 믿지 않는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하나의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종인의 회고록을 보았다. 거기서는 장개석이 일본사관학교졸업생이 아닌 것같다는 말이 나온다. 그 때 그들은 중국에서 일본사관학교 졸업생 동창회가 있었다. 장개석도 섞여서 참가했다. 그 후에 장개석은 말했다. 그는 장군(張群) 장군과 동기라고 하였따. 장군은 대만에서 장개석의 비서장을 했었다. 그리고 사천성의 주석도 지냈다. 장군은 이 일을 한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 이오는 의심한다. 장군은 맞다. 그는 확실히 일본사관학교 졸업생이다. 장개석이 그와 동기라면, 장개석이 동기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장군이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봐라. 내 재주가 큰지 아닌지. 내가 찾아냈다. 소화15년 10월, 일본에서 출판한 일본유학중화민국인명록이다. 흥아원에서 출판한 것이다. 모두 봐라. 이것이 바로 중국인이 당시 일본의 각학교에 유학한 명단이다. 639페이지를 보라. 육군사관학교. 봤는가? 제1기부터 우리는 이런 이름들을 볼 수 있다. 제2기, 제3기...제11기(하응흠이 바로 이 기수이다), 모든 명단에 장중정(蔣中正)은 없다. 장개석(蔣介石)이 없고, 장지청(蔣志淸)도 없다. 장씨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말끝마다 장군의 동기라고 하고, 장군도 부인하지 않았다. 봐라. 이오가 일본놈들이 인쇄한 이런 원판을 찾아냈다. 모두 봐라. 소화15년, 1929년에 인쇄된 것이다. 물어보자. 네가 누구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 이오는 속일 수 없다.

 

그러나 장개석이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이런 거짓말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모두 내 손의 보배를 보라. 이것은 옛날 책이다. 이름은 <<민국18년중국국민당연감>>이다. 중국국민당중앙집행위원회당사사료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책이다. 여러분 주의하고 보시라. 이것은 비밀문건이다. 대외에 공개한 것이 아니다. 보이는가? 당내간행물이다. 대외비밀이다. 이것은 1929년의 것이다. 바로 일본인이 이 책을 인쇄한 것과 같은 시기이다. 여러분 봐라. 첫페이지는 바로 장개석의 사진이다. 여러분 국민당이 어떻게 말하는지 봐라: "장중정. 자는 개석. 절강 봉화 사람. 현재 나이 44세, 보정육군속성학교졸업, 일본사관학교 졸업" 봤는가? 모든 중국국민당은 1929년에 거짓말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감안에, 모든 중국국민당은 이 거짓말을 감춰주고 있는 것이다. 창피한 짓인가 아닌가?

 

너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공부한 진무학교는 그저 중학교이다. 물어보자 너는 어떻게 황포군관학교 고장이 되었는가? 당시에 교장을 하기 전에, 너는 어떤 계급이었는가? 여러분 자료 하나를 봐라. 이 자료는 아주 재미있다. 바로 여러 사람이 장개석의 모친에게 생일축하를 하는 것이다. 주집신(朱執信)이 글을 썼다. 이 글은 1918년에 썼다. 주집신(주대부)이 문장을 쓰고, 담연(譚延)이 글자를 썼다. 안에 뭐라고 썼는지 보이는가? "중정은 육군소장이다" 이상하다. 중화민국이전에, 일본에서 그저 진무학교와 같은 군사와 약간의 관계가 되는 중학교를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민국7년(1918년)에 소장으로 될 수 있는가? 누가 너에게 소장 계급을 주었는가? 가짜이다. 자기는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후에 그는 황포군관학교의 제1기 교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거짓말은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황포군관학교 제1기의 학생인 서향전 원수가 그의 회고록에서 도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 졸업생이라고 하듯이 모두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짓말은 나 이오가 밝혀낼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장개석은 근본적으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학력을 사칭한 것이다. 그는 왜 황포군관학교의 교장이 되었는가? 그는 손중산과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손중산이 혁명하는 과정에서 한번은 일본인들이 그를 내보내려 한 적이 있다. 그에게 일본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청나라 정부에서 압력이 있었다. 일본인은 손중산에게 큰 돈을 주었다. 이 돈을 손중산은 동지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나중에 도성장같은 사람들이 손중산의 인품이 너무 나쁘다고 얘기하고 그는 혁명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얘기한 바 있다. 나중에 신해혁명때, 상해는 도성장 그들이 취득하였다. 그러나 이 때 진기미(陳其美, 陳英士)와 같은 상해의 깡패들이 기회가 왔다고 느꼈고, 이 혁명의 결과물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도성장이 입원했을 때, 하루 밤에는 사람을 병원에 보내어 총을 쏘았고, 도성장을 암살한 것이다. 총 쏜 사람은 바로 장개석이다. 장개석은 당시 상해 청방의 깡패였다. 바로 진기미(진영사)의 수하였다. 그는 손중산을 대신해서 복수를 해준 것이다. 이 이유로 손중산과 선이 닿았다.

 

손중산이 당시 황포군관학교를 만들 때, 내정된 교장은 진정으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한 허숭지 장군이었다. 그러나 장개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장 자리를 요구했다. 진과부, 진입부도 절강 사람이다. 준비과정에서 그들은 대량으로 절강사람, 상해사람을 광동으로 데려와서 심어놓았다. 그래서, 황포군관학교는 나중에 부득이하게 교장을 장개석보고 하라고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학교는 설립하기 힘들어 졌다. 바로 이런 상황하에서, 그는 손중산을 협박하였다. 손중산은 협박에 못이며, 그로 하여금 황포군관학교 교장을 하도록 맡긴 것이다. 일은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향전의 회고록안에서도 장개석은 일본사관학교 졸업생이라는 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잘못 말했다. 무슨 이유때문인가. 모든 거짓말은 처음부터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소장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알게 되었다. 원래 1918년 그가 소장으로 될 때부터 계속 속여온 것이다. 우리는 볼 수 있다. 모든 과정은 매우 재미있다. 장군은 평생을 장개석을 위하여 엄호해 주었따. 그는 그가 장개석 동기라고 했다. 장군은 나중에 장군(將軍)이 되었다. 장개석도 당연히 장군이다. 장군은 <<나와 일본70년>>이라는 책안에서 계속 장개석의 거짓말을 옹호해 주었다. 그는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했다고 써준 것이다. 그래서 이 거짓말의 형성은 아주 재미있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진찌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너를 도와서 감춰주면서 네가 그의 동기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모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결과는 그러나 거짓말이다. 나 이오가 찾아낸 것이다. 뒤집어버린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에 나오는 영문 글자가 매우 재미있다. Self evident, 거기에서 이런 진리는 스스로 증명한다고 했다. 증명이 필요없다고 했다. 한번은 내가 법원에서 소송을 하는데, 판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였을 때 내가 고통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였따. 나는 판사에게 말했다. "기녀가 강제로 손님을 받았습니다. 소송할 때, 한번 물어봅시다. 판사님은 기녀에게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증명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런 고통은 증명이 필요없는 것이다. 자연히 바로 고통인 것이다. 여러해동안, 여러 사람은 장개석이 일본사관학교 졸업생이라고 생각해 왔고, 증명이 필요없었다. 오늘, 나 이오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해냈습니다. 바로 학문을 하는 것은 의심스럽지 않은 것을 의심하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의심하지 않는 것을 나는 의심했습니다. 그 후에 증명을 했습니다. 책을 내놓았습니다. 사진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자에게 속아왔는지도 증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