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이론

의리지변(義利之辨) : 2000년간 중국문화의 대함정

by 중은우시 2006. 12. 18.

작자: 여명(黎鳴)(2006년 11월 1일 씀)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논어, 이인편)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이천년간 유가 및 중국인들에게 "의(義)"와 "리(利)"의 논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이 의리논쟁을 둘러싸고, 중국인들은 스스로 고묘하고 유구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일구었다. 중국은 "문명예의의 국가"라는 것도 대체로 이 논쟁에서 나온 것이다. 즉, 중국의 "의"를 좋아하고 "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바로 이 "의리논쟁"은 사실상 이천년동안 중국문화의 대함정이 되었다고.

 

무엇때문에 대함정이라고 하는가? 즉, 사람들이 한번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큰 함정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무엇이 "의"인가? 의는 글자 그대로 미아(美我)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의 다른 사람을 정성껏 사랑하는 도덕적인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무엇이 "리"인가? 의는 글자 그대로 칼(刀)로써 잘라낸 벼(禾)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이 생활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재물을 말한다.

 

"의"와 "리"의 논쟁을 하게 되면, "의"가 "리"에게 이기든, "리"가 "의"에게 이기든 양패구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제외하면 다른 얻는 것이 없다. 그리고 더욱 나쁜 것은 중국인중에서 군자는 위군자(僞君子)가 되고, 소인은 진소인(眞小人)으로 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3의 유형이 없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필자는 '의리논쟁'이 중국의 문화에 끼친 거대한 비극적 함정의 근원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논리학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원론의 시스템하에서는 영원히 정확한 판단능력을 가질 수 없다. 영원히 불완전한 하나의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완전한 시스템이 될 수 있는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의"와 "리"를 말고 하나의 "이(理)"가 결핍되어 있다. 만일 "이(理)"가 있으면, 의리지변은 더 이상 양패구상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理)인가? 바로 진리의 이(理)이고, 공리의 이(理)이고, 특히 "삼대공리(三大公理)"의 이(理)인 것이다. 즉,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공리, 사람들이 경제행위상에서 자주적이라는 공리, 사람들이 문화사상적으로 자유라는 공리이다.

 

중국인은 이(理)가 결핍되어 있는데, 이것은 공자가 이(理)를 언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더욱 심한 것은 공자는 "군자삼외(君子三畏)"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외천명, 외대인, 외성인지언(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상술한 삼대공리를 말살시켰다.

 

무엇이 천명인가? 천명은 사회중 인간의 귀천등급의 예의를 보호하는 것이고, 나중에 송나라 유학자에 의하여 천리(天理)로 비유된 것이다.

 

무엇이 대인인가? 대인은 바로 백성들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성인의 말인가? 성인의 말이라는 것은 백성의 두뇌사고, 언론을 대체하고 이로서 완전히 백성의 두뇌사고, 언론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천명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정치상의 평등이라는 공리를 부정하는 것이고,

 

대인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경제상으로 자주적이라는 공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성인의 말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문화사상상의 자유라는 공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되려면 "유리(有理), 유리(有利), 유절(有節, 즉 義)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석은 쉽다. 먼저 진리가 있어야 하고, 그 후에 이득이 있어야 하며, 이득을 얻은 후에는 아름다운 도덕적인 감정이 있을수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든 간에, 진리는 모두 반드시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이고, 반드시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이다. 아주 유감스러운 것은, 중국인들은 공자이래로 이 첫번째 의미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한나라 이래로 '독존유술'의 상태가 되면서 이것은 중국인의 명을 가장 재촉한 것이 된다. 더욱 슬픈일은 중국인들이 지금까지도 뭐가 좋은줄 모르고, 유가를 유지하고, 유가를 죽을 때까지 얘기한다는 것이다. 진리라는 제일 첫머리가 빠진 '국학'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모르겠다. 중국인의 우둔함은 왜 끝까지 깨어나질 않는 것일까? 필자는 하느님을 믿지않는다. 그러나 나는 정말 하느님이 있어서 그에게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하여 중국인의 마음 속에 완고하게 자리잡은 우둔함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다.

 

이상에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은 2천년간 손해를 보았다. 이 손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이치도 없고, 진리도 없었으며, 이 때문에 영원히 이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점이다. 이런 진리가 없는 손해를가졌는데, 그 근원은 공자가 이천년전에 중국인들에게 의리지변을 뿌려놓았기 때문이고, 더구나 "군자삼외'로 진리를 감추어두었고, 공리를 말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인의 "의"와 "리"는 그저 "의"와 "리"만을 남겼고, 이것은 "군자"와 "소인" 모두가 양패구상하는 비극적 참상을 가져왔으며, 이것은 실제로 이천년이래로 중국문화에서 거대한 함정이 되었다.역대의 중국인들은 이 문화상의 큰 함정에 빠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