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황제 애신각라.부의(溥儀)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이 출판되기 전에 약 16만자의 원고가 삭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7년 1월경에는 기존의 삭제된 부분을 모두 되살린 원본이 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삭제되었던 내용에는 부의가 완용의 사생아를 솥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전반생>>의 책임편집인인 맹향영에 따르면 2004년 3월, 군중출판사는 <<나의 전반생>>의 기록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고본(一稿本)과 이고본(二稿本)에 있던 대량의 내용이 1964년에 출판한 <<나의 전반생>>에서는 삭제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맹향영은 "이번에 출판한 완본은 15,6만자가 더 많고, 주로 부의가 당시에 썼던 '원동국제군사법정' 및 '이혼'에 관련된 내용과 심지어 부의가 완용이 낳은 영아를 솥에 집어던져 죽여버린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용이 다른 사람과 사이에 낳은 사생아를 솥에 넣어 태워죽인 사건은 확실히 있었다. 이것은 모두 부의가 친필로 쓴 글이다. 부의는 완용이 다른 사람과 사통하여 임신한 것을 안 후에, 완용이 낳은 아이를 솥에 던져 죽여버리고는, 안용에게는 아이를 그녀의 오빠에게 주어서 대신 기르게 하고 있다고 거짓말 했다"
"당시의 전문가인 소순이 원고심의를 책임졌는데, 그는 글 중에 독자들이 불쾌하게 생각할 부분은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빠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40여년이 지났으므로 이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
"사실상 완용의 마약흡입은 그녀의 부형(父兄)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심지어 사통문제에 있어서도 그녀의 오빠가 격려하였다. 나중에서야 부의는 알게 되었다. 그녀가 천진을 떠나 대련으로 갈 때, 그녀의 오빠는 모종의 이익을 취득하기 위하여, 자기의 여동생을 일본장교에게 팔아넘겼다"
"1935년, 그녀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쯤 되어서 부의는 그 사실을 알았다. 부의는 당시의 심정을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하고 분노하였으나, 일본인들이 알기를 원치는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완용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었다"
"완용은 죽을때까지도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아이가 세상에 살아있는 꿈을.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솥에 넣어져 불타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그녀의 오빠가 바깥에서 그녀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오빠는 매달 그녀로부터 양육비를 받아갔다. 815이후에 부의는 그녀와 헤어졌는데, 마약을 너무 많이 하고, 병약했으므로 다음해에 길림에서 병사했다."
<<나의 전반생>>의 판본은 여러개인데...다음과 같다.
"유인본(油印本)" : 1957년 하반기부터 부의가 중국인민해방군 심양군구 부순전범관리소에서 1년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20만자의 "회과서(悔過書, 과오를 뉘우치는 글)"적인 성격의 <<나의 전반생>> 초고. 관리소가 유인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회피본(灰皮本)" : 1960년 1월, 군중출판사가 유인본을 회색표지의 연인본(鉛印本, 속칭 회피본)으로 만들었고, 정법계통과 사학계등에서 내부적으로 구매해서 볼 수 있게 하였다.
"일고본(一稿本)" : 1961년 5월, 군중출판사는 부의와 협의를 거쳐, 부의가 다시 글을 썼다. 1962년 6월 <<나의 전반생>>의 1차원고가 완성되었고, 관련부서와 전문가들에게 보여주어 심의를 받았다.
"이고본(二稿本)" : 전문가의 수정의견에 따라, 부의와 책임편집인인 이문달(李文達)이 1고본에 대하여 일부 수정을 가하여, 1962년 10월 2고본을 만들었다.
"정식출판본" : 1963년, 각 방면의 의견을 들은 후, 이문달이 원고에 대하여 수정, 정리를 마친 후에 11월, 여러차례 수정을 거치고 각방면의 의견을 종합한 <<나의 전반생>>이 완성되었고, 1964년 3월에 정식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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