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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홍수전)

태평천국 홍수전(洪秀全)의 사망원인.

by 중은우시 2006. 11. 29.

청나라 동치3년 4월 27일(양력 1864년 6월 1일), 태평천국의 수도인 천경(天京, 지금의 남경)은 청나라 군대의 포위공격하에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었는데, 태평천국의 두목인 홍수전이 천경성내의 천왕부(天王府)에서 사망했다. 향년 51세였다. 그런데, 그의 사망원인에 대하여는 사학계에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대체로 1960년이전까지는 홍수전은 자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이었다.

 

이수성(李秀成)은 태평천국의 후기에 중요한 장수였다. 홍수전이 사망했을 때, 그는 천경에서 천경방어전을 지휘하였으므로 천왕부의 상황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증국번(曾國藩)이 발간한 <<이수성자술(李秀成自述)>>에는 홍수전의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천왕(홍수전)은 이 때 조급해하고 매일 고민했다. 4월 27일에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라고 적었다. <<홍인간자술(洪仁간자술)>>에서도 후반부에 "천왕의 자살은 전국면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태평천국의 적수였던 상군의 두목인 증국번이 같은 해 6월 23일(양력 7월 26일)에 올린 글에서 "역도의 괴수 홍수전은 실제로는 올해 5월사이에 관군이 맹공을 가할 때, 독을 마시고 죽었습니다"라고 적었다. 7월 7일에도 다시 글을 올려"적의 궁녀는 도주의 황씨성의 여자인데, 바로 자기손으로 역적의 시신을 묻었다고 합니다. 신이 친히 신문하여 진술을 얻어낸 바에 의하면, 홍수전은 생전에 여러해동안 신하들을 접견하지 않았다고 하며, 4월 27일 관군이 공격을 맹렬히 하자, 독을 마시고 자살했으며, 몰래 묻고 장례식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성안의 여러 적군들과 성밖의 관병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서 10여일후부터 선포하였습니다" 이상의 자료에 근거하여, 대다수의 사학자들도 홍수전은 음독자살한 것으로 생각했다.

 

곽정이도 홍수전의 죽음에 대하여 "음독자살이라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라고 적었다. 간우문은 <<태평천국전사>>에서 홍수전의 자살은 "사실"이라고 적었다. 나이강은 <<태평천국사고>>에서 이수성자술에 근거하여 홍수전은 4월 19일(양력 1864년 6월 1일)에 음독사망하였다고 적었다. 그러나, 당시의 학자들 중에서도 홍수전의 자살서에 대하여는 약간의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초에, 증국번의 집안에 100여년이나 감추어져 있던 <<상향증팔본당. 이수성친공수적>>이 영인본으로 정식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홍수전이 병으로 죽었다고 적고 있다. "이 때, 개략 3월이 끝나갈 쯤, 4월이 막 시작할 때인데, 이 때 나는 동문성의 위에 있었다. 천왕은 이 때 병세가 심히 위중했다. 4월 21일에 사망했다." "이 사람은 병에 대하여 약을 먹지 않았고, 병을 그대로 놔두었다. 약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그래서 4월 21일 사망했다....천왕의 병은 감로병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약을 먹지 않았으므로 사망하였다" 학자들은 이 기술이 믿을만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증국번이 간행한 <<이수성자술>>은 증국번이 고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증국번의 막료인 조열문은 <<능정거사일기>>에서 7월 7일자에 "중당(증국번)이 나에게 이수성의 진술서를 보게 하였고, 고친다음 군기처에 보내었다. 저녁쯤에야 끝났다". 증국번은 이수성의 진술원고를 군기처에 보낼 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수성의 진술은 문리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정은 명확하다. 군기처에 초록하여 보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증국번이 내놓은 이수성자술서는 수정을 거친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증국번이 이전에 두번이나 글을 올리면서 홍수전이 자살했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이수성 자술서도 그에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홍인간자술>>의 후분부분에서 홍수전이 자살했다고 했는데, 후반부분은 다른 사람이 번역하여 내놓았고, 원고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외부인이 번역할 때 이수성자술의 판각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다. 주의할 점은 <<홍인간자술>>의 원고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는 점이다. "금년 4월 19일, 나의 주공인 노천왕이 와병(臥病) 20여일만에 하늘로 올라갔다". 이러한 말은 믿을만하다. 유천왕 홍천귀복의 자술에서도 "금년 4월 19일, 노천왕이 병사했다. 24일 여러 신하들이 나를 등극시켰다" 조열문의 <<능정거사일기>>의 5월 6일자에서도 "정탐한 소식에 의하면 역적수괴 홍수전이 이미 4월 28일 병사했다고 한다"

 

<<이수성친공수적>>이 영인본으로 나온 이후에는 병사설이 통설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