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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오영(吳英) : 26세의 신비여갑부

by 중은우시 2006. 11. 3.

이름 : 오영

나이 : 26세

출신 : 절강성 동양 사람

직업 : 본색집단 동사장

주요행적 : 3개월내에 630만위안을 기부. 기부랭킹 95위. 총재산 36억이라고 함.

 

거의 하루만에 동양(東陽)에는 평지돌출한 것처럼 돈을 펑펑쓰는, 자산이 수억이라는 겨우 26살의 신비로운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375만위안(한화 약 4억4천원)이나 하는 푸른색 페라리612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동양의 한녕가로 불리우는 냉청가도와 부근의 공원등을 한꺼번에 3.5억위안에 사들였다. 은행대출금 한 푼도 없이.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여자가 지배하고 있는 본색집단(本色集團)의 산하에 있는 세차점과 세탁점에서는 현지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색집단은 BMW, Buick등 고급 승용차를 한꺼번에 20여개 구매한 적이 있다. 이 집단은 동양에서 한꺼번에 12개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본색집단은 직원들의 급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부서책임자는 연봉이 50만-100만위안이고, 심지어 보안(수위)들의 월급여도 2100위안(현지 평균은 800위안이라고 함)에 이른다고 한다.

 

동양본색집단은 2006년 9월 3일 동양세계무역성에 입주했다. 동양세계무역성은 2006년 동양시의 중요공사중의 하나이고, 860무의 토지에 55억위안을 투자하여 2만여칸의 상점을 지닌 대형시장으로 형성된다. 이 동양세계무역성에 오영이 이끄는 본색집단은 일거에 2억위안을 들여 700개의 상점을 구매했다.

 

이전에 본색집단은 2006년 8월 1일, 동양시 가산진 서택소학교 개축공사에 80만위안을 기부했다. 8월 15일에는 오영이 인근 반안현에 50만위안을 기부하여, 37명의 빈곤대학생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동양광채사업촉진회 성립대회에서 오용은 그자리에서 500만위안을 기부했다.

 

일시에 절강성 동양에서는 이 신비로운 여자의 재산에 대하여 의론이 분분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여인인가?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2005년말, 이우의 한 기업의 사장으로부터 6000만위안을 빌려, 황동(구리)의 선물에 투자하여 10억위안을 벌었다고 하기도 하고, 그녀가 부호에게 시집갔다가 재산을 분할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그녀는 사실 어느 대형재단에서 밖에 내세운 허수아비사장에 불과하다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녀는 해외에서 누군가가 검은 돈을 세탁하기 위해서 내세웠다고 하기도 한다. 그녀의 재산규모에 대하여도 처음에는 6억위안이라고 하다가, 본색집단의 투자가 많아지면서 16억위안이라는 설이 돌다가, 최근에는 60억위안이라고까지 한다.

 

1981년에 태어난 오영은 원래 동양시 가산진 당하촌 사람이다. 부친은 유명한 건축공사장의 십장이었고, 모친은 농민이었다. 집안에는 4자매가 있으며 오영이 첫째이다. 초등학교졸업후, 오영은 동양시기술학교에서 재무회계를 전공했다. 1년만에 그녀는 학교를 떠난다. 오영은 이 때를 기억하며 전혀 후회는 없다고 한다. 그녀는 재무회계전공은 이미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편이어서 은행등 기관에 일하는 사람은 일부분이고 대다수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스스로 사업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여 '사회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오영이 학교다닐 때, 부친은 일찌기 근 100만위안에 달하는 공사대금을 받기 위하여 소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수년을 끌게 되었다. 이 소송은 오영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학교를 버리고 장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오영은 학교를 나와서 친척으로부터 여자미용을 배운다. 그리고 동양서가에 미용원을 차린다. 그 중에서 "양태소(羊胎素)"라는 항목으로 첫번째 목돈을 만진다. 이후 그녀는 자동차업종에 뛰어든다. 그녀는 자동차매매의 이윤이 자동차리스의 이윤보다 많이 낮다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이우(義烏)로 가서 자동차리스회사를 차린다. 10여대의 엘란트라를 구매했었는데,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천족당(千足堂)'이라는 발안마점을 차린다. 규모는 동양에서 가장 컸다. 나중에 이우에도 분점을 차린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동양서가에 셰라톤KTV를 차린다.

 

오영은 시장에 대하여 선천적인 예민한 감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한국드라마는 반드시 한류를 불러올 것으로 생각하고, 즉시 광주로 가서 시장을 파악한 후 동양과 이우에 3개의 한국의류점을 차린다. 그녀가 광주에 가서 시장조사를 하는 동안, 점포투기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2001년 전후에 점포투기매매로 그녀는 많은 돈을 만지게 된다. 이 즈음 오영의 자산은 이미 수천만위안으로 불어나 있었다.

 

자본은 머리와 기회를 가진 사람의 것인 듯하다. 오영은 기본적인 자본축적을 이룬 후에 선물업(先物業)에 뛰어든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친구와 얘기하다가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것을 듣고 대량상품의 가격이 대폭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는 사람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듣는 사람은 명확히 알았다. 그녀는 열심히 연구한 끝에, 구리, 천연고무, 원유등에 투자하기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오영은 플라스틱 원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즉시 동북의 치치하얼로 가서 대량의 플라스틱재로를 구매하여 또 한번 큰 돈을 번다. 요영의 자본은 이렇게 신속시 증가하여 수억을 헤아리게 되었다.

 

선물시장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오영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수중의 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녀는 주위의 참모들(몇몇 주요한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분석했다. 부동산업이 중에서 드러나는 것이 관광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호텔에 주목했다.

 

오영은 신금강등 체인호텔에 가맹할 것도 생각하였으나, 그녀는 시장조사후에 생각을 바꾸었고, 스스로 체인호텔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호텔에 대하여 전문화, 개성화, 인성화의 세가지를 갖추도록 했고, 이러한 개념을 지닌 호텔을 건설하기로 하고, 이름을 개념호텔로 하였다.

 

동양본색개념호텔은 8층으로 매층마다 스타일이 달랐다. 중국식도 있고, 유럽식도 있으며, 미국식도 있다. 그 중의 한 층의 방은 전부 동굴처럼 만들었다. 호텔에는 115개의 방이 있는데, 설치한 물품도 완전히 달랐다. 모든 물품, 전기, 가구, 장식품, 벽돌, 타일도 전부 본색집단으 가구성과 장식재료성에서 구해서 썼다. 그리고, 본색집단은 설계와 인테리어까지 원스탑 서비스가 가능했다.

 

오영의 이론에 따르면 비교적 조용한 지역을 골라서 대량의 건물을 사들이고, 이후 이 지역에 부동산붐을 일으켜서 비지니스분위기를 만든 다음에 투자가치의 상승을 노린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호텔을 선택했고, 호텔을 가지고 무역과 부동산이 따라오게 만든 것이다. 금년 3월부터 오영은 동양에 15개의 회사와 지점을 등기했다. 본색집단의 웹사이트에는 본색집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회사는 현재 관광, 상업무역, 호텔연쇄점 및 자본투자를 위주로 하고, 건자재, 공사건축, 공사설계, 인테리어, 전자비지니스, 광고미디어, 오락서비스업까지 일체로 하는 종합적인 집단회사이다" 그녀는 최후로 동양의 한녕가를 선택하여 그녀의 이론을 실천하고자 한다. 본색은 이미 하이얼, 장홍등의 대형집단과 합작계약을 체결하였다.

 

오영은 동영의 개념호텔을 시범적인 것이고 만일 성공한다면 전국을 상대로 똑같이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이미 이우에 설립한 개념호텔은 10월 18일 개업한 이후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외국손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오영이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녀는 외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하였다. 다만, 그녀는 한녕가에 투자한 3.5억위안은 본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호북의 형문에 본색오락중심을 설립하는 중이고, 호북형문의 4성급호텔을 1.2억위안에 인수하고자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