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여전에(이 글은 장오상이 1984년 1월 6일에 작성한 것임), 자주 상해에 와서 장사를 하는 홍콩친구가 시애틀에 있는 나의 집을 손님으로 찾아왔다. 식사를 한 후에 내 서재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벽에 걸려있는 모윤지(毛潤之, 모택동의 호가 윤지임)의 <<청평악(淸平樂)>>과, 신기질(辛棄疾)의 <<만강홍(滿江紅)>>을 보고, 그 밖에 문서나 컴퓨터 데이타가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막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는 갑자기 서재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베토벤의 풀세트 디스크의 곁에 몇장의 등려군(鄧麗君, 등리쥔)의 레코드판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로 입을 열었다. "아...등가천하(鄧家天下)"
본인은 그의 말 뜻을 알았다. 등소평(鄧小平), 등영초(鄧潁超, 주은래의 부인), 등려군의 중국에서의 명망은 예전의 송씨집안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나는 벽에 있는 <<청평악>>을 가리키며, 흥미있는 듯이 말했다. "모택동은 이런 호기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베토벤은 용납하지 못했어. 등소평은 문학에 재주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등려군을 받아들였다. 보기에 중국은 정말 개방하는 것같다" 그때는 1981년 6월 북경에서 6중전회를 개최한 후였다. 그해 초에 "주자파를 압제하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등려군의 노래는 중국에서 여전히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3년에 한번씩 제비가 돌아온다. 최근의 "정신오염반대운동"에서는 등려군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본인은 계속 이렇게 생각했다. 공산독재정권에서는 등려군과 같은 사람은 눈엣가시일 거라고. 이런 사람에는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가수, 영화배우뿐아니라, 뛰어난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테니스나 골프선수를 포함한다. 이런 슈퍼스타들에 대하여 일반인들의 인상은 바로 공연자는 그저 몇시간의 노력만 들여서 돈은 엄청 벌어서 간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하에서 엔터테인먼트사업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거부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운동선수 예를 들어 Borg나 Simpson같은 사람은 TV광고에서 사이다를 한병 마시는 수입이 보통사람은 평생 벌어도 만지지 못하는 금액이 된다.
마르크스의 경제이론 범주내에서, 이런 현상은 도저히 발생할 수가 없다. 즉, 이런 현상의 발생은 마르크스의 이론이 전체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스타는 마르크스이론에서의 자본가도 아니고, 대지주도 아니다. 그러나 노동력만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만일 노동력에만 의지한다면 이런 스타들의 "잉여가치"는 왜 자본가들에 의하여 착취되지 않는 것일까? 사실상, 자본가들만 이런 스타들의 노동력에 대하여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그들에 대하여는 상당히 양보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정부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세금을 매긴다면, 그는 아프리카로 가서 권투를 할 것이다. 스웨덴정부가 Borg에 대하여 세금을 매긴다면, 그는 아예 몽테카를로로 가서 그곳 시민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두개의 기초에 있어서 잘못되었다. 첫째, 가치와 노동력은 일정한 관계가 없다. 모든 가치는 단순히 노동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둘째,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정의는 일반성의 개념이 결핍되어 있고, 모순이 많다. 바로 Irving Fish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수입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자산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용모, 자질, 노동력이 포함된다. 이런 광범위하고 정확한 개념하에서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는 전혀 잉여여부를 언급할 가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지적한 것은 노동력자산이외의 기타 자산의 수입이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에서 모든 사람은 모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고, 스타들도 예외는 아니다.
등려군의 명성이나 이익이 그저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이나 용모에 의지하고 전혀 노동하지 않고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수입도 피아노를 치는 기교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유행곡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등려군이 무대에서 하는 동작을 보면 분명히 많은 노력과 훈련을 거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녀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어떻게 시장의 가치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등려군의 수입은 관중을 착취해서 얻은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의 경우가 다르고, 자질이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대스타의 수입을 따라가려면 쉬운 일이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수입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스타의 성취는 다른 어떤 사업의 성취와도 다르지 않다. 사농공상의 지식투자는 스타의 훈련연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중국공산정권은 예전에 유시곤(劉詩昆), 용국단(容國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은 유효경(劉曉慶)을 용납하지 못하면, 어찌 지식투자로 수입을 얻는 것을 용납하겠는가? 경제현대화를 하고자 하면서, 잉여가치로 천부적인 재능에 따른 수입을 억제한다면, 영원히 풀수없는 매듭이 될 것이다.
최근 중국은 등려군의 노래를 금지시켰다. 당연히 다른 의미가 있다. 일반 중국인이 아는 국제적인 스타는 아마도 단지 등려군 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르크스이론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자본주의사회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이 결핍된 국가에서 이미지를 공격하거나 찬양하는 방법으로 군중을 교육하거나 개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면, 선전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잘 쓰는 방법이다. 혁명에 장애가 되는 문화를 제거하기 위하여 공자가 공격을 받았고, 지식분자를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이유없는 재난을 당하였다. 자본주의의 오염을 반대하려면 등려군은 아주 적당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이번 "반오염"은 중국인민들에게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0여년동안, 중국의 반좌, 반우 정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정치투쟁을 위하여 대자보에 "반"이라는 글자가 나오더라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새해의 제야에 나는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났다.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 라디오에서는 중국대륙의 방송국의 소리가 잡혔다. 노래소리가 흘러나온다. 부르는 사람은 여전히 등려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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