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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21

장전의(張全義): 오대십국, 한 토호의 생존법칙 글: 진사황(秦四晃) 장전의은 당시 절대적인 갑부였다. 이름을 사방에 떨치는 업계의 큰손이고 호풍환우하는 경제계의 우두머리였다. 당나라말기에서 후당(後唐)에 이르기까지 3조의 황권교체를 겪었고, 거기에 황소(黃巢)의 대제정권(大齊政權)까지 추가한다면 4개왕조를 거친 셈이다. .. 2014. 2. 6.
조광윤(趙匡胤): 황위찬탈을 막기 위하여 참서(讖書)를 몰래 고쳐버리다. 글: 우좌(于左) 조광윤은 일개 무부로 군림천하를 하게된다. 그는 빈천할 때 감히 천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지 신에게 점을 쳐서 물어보았던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를 .. 2014. 1. 14.
중국고대에 "농민의 난"은 존재하지 않았다. 글: 양진도(楊津濤) 사학계에서는 "농민의거"의 성격규정과 평가에 대하여 이견이 존재해 왔다. 절대다수의 사람은 "농민의거"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진승, 유방, 주원장, 이자성의 이야기도 귀에 익숙할 것이다. 1949년이후의 중국통사에서 "농민의거", "농민혁명"의 내용은 오랫.. 2013. 12. 22.
주온(朱溫): 역사상 최악의 깡패황제 글: 문사열독(文史悅讀) 역사상 깡패황제는 아주 많다. 다만 그중 제1류의 깡패황제를 꼽으라면 후량(後梁) 태조(太祖) 주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주온은 중국역사상 전설적인 인물이다. 모택동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주온은 사방과 싸워야 하는 처지여서, 조조와 약간 .. 2013. 12. 21.
왜 중국인은 혈기는 없으면서 반란은 잘 일으켰는가? 글: 마혹(摩酷) 중국인에게 혈기는 없다. 이것은 역사나 일상생활에서 무수한 사례를 여기저기서 첮아볼 수 있다. 다만 만일 시야를 넓혀보면, 큰 역사의 각도에서, 중국인은 반란을 가장 좋아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반란의 횟수가 많기로, 빈도가 잦기로 따지면 세계역사상 보기 드물.. 2013. 10. 7.
장소(張韶)반란사건: 당나라때의 가장 웃기는 반란 글: 유병광(劉秉光) 역사의 큰 흐름에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다. 당경종(唐敬宗)때 아주 웃기는 반란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그것이 웃긴다고 하는 이유는 우두머리가 문신무장도 아니고, 황친국척도 아니고, 군벌제후도 아니며, 진승, 황소, 이자성, 홍수전처럼 용맹하고 강경한 농민반.. 2013. 6. 10.
이무정(李茂貞)의 부인이씨: 황제와 결혼하지 않고 황후가 된 여인 글: 수은하(水銀河) 황제의 정실부인이 된 여자를 황후(皇后)라고 칭한다. 이것은 기본상식이다. 그러나, 중국의 5천년 역사에는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났다. 수많은 황후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여자는 남편이 황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후의 봉관(鳳冠)을 썼다. 이 여인은 바로 당나라말.. 2010. 1. 20.
황소(黃巢)의 황색 콤플렉스 글: 지백수흑(知白守黑) 당나라말기의 농민반란군의 우두머리인 황소는 풍운을 질타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당나라의 목숨이 위태롭게 만들었고, 하마터면 바로 붕괴될 뻔했다. 황소를 얘기하면 그저 잔인한 무부(武夫)의 이미지가 확 떠오르고, 그에게서는 그다지 문화적인 분위기가 떠오.. 2009. 6. 19.
한무제 사후의 도굴과정 글: 수은하(水銀河) 한무제(漢武帝)는 웅재대략(雄才大略)의 황제였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는 위풍당당했지만, 사후에는 모두 빼앗겨 버리게 되었다. 그가 묻힌지 4년후에 벌써 장안에는 그의 묘(茂陵)에서 도굴해낸 경서(經書)를 판매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왕망의 신(新)나라가 들어선 후 일어난 농.. 2008. 1. 30.
황소(黃巢)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 황소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으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오래전부터 여러가지 서로 다른 기록이 남아 있다. 우선은 당나라역사에 대하여 적은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서로 자살과 타살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 2006.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