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오대십국)

장전의(張全義): 오대십국, 한 토호의 생존법칙

by 중은우시 2014. 2. 6.

글: 진사황(秦四晃)

 

장전의은 당시 절대적인 갑부였다. 이름을 사방에 떨치는 업계의 큰손이고 호풍환우하는 경제계의 우두머리였다. 당나라말기에서 후당(後唐)에 이르기까지 3조의 황권교체를 겪었고, 거기에 황소(黃巢)의 대제정권(大齊政權)까지 추가한다면 4개왕조를 거친 셈이다. 장전의는 일개초민에서 한지방의 최고갑부가 되어 지방의 대지주가 된다. 그는 군대장군, 귀족 내지 천자의 곁에서 활동하며 물만난 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행동하며 무너지지 않았다.

 

평민에서 토호가 된 장전의는 세상사의 풍운막측한 변화를 보면서 한가지 원칙을 꼭 기억했다. 그것은 수중의 두 자루의 검을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이다. 하나는 재물이고 다른 하나는 여색이다. 이 두 가지 날카로운 무기만 있으면, 그는 성의 주인깃발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성공할 수 있다. 사실도 역시 그러했다.

 

먼저 그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살펴보자.

장전의의 조적(祖籍)은 산동 견성(鄄城)이고, 그는 순수한 농민이었고, 대대로 땅을 파서 살아왔다. 당나라말기, 장씨집안의 조상묘에서 검은 연기가 나온다. 장전의는 장씨 3대중 유일하고 가장 높은 '관리'였다. 당시의 직명은 "색부(嗇夫)"였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농부소리(農夫小吏)"이다. 쉽게 말하면 개략 현재의 촌관(村官)이다. 이 기간동안 아무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상급의 간부들도 수시로 그를 놀리곤 했다는 것이다. 촌관으로 지내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다.

 

사람이 귀한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장전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총명한 머리를 믿었고, 대사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의 위에 서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세의 많은 투기분자들과 마찬가지로, 황소가 인마를 끌어모아 당나라를 무너뜨리려 할 때, 하급 촌관인 장전의는 이것이 운명을 바꿀 기회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거기에 가입한다. 기꺼이 황소의 부하가 된 것이다. 그는 금방 황소의 신임을 얻는다.

 

황소의 기세는 대단했고, 일거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한다. 자신만만하게 대제정권의 건립을 선포한다. 장전의도 자연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대제왕조의 예부상서에 임명이 된 것이다. 이 자리는 고위간부의 임면을 관장하는 자리이다.

 

아쉽게도 대제천하는 오래 가지 못했다. 황소는 얼마후 당나라의 관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장전의는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여겨서 상서직을 수행하지 않고 즉시 고개를 돌려 하양(河陽, 지금의 하남성 맹현)으로 간다. 거기서 허리를 숙여 당나라의 군벌 제갈상(諸葛爽)의 휘하에 들어간다. 제갈량의 추천을 받아, 택주자사(澤州刺史, 택주는 지금의 산서성 진성)를 지낸다.

 

뒤를 받쳐줄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 뒤를 받쳐줄 사람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천재,인재,생로병사는 모두 당신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다. 얼마후 제갈상이 죽어버린다. 군정권력은 모조리 아들 제갈중방(諸葛仲方)의 손에 들어간다. 제갈상의 옛 부하장수 중에서 유경(劉經), 이한지(李罕之)의 두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은 서로 앙숙이었다. 낙양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계속하여 다투고, 무력까지 동원했다. 이한지가 우위를 점하고 유경을 격패시킨다. 그리고 일거에 대본영 하양을 점령하고, 제갈중방까지도 한꺼번에 제거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유경은 급히 장전의에게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막도록 명한다. 장전의는 이해관계를 형량해본 후, 총알받이가 되지 않겠ㄷ고 생각하여, 인마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간 후, 이한지와 교전을 벌이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서로 웃으며 악수하고 형, 동생으로 칭하며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창끝을 돌려서 하양으로 진공한다. 누가 알았으랴. 이번에 장전의는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 이한지는 유경과의 싸움을 버텨내지 못한다. 한번 회합에 바로 패전해서 물러난다. 어쩔 수 없이 장전의는 이한지를 데리고 진왕(晋王) 이극용(李克用)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극용의 지지하에, 결국 제갈중방과 유경을 몰아낼 수 있었다. 이한지는 원하는대로 하양을 얻고, 장전의는 하남윤(河南尹)이 된다.

 

몇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장전의는 깨닫게 된다. 이 관료사회는 정말 순식간에 변화하는 곳이라는 것을. 견실한 실업으로 기초를 닦아놓지 않으면 눈앞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그는 돈만이 귀신을 부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나머지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다. 그래서 계책을 세운다. 스스로 돈을 버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남윤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농업을 경영한다. 지방의 백성들에게 헤택을 준다는 명목하에, 대거 자신의 재물을 끌어모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엄청난 갑부, 대토호가 되어, 그 어떤 정치가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재물이 바로 자본이다. 재물이 바로 발언권이다. 부호가 된 장전의는 다시 직위가 얼마나 높은 관리를 만나든지 간에, 모두 장전의를 높이 봐주었다. 그러나 장전의는 자신의 재물로 인하여 머리가 흐리멍텅해지지는 않았다. 그의 머리는 아주 맑았다. 그들이 그에게 잘 대해주는 것은 그의 돈을 보는 것이지 그를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일이라도 알거지가 되면 아무도 그를 본체만체 할 것이고, 그의 성과 이름조차 모를 것이다.

 

재물은 사람들이 그와 사귀고 싶어하는 전제가 되었다.그렇다면 관료들에게 잘보이고, 재물과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장전의는 인간성의 약점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다. 토호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검을 장악해야 한다. 하나는 산처럼 쌓여 있는 금은보화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혼백을 홀릴 수 있는 묘령의 여자이다. 재색(財色)은 관료정치인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두 가지 무기이다.

 

하남윤인 장전의는 당시에 어쨌든 이한지의 영역내에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이한지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개인간의 선물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해동안 이한지의 군수물자는 모두 장전의가 부담한다. 단지 이한지라는 인물은 정말 모실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군자금을 가져가면 군대에 쓰지 않고, 모조리 각급 장군들에게 뿌렸다. 군대는 흐트러져서 전투력이라고는 없었다. 장전의는 이를 보고 무저동(無底洞)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한 무리의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계집질하는 플레이보이와 게으름뱅이를 먹여살리는 격이었다. 이한지가 진주(晋州), 강주(絳州)로 출병한 틈을 타서, 장전의는 아예 이한지의 본거지를 차지해버린다. 그리하여 하남윤과 하양절도사를 겸임한다.

 

무릇 군벌관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의 영역을 빼앗으려고 하면 즉시 안면을 바꾼다.이한지는 장전의가 자신의 위기를 틈타 부저추신(釜底推薪)하는 것을 보자 눈이 벌개진다. 그는 진왕 이극용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전의를 섬멸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한지가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정전의는 일찌감치 준비를 해놓았던 것이다. 당시 중원에서 세력이 가장 강대한 자는 주전충(朱全忠)이었다. 바로 나중에 당나라에서 황제위를 찬탈하여 대량(大梁)을 건립한 주황(朱晃)이다. 장전의는 돈으로 관계를 뚫어 일찌감치 주전충에게 의탁했다. 주전충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장전의의 하양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는다.

 

장전의는 잘 알았다. 주전충도 공짜로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게 뭔가를 계속 공급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보호막이 되어주려고 할 것인가? 주전충의 세력은 컸다. 그는 계속 당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이 황제의 용상에 앉고자 했다. 장전의는 주전충의 그런 마음을 잘 읽었다. 그래서 아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고 돈과 재물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이렇게 전심전력을 다하여 힘을 바치니, 주전충으로서도 그를 홀대할 수 없었다. 대량을 개국하기 전에, 주전충은 가장 돈되는 공사를 장전의에게 넘겨준다. 그것은 바로 그로 하역므 미래 수도의 건설 즉 낙양궁성의 건설을 책임지게 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것을 통하여 장전의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긁어모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장전의는 낙양에서 자신의 장원도 하나 만드는데 이름을 "회절원(會節園)"이라고 짓고, 정대누각(亭臺樓閣), 산수지사(山水池榭), 없는 것이 없었고, 장관이었다.

 

주전충이 대량을 건국하고 황제가 된다. 그는 장전의를 잊지 않았다. 계속 하양절도사 겸 하남윤에 유임하게 하는 외에, 장전의에게 위왕(魏王)이라는 작위까지 덧붙여 준다.

 

속이 깊은 장전의는 득의망형(得意忘形)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의 주황제가 이미 옛날의 주장군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모셨다. 돈이 있는 사람으로서 주황제에게 쓴 돈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해야할 것인가? 장전의는 또 다른 검을 꺼낸다. 바로 여인이다.

 

주전충이 호색했다는 것은 다 달고 있는 사실이다. 건화2년(912년), "주전충은 전투에서 패배하여, 돌아오는 길에 병이 들었다. 낙양에 돌아온 후 장전의의 회절원에서 피서했다. 개략 10일간 머물렀는데, 병이 있는 몸으로, 장전의의 처첩과 딸들과 모조리 잠을 잔다. 장전의는 이 일을 별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장계조(張繼祚)는 부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검을 빼내들고 주전충이라는 이 음탕한 황제를 죽이려 했다. 장전의는 '내가 이한지의 병사들과 하양에서 싸울 때, 나무조각을 찝으면서 살았다. 말 한마리만 남아서, 죽여서 군인들의 먹을 거리로 내놓으려 했다. 죽음이 조석에 달려 있을 때, 대량 군대가 출병해서 오늘날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은헤를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장계조는 멈추었다. 장전의는 세상사를 잘 알았다. 여자는 입는 옷과 같다. 황제가 입고 싶어하면 갖고 가서 입으라는 것이다.

 

말년의 주전충은 의심이 아주 많았다. 장전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머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장전의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아름답고 애교있는 부인 저씨(儲氏)였다. 저씨는 기본적으로 그때 이미 황제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장전의는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감수했다. 다행히 주전충은 그보다 먼저 죽는다.

 

후당(後唐)이 후량(後梁)을 멸망시키고, 당장종 이존욱이 주씨를 몰아내고 당왕조를 부활시킨다. 장전의는 그러나 바람이 부는대로 키를 잡는데 고수였다. 이존욱이 동도 개봉을 함락시키자마자, 장전의는 금은보화를 몇 대의 마차에 가득 실어서, 급히 낙양에서 개봉으로 싣고 가서, "니수대죄(泥首待罪)"한다. 즉, 머리와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나가서 죄를 청한 것이다. 이 수법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이존욱은 그의 죄를 묻지 않았을 뿐아니라, 기꺼이 몇 수레의 금은보화를 받는다. 그리고 연회를 베풀어 장전의를 대접해준다. 술을 마시고,이존욱은 명을 내린다. 장전의를 상서령(尙書令)에 봉하고, 계속하여 위왕, 하남윤으로 남게 해준다.

 

장전의는 마음 속으로 흥분하고 격동한다. 나이든 몸인 것도 잊은 채, 연신 "부복감체(俯伏感涕)"한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장전의의 본명은 장언(張言)이다. "전의"라는 이름은 당소종(唐昭宗)이 하사한 이름이다. 주전충이 등극하자 그에게 "종석(宗奭)"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제 강산이 다시 이씨의 당나라로 바뀌었으니, 다시 당황실이 하사한 이름 '장전의'로 돌아간 것이다.

 

격동은 격동이고, 늙고 간사한 여우 장전의는 요행에 의존하지 않았고, 조그만치도 태만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계속하여 그의 생존법칙에 맞추어 당황제에게 접근한다.

재물은 여전히 길을 뚫는 선봉의 역할을 해낸다. 장전의는 조정에 대량의 전답과 저택을 헌납하였고, 이존욱으로투터 큰 칭찬을 받는다.

미녀 수법도 이존욱에게 쓰기 어려웠다. 그것은 이존욱이 호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로 그의 황후인 유옥낭(劉玉娘)이 무서운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장전의를 난감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는 황후에게 손을 쓴 것이다. 유황후는 재물에 대한 탐욕이 있었다. 그녀가 부추겨서 당장종 이존욱은 여러번 그의 집을 찾아간다. 하루는 유황후가 하루는 돌연 장전의에게 양녀가 되겠다고 청한다. 장전의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장종이 다시 한번 말한 후에야 그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의 늙은 얼굴에는 마음 속으로부터의 수총약경(受寵若驚)이 그대로 드러났다. 황후가 양부에게 절을 하자, 장전의는 급히 먼저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장전의는 물론 잘 알았다. 황후에게 부친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황후는 장씨집안의 재물을 본 것이다. 그후에 명절을 맞이하면 장전의는 집안의 보물, 진주마노, 금은보화를 모조리 양녀인 황후의 후궁으로 보냈다.

황후를 해결하고 나니, 황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장전의가 자신이 있었다.

기실 잘 생각해보면, 토호도 사는게 힘들다. 부가 너무 두드러지면, 여러 신선들을 모두 모셔야 한다. 사람은 그래도 돈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