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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파관11

리광만(李光滿)의 대자보는 문혁2.0의 전주곡인가? 글: 건원(乾元) 최근 들어 이름없는 한 극좌파 논객이 쓴 살기등등한 시평 라는 글을 중국의 각 대형매체에서 속속 전재하고 있어, 국내외의 중국미래에 관심을 가진 대소매체, 개인방송들에 의해 이는 문혁2.0으로 향하는 전주곡이 아닌지 주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리광만의 이 글을 문혁직전에 요문원(姚文元)이 발표한 는 글이나 혹은 북경대학의 섭원재(聶元梓)의 그 문혁 최초의 대자보에 비유하면서,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來風滿樓)라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살벌한 기운을 느끼고 있고, 중국의 미래에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있다. 리광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앞에서 언급한 요문원이나 섭원재는 어찌 되었건 중국체제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있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리광만은 기실 아마추어 우마오(五毛)이다. 인.. 2021. 9. 2.
호적(胡適)의 천년일탄(千年一嘆) 글: 사상(史翔)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저 결과만 있을 뿐이다. 지금 70년전 장개석의 '창구학인계획(搶救學人計劃)'을 되돌아보면, 확실히 중공의 호구에서 '학인을 구해낸 것'이다. 대륙이 중공에 점령되기 전에 대륙을 떠난 지식인 호적, 부사년(傅斯年), 전목(錢穆)은 여전히 자유사회에서 자유사상을 전승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대륙에 남았던 걸출한 지식인들은 '반우' 문혁'으로 거의 모두 박해를 당했고, 환상을 깨지고, 악몽만 남게 되었다. 1948년 회해전역(淮海戰役)이 시작되었을 때, 국민당군대는 전투에서 불리했다. 장개석은 좋지 못하다고 예감하고, '창구학인계획'을 제정하기 시작한다. 명단에는 모두 국내에서 탁월한 성취를 거둔 걸출한 지식인들이었다. 그 때는 그들 주에 대다수는 의식하지 못했었다.. 2020. 8. 16.
요문원(姚文元): 묘비에는 처의 이름만..... 글: 섭영렬(葉英烈) 최근 필자는 상하이 교외지역으로 요문원의 묘를 찾아갔다. 그것은 보통의 묘들 사이에 있었고, 묘비에는 요문원의 이름이 없었으며, 단지 그의 처인 김영(金英)의 이름만 새겨져 있었다. 김영은 1996년 8월 19일 병사한다. 안장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아무도 이 김.. 2020. 2. 26.
오함(吳唅):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글: 관우당주(觀雨堂主) '문혁'을 회고하는 글에서 반드시 언급해야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전 북경시 부시장이자 명사(明史)전문가인 오함이다. 1965년 11월 10일 요문원(姚文元)은 기수 강청(江靑)의 뜻을 받들어 "신편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을 평한다"라는 글을 상해 <문.. 2019. 5. 27.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모택동비서 전가영(田家英)의 사망진상 글: 양성만보 2010. 10. 9. 전가영은 1966년 5월 23일에 사망한다. "문혁"이 시작된 후, 등탁(鄧拓)에 이어 두번째 희생자이다. 전가영은 한을 품고 죽었다. 이 점은 의문이 없다; 그리고, 전가영이 자살한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문이 없다 -- 관방이건 가족이건. 다만, 최근 들어 해외의 잡지에서.. 2013.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