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제18 역사상의 "태종(太宗)": 모두 "내로부정(來路不正)"한 황제들이다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중국 수천년의 왕조사에서 묘호(廟號)는 아주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묘호"와 "시호(諡號)"는 모두 어느 정도에서 황제일생의 공과시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만 후세의 황제는 시호의 수가 늘어나서, 자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시호를 정할 때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다만 '묘호'는 '시호'를 대체하여 황제에 대한 개관정론(蓋官定論)의 중요한 근거이다. 가장 원시적인 묘호는 상(商)나라때 건립된다. 당시에는 단지, "태(太)", "고(高)", "세(世)", "중(中)"의 4종이었다. 그리고, "조유공이종유덕(祖有功而宗有德)", 조는 공이 있는 황제에게, 종은 덕이 있는 황제에게 붙인다는 기준으로 조종의 묘호를 정했다. 나중에 왕조가.. 2020. 10. 26. 재상 조참(曹參)과 환관 조등(曹騰), 누가 조조의 선조인가? 글: 노황설사(老黃說史) 재상 조참과 태감 조등. 누가 조조의 선조일까?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조의 조상은 둘이다. 하나는 재상 조참이고, 다른 하나는 태감 조등이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일까? 조조는 중국역사상 유명한 인물이다. 일찌기 동한의 승상을 맡았고, 천자를 끼고 제.. 2019. 3. 21. 항우가 죽은 후 항씨일족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한5년(기원전202년) 십이월, 서초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하다. 유방은 곡성(谷城, 지금의 산동 평음 서남쪽)에 항우의 묘시로 선정하고 노공(魯公, 초회왕은 항우를 노공에 봉한 바 있다)의 규격으로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친히 장례식에 참석하여 곡을 하며 애.. 2018. 12. 7. 여후(呂后)는 광견병으로 죽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고대 중국에 3명의 국가통치권을 장악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들은 각각 여치(呂稚, 즉 여후), 무조(武曌, 즉 무측천)과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이다.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여인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마이 있고, 일단 정점에 도달하면 전.. 2018. 11. 7. 유장(劉章): 감히 여후와 맞서싸우다 글: 두문자(杜文子) 유방이 죽은 후, 여후의 권력은 날이갈수록 커졌다. 한헤제가 붕어한 후, 한나라는 마침내 여치(呂稚, 여후의 이름)의 시대를 맞이한다. 여씨일족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여후는 한편으로 여러 여씨를 후(侯)와 왕(王)으로 봉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 여씨여자.. 2018. 7. 23. [황자쟁위술] 차도살인술(借刀殺人術) 승기타겁패(乘機打劫牌) 유장편 황위승계를 노리는 황자는 시시때때로 기회를 노리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한편으로 현덕(賢德)하다는 것과 군주의 풍도를 보여 부친이 자신에게 안심하고 권력을 넘겨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목을 여러 곳에 심어서 부친 정책의 문제점을.. 2015. 11. 1.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