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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재상 조참(曹參)과 환관 조등(曹騰), 누가 조조의 선조인가?

by 중은우시 2019. 3. 21.

글: 노황설사(老黃說史)


재상 조참과 태감 조등. 누가 조조의 선조일까?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조의 조상은 둘이다. 하나는 재상 조참이고, 다른 하나는 태감 조등이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일까?


조조는 중국역사상 유명한 인물이다. 일찌기 동한의 승상을 맡았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명령했으며, 나중에 위왕에 봉해지고, 조위 입국의 기초를 닦는다. 조조가 사망한 후 무왕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아들 조비가 황제에 오른 후에는 무황제로 추존되고 태조라는 묘호를 받는다.


다만, 조조의 출신에 관하여 사료에서는 서로 모순되게 기록하고 있다. 일설에서는 서한 승상 조참의 적계후손이라고 하고, 다른 일설에서는 동한 환관 조등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후세의 독자들이 진가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태조무황제, 패국(沛國) 초인(譙人)이다. 성은 조(曹)이고, 휘는 조(操)이며, 자는 맹덕(孟德)이다. 한나라때의 상국 조참의 후예이다." 이 조참은 보통인물이 아니다. 일찌기 진나라때 패현의 옥연(獄掾)이었다. 즉 감옥을 관리하는 하급관리였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상당히 유명했다. 소하(蕭何)는 조참의 상사였고, 유방은 범인을 압송하는 관리(亭長)으로 그의 부하였다.


기원전209년(진2세 원년), 유방을 따라 패현에서 진나라에 항거하여 거병한다.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많은 공을 세운다. 이국(二國)과 이십이개현을 함락시킨다. 유방이 황제를 칭한 후, 공신으로 논공행상때 조참은 '2등'으로 평양후(平陽侯)의 작위를 받는다. 한혜제때에는 관직이 승상에 이른다. 소하이후 한나라의 두번째 상국이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조상국(曹相國)'이라고 부른다.


단지 조참은 상국을 맡은 후, 계속하여 소하가 제정한 율령을 받들었다. 이로 인하여 하나의 성어가 생겨난다: 소규조수(蕭規曹隨). 한 왕조가 처음 창업할 때,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경제의 건강한 발전에 유리하다. 그러한 특수한 역사조건하에서, 조참의 '무위(無爲)' 자체는 조석개변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삼국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환제가 재위할 때, 조등은 중상시대장추(中常侍大長秋)였고, 비정후(費亭侯)에 봉해진다. 양자 조숭(曹嵩)이 후사를 잇는다. 관직은 태위(太尉)에 이른다. 그의 출신내력을 확인할 수가 없다. 조숭은 태조를 낳는다." 이 말은 결국 조조가 한환제시기의 대환관 조등의 손자이고, 부친 조숭은 바로 조등의 양자라는 것이다.


이 조등도 보통인물이 아니다. 조등은 처음에 황문(黃門)에서 관리를 지낸다. 한순제가 즉위한 후, 소황문(小黃門), 중상시(中常侍)가 된다. 나중에 동한의 한환제를 옹립하는데 공이 있어, 비정후에 봉해지고, 대장추로 승진한다. 소위 대장추는 진나라때는 장행(將行)이라고 불렀다. 한경제때 대장추로 개칭한다. 황후의 지시를 전달하고 궁중일을 관리하는 황후의 태감중에서 우두머리이다. 이를 보면, 조등은 한환제의 신임을 크게 얻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에 봉해질 정도라면 환관으로서 조등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르지 못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것이다. 다만 환관은 자식이 없다. 궁안에서 외롭다. 이런 영화부귀는 1대로 끝날 수 있다. 다만 궁중에는 특별한 규정이 있어, 환관도 양자를 들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자는 상속권을 인정받는다. <후한서. 환자열전>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양가4년에 조서를 내려, 환관의 양자도 작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환관의 양자 신분이 확인되면 작위와 봉지를 상속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등은 양자를 들이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조등이 거둔 아이는 바로 조조의 부친인 조숭이었다. 조숭의 출신내력에 대하여 사서에서는 명확히 적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관련 자료를 종합하여 조숭이 아마도 조등과 같은 고향인 패국 초의 사람인 하후씨가족(夏侯氏家族)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하후씨는 조씨와 조조시기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들은 조조와 함께 성공하고, 그후 조조의 심복장수들이 된다. 그리하여, <삼국지. 위지>는 하후연, 하후돈을 조인, 조홍, 조휴, 조진과 나란히 한 권에 넣었다. 이것은 그들의 동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마도 조조의 부친 조숭이 바로 하후씨집안에서 양자로 들어간 인물이라는 것을 빍히려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조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분명히 하후가족의 피일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조등이 조참의 후예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도 증거는 부족하다. 비록 동한, 서한이 그다지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조등의 세계는 불명확하다. 그저 그의 부친이 조절(曹節)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런 관계는 인위적인 것이다. 조조가 한나라승상 조참과 관련된 것은 고인들이 자신을 위하여 그럴듯한 조상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나라황제들은 노자를 조상으로 찾아냈고, 조조는 자신을 위하여 상국인 조상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것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