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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유장(劉章): 감히 여후와 맞서싸우다

by 중은우시 2018. 7. 23.

글: 두문자(杜文子)


유방이 죽은 후, 여후의 권력은 날이갈수록 커졌다. 한헤제가 붕어한 후, 한나라는 마침내 여치(呂稚, 여후의 이름)의 시대를 맞이한다. 여씨일족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여후는 한편으로 여러 여씨를 후(侯)와 왕(王)으로 봉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 여씨여자들을 유씨남자들에게 시집보낸다. 유씨자제중에서 기개가 있어 이런 혼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여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유우(劉友)와 유회(劉恢)가 바로 대표적 인물이다.


여씨의 권력은 천하를 쥐고 흔들었고, 유씨자제들은 그저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조정에서도 화는 나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수면의 아래에서는 암류가 흐르고 있었다.


첫번째 큰 파도를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하마터면 독주에 독살당할 뻔한 제왕(齊王) 유비(劉肥)의 둘째아들 유장(劉章)이다. 그는 용맹하면서 모력도 있었다. 여후와 감히 싸울 만했다.


여후는 야심만만하고, 유비가 가지고 있는 70개성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뺏을 수는 없어서, 그녀는 핑계거리를 찾아서 동쪽을 잘라내고 서쪽을 잘라내서, 유비의 70개성은 불완전하게 바뀐다.


먼저, 여후는 여대(呂臺)를 여왕(呂王)에 봉하고 제(齊)나라의 제남군(濟南郡)을 잘라내서 준다; 다음으로 유장(劉章)을 장안(長安)으로 불러들여 주허후(朱虛侯)에 봉하고, 여록(呂祿)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낸다; 다시 유장의 동생 유흥거(劉興居)를 장안으로 불러들여 동모후(東牟侯)에 봉한다; 마지막으로 제나라의 낭야군(琅琊郡)을 유택(劉澤)에게 떼어주고, 유택을 낭야왕으로 봉한다; 유비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는데, 2명은 장안으로 불러들이고, 큰아들 유양(劉襄)만 곁에 남겨두어서, 아주 적막했다.


장안으로 온 유장은 여러가지 제약을 받고, 시시때때로 멸시를 받는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성질을 부리는 것은 필부의 모습이다. 은인자중하면서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영웅이다. 여치가 관직을 봉하면, 유장은 받아들인다; 여치가 딸을 주면 유장은 또 받아들인다; 유장은 여씨를 정실로 삼았을 뿐아니라, 관계도 아주 좋았다. 그녀와 애정이 깊었다.


유장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반항하지도 않고, 냉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여치가 그에게 간첩을 하나 보냈지만, 그는 장계취계로 그 간첩과 잘 지냈고, 그 간첩을 이용하여 반간계를 쓴다. 근접전을 벌이기 전에는 모두 위험천만한 간첩전이다. 누구든 먼저 기밀을 얻어내면 그가 승리할 수 있다.


한번은 여후가 주연(酒宴)을 베풀었고, 유장으로 하여금 주리(酒吏)를 맡게 했다.


어둠 속에서 살아온 유장은 이제 햇볕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여씨에게 유씨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여후가 그에게 주리를 맡으라고 하자, 그는 기회를 잡아 조건을 내건다: "영을 어기는 자는 군법으로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여후가 승락한다. 유장이 어떻게 노는지 보려고 한 것이다. 유장은 명을 내린다: 주연에서 사사로이 도망치는 자는 참한다. 유장의 이 주령(酒令)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후가 이미 윤허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모두 그저 술을 몇잔 마시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긴다. 더더구나 주살하고 효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갔을 때, 유장은 노래를 불러서 흥을 돋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좋다고 말한다. 여후도 미소로 동의했다. 유장은 경전가(耕田歌)를 부르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 조소한다: "너의 부친이 농사짓는 닐을 안다고 한다면 그럴 듯하지만, 너는 제왕의 아들인데, 어떻게 농사짓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유장은 유방의 손자이고, 황실의 성원이다. 자연히 농사짓는 일을 알 수는 없다. 유장은 자기는 안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후는 재미있어하며 유장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한다.


유장은 한가운데 서서 술을 마셔서 목을 추긴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한다: "심경기종(深耕穊種), 입묘욕소(立苗欲疏), 비기종자(非其種者), 서이거지(鋤而去之)"

유장의 가사에 숨은 뜻은 이러하다: 우리 유씨는 한고조 유방이 천신만고끝에 밭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게 천하를 얻었다. 고조황제는 천하의 영웅들과 피로서 맹세했다. 유씨가 아니면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것은 바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씨를 성기게 심어야 씨가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유씨가 아닌데도 왕이 된 자들은 모두 잡초와 같아서 호미로 하루빨리 제거해 버려야 한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한번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유장의 노래는 바로 여씨일족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여후는 유씨자제를 제거하고자 했는데, 유장이 자신의 면전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굴다니,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여치는 노래를 들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번 주연에서 유장은 검을 들고, 탁자를 돌면서 감독한다. 사람들은 반드시 술을 마셔야 했다. 한 명이 술을 마시지 못해서 몰래 도망쳤다. 그러자 유장은 검을 빼내들고 휘둘러 목을 베어 버린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진다. 유장이 정말 사람을 죽인 것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은 여씨였다. 그러나 유장은 먼저 군령을 적용한다고 했고, 여후도 동의했으니, 여후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유장의 이런 행동에 여씨들은 간담이 서늘했다.


이후, 마치 난전 가운데 누군가 큰 깃발을 들고 일어난 것처럼 적지 않은 조정신하들은 서광을 본 것처럼 속속 유장에게 의탁한다.


유장이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는 담량이 컸다. 다음으로 그는 여씨부인의 방심을 얻었다. 이는 다른 유씨자제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셋째, 유장은 봉지가 부유해서 뒷배경이 든든했다.


여후는 임종때, 여록을 상장군에 봉하고, 조정이 북군을 장악하게 한다. 여산은 남군을 장악하게 하여 태위 주발의 군권을 박탈한다. 여후가 이렇게 한 것은, 여씨집안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유장의 처는 여록의 딸이다. 그래서 그는 금방 여씨가 모반하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유장은 급히 사람을 형인 제왕에게 보내어 이를 알린다. 그로 하여금 즉시 병력을 서쪽으로 보내어, 반란을 평정하고 여산의 군대를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그후 주발과 진평이 교묘한 계책을 써서 여록을 쫓아버리고 다시 북군을 장악한다. 다만 여산의 남군은 여전히 위협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유장이 일어선다. 그는 천이 넘는 병마를 이끌고, 황궁으로 쳐들어가서 여산을 찾는다. 결국 시랑부리의 화장실에서 그를 찾아내어 죽여버린다.


그후 유장은 주발등과 힘을 합하여 여씨일족을 체포하여 죽인다.


여러 여씨를  주살한 공으로, 유장은 한문제에 의하여 성양왕(城陽王)에 봉해진다. 아쉽게도 유장은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23살에 죽는다. 그의 출현은 마치 유씨일족을 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임무를 완성하자, 바로 떠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