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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54

연(風箏)의 발명자는 한신(韓信)이다. 글: 허휘(許暉) [한국에서 연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국에서는 풍쟁(風箏)이라고 부른다] "풍쟁(風箏)"은 처음에는 "철마(鐵馬)"의 별칭이었다; 송나라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연을 날리다"는 의미의 연이 되었다. 명나라때 진기(陳沂)가 쓴 <<순추록(詢芻錄)>>에.. 2009. 2. 19.
한신(韓信)의 "무행(無行)" 글: 독서삼미(讀書三味) <<사기.회음후열전>>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위포의시, 빈무행(始爲布衣時, 貧無行)"이라고 적혀 있다. <<한서. 한신전>>에도 마찬가지로 "가빈무행(家貧無行)"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에서 "무행"의 의미에 대하여 일부 명가들은 모두 "한.. 2009. 2. 9.
역사진상추리: 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 글: 왕녕(王寧) 초한간의 싸움에서 "배수진(背水陣)" 혹은 "배수일전(背水一戰)"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신이 배수진을 펼친 것은 "치지사지이후생(置之死地而後生, 먼저 사지로 몰아넣은 후에 살길을 찾는다)"는 전략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것은 천.. 2008. 12. 13.
한신(韓信)은 왜 독립하지 아니하였는가? 한신이, 유방, 항우와 삼분천하(三分天下)를 할 실력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가 유방에게서 독립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이중천(易中天)교수는 "부인지인(婦人之仁, 아녀자의 약한 마음)"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한신이 주관적으로 삼분천하를 준비할 결심이나 의지가 없었고, 정치적.. 2007. 11. 30.
한초삼걸(漢初三傑)의 서로 다른 최후... 작자: 진측의(陳則義) 유방이 천하를 얻었을 때, 수하의 문신과 무장은 부지기수였다. 그 중에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의 공이 가장 컸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을 이들을 "한초삼걸(漢初三傑)"이라고 부른다. 유방의 평가는 정확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술자리에서 여러 신하들에.. 2006. 10. 9.
유방(劉邦)의 용인지도(用人之道) <<사기 고조본기>> 유방 : 만일 나라면 병사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 : 폐하는 10만이상을 거느릴 수 없을 것입니다. 유방 : 그대는 어떠한가? 한신 :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 유방 : (웃으며) 다다익선이면서, 어떻게 나에게 붙잡혔는가? 한신 : 폐하는 병사를 거느.. 2006.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