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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114

중국상고시대의 3대호수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의 호수는 청해성의 청해호(靑海湖)이다. 수역면적은 4,583평방킬로미터로, 2위인 강서성의 파양호(鄱陽湖)는 최대수역면적이 약 4,000평방킬로미터이다. 그러나, 세계 호수랭킹을 따지ㅈ자면 이 두개의 호수는 모두 30위밖에 놓인다. 세계에.. 2019. 7. 18.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2019. 1. 8.
구익부인(鉤弋夫人): 한무제의 수수께끼같은 후궁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기원전87년 이월 십이일, 한무제는 병이 위중해졌다. 나이 겨우 8살의 유불릉(劉弗陵)을 황태자에 앉힌다. 태자를 세운 다음 날, 한무제는 사망하고, 유불릉이 황위를 승계하며 생모인 구익부인 조씨를 황태후로 추존한다. 사서에는 이 황태후 구익부인의 기록이 .. 2019. 1. 5.
중산정왕(中山靖王)은 어떤 인물인가?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유비의 조상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유비는 자칭 '중산정왕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기실 이 중산정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유비는 빈한한 집안 출신이고, 짚신을 만들어 살았는데, 어찌 스스로 중산정왕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중산정왕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가? 기실 그 배후의 비밀이 적지 않다. 먼저 유비가 스스로 중산정왕의 후손이라고 말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진위를 확인해볼 방법이 없다. 왜그럴까? 유비가 성년이 된 후,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착실하게 준비를 해둔다. 유방이 칭제하여 한나라를 건립한 때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씨성은 이미 세계에서.. 2019. 1. 5.
1690년 울란부통(烏蘭布通) 전투: 유목민족 철기시대의 종말 글: 비상역사(非常歷史) 표질여장풍(驃疾如長風) 시경여경도(矢勁如驚濤) 분습천리지외(奔襲千里之外) 절원주야지경(折轅晝夜之傾) 달리는 건 바람과 같이 빠르고 활쏠 때는 거센파도처럼 힘있고 천리 밖까지 달려가서 기습하고 하룻밤낮에 적군을 무너뜨린다. 이것으 고대 농경민족이 .. 2019. 1. 2.
사마천이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한 이유는...? 글: 문재봉(文裁縫) 이릉(李陵)의 할아버지 이광(李廣)은 천하에 이름을 날린 신전수(神箭手)였다. 이릉도 할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그의 오천보병은 고르고 골라 능력이 뛰어난 '신전수군단'이었다. 이릉의 부대가 일당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수중의 활에 의존한 것이다. 다만.. 2019. 1. 2.
누란(樓蘭): 한나라에 맞섰던 실크로드의 소국(小國) 글: 풍장안량(風長眼量) 청해장운암설산(靑海長雲暗雪山) 고성요망옥문관(孤城遙望玉門關) 황사백전천금갑(黃沙百戰穿金甲) 불파누란종불환(不破樓蘭終不還) 이것은 당나라초기 왕창령의 저명한 변새시(邊塞詩)이다. 어떤 사람은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당나라때 누란이 아직 남아 있.. 2018. 12. 28.
유수가 황제에 오른다는 "사상최고의 참어(讖語)"는 사실일까?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1 인터넷에는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 왕망이 황위를 찬탈한 후, 그의 국사(國師)인 유흠(劉歆)은 어느 날 <적복부(赤伏符)>라는 기서(奇書)를 보고 한 마다 참어를 추산해 낸다: "유수발병포부도(劉秀發兵捕不道), 사이운집용투야(四夷雲集龍鬪野), 사칠염제.. 2018. 12. 13.
급암(汲黯): 한무제에게 감히 대들었던 인물. 글: 이중천(易中天) 모두 알고 있다. 한무제는 대들기 힘들다는 것을. 예를 들어, 사마천은 몇 마디 다른 의견을 얘기했다가, 결과가 어찌되었는가? 잘렸다. 더 이상 남자도 아니게 되었다. 다만 한 사람이 있다. 굳이 한무제에게 대들었던. 그리고, 말도 아주 심하게 했다. 예를 들어,한무.. 2018. 12. 12.
항우가 죽은 후 항씨일족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한5년(기원전202년) 십이월, 서초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하다. 유방은 곡성(谷城, 지금의 산동 평음 서남쪽)에 항우의 묘시로 선정하고 노공(魯公, 초회왕은 항우를 노공에 봉한 바 있다)의 규격으로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친히 장례식에 참석하여 곡을 하며 애.. 2018.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