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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군11

신릉군(信陵君)은 왜 평생 실권을 잡지 못했는가? 글: 유연빈(劉宴斌) 모두 알고 있다시피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는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신릉군 위무기(魏无己)와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이 네명은 한때 전국시대의 국면과 진전을 변경시켰다. 다만, 이 풍운을 질타한 바 있는 "사공자"가운데, 한 .. 2013. 4. 26.
진시황의 죽음에 대한 추리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의 사후 3개월동안 온량거(轀輬車)에 놓아두고, 매장도 하지 않고 장례도 치르지 않으면서,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함양(咸陽)으로 돌아와서 여산(驪山) 북록의 능묘에 묻혔다는 주장은 통상적인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떤 시신이라도, 엄격한 냉동, 방.. 2012. 9. 20.
평원군(平原君)의 일생최대의 실수는? 글: 유연빈(劉宴斌) 평원군(? - 기원전253년)의 성은 조(趙)이고 이름은 승(勝)이며, 전국시대 조나라의 종실대신이고, 조무령왕(趙武靈王)의 아들이며, 조혜문왕(趙惠文王)의 동생이다. 동무(東武, 지금의 산동성 무성)에 봉해졌고, 호는 평원군이다. 조혜문왕과 조효성왕(趙孝成王) 시기에 .. 2012. 8. 15.
진시황(秦始皇)과 태자단(太子丹)의 관계 글: 아체(阿杕) "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이 비장한 노래소리는 이천여년의 역사가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흐르고 있다. 형가(荊軻)가 진시황을 암살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형가에 존경을 지니.. 2012. 6. 7.
한단(邯鄲): 3천년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는 도시 글: 가운봉(賈雲峰) 왜황궁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한 곳은 현대사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며 신비롭다. 동방이건 서방이건 역사의 시작은 신화와 전설이다.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는 조상들은 사람을 만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2011.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