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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서릉6

이현친왕릉(怡賢親王陵): 지금은 폐허가 된 윤상(允祥)의 묘 글: 방효욱(方曉旭) 애신각라 윤상(1686.4.16 - 1730. 5. 4)은 청성조 강희제의 13째 아들이고, 생모는 경민황귀비 장가씨(章佳氏)이다. 윤상은 옹친왕 윤진(胤縝)과 관계가 가장 가까웠고, 옹정제도 그를 남다르게 대우한다. 윤진이 즉위한 후 윤상은 화석이친왕(和碩怡親王)이 되어, 조정을 총.. 2019. 1. 13.
네덜란드 기자가 쓴 "서태후 장례식" 글: 추월랑(秋月朗) 1908년 11월 9일 대청제국의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즉 서태후의 장례식이 열린다. 네덜란드 기자인 헨리 보렐은 서태후의 영구가 북경성을 나서는 장면을 모두 목격하고, 일련의 귀중한 사진을 남기며, 이번 중국 최고등급 장례식의 화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뿐 아.. 2017. 12. 21.
왕가씨(王佳氏): 청나라역사상 유일하게 3번 봉호(封號)를 바꾼 비빈 글: 소몽(蕭夢) 대청의 후궁은 일반적으로 승급하거나 강급하더라도 봉호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한 대청의 후궁비빈은 이 법도를 바꾸었다. 그녀는 귀인(貴人)에서 비(妃)로 3번이나 승급하였는데, 봉호도 3번이나 바뀐다. 이는 대청역사상 유일한 경우이다. 그녀는 바로 가경제(嘉慶帝).. 2017. 12. 7.
도광제(道光帝)의 능묘는 왜 3번이나 옮겼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황제가 한 명 사망하면 일생동안 단지 1개의 능침을 건설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에, 도광제는 일생동안 자신을 위하여 3번이나 능침을 건설한다. 즉, 그는 3번이나 능묘를 옮긴 것이다. 제1차 능묘건설. 도광제가 황자(皇子)로 있을.. 2013. 9. 13.
청동릉(淸東陵)과 청서릉(淸西陵) 글: 왕위(王偉) 명나라때는 명십삼릉을 만들었다. 십여명의 명나라황제의 무덤은 모두 이 곳에 모여있어, 후세인들이 찾아가기가 용이하다. 청나라 입관후 첫번째 황제인 순치제는 하북성 준화에 청동릉을 만든다. 그런데, 순치제의 손자인 옹정제는 다시 하북 역현에 청서릉을 만든다. 조손 두 사람.. 2010. 3. 20.
도광제(道光帝)의 모릉(慕陵): 역사상 가장 가식적인 황제묘 글: 문재봉(文裁縫) 도광제의 일생은 비극적인 색채가 충만하다. 그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왕조가 쇠락하는 전환점에 서 있었다. 이때의 청나라는 문제가 산적하여 있었고,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각종 문제가 연이어 터져나왔고, 한 가지 문제가 터지면 온몸이 흔들렸다. 각종 조치는 더 이상 .. 2009.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