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친왕릉(怡賢親王陵): 지금은 폐허가 된 윤상(允祥)의 묘 글: 방효욱(方曉旭) 애신각라 윤상(1686.4.16 - 1730. 5. 4)은 청성조 강희제의 13째 아들이고, 생모는 경민황귀비 장가씨(章佳氏)이다. 윤상은 옹친왕 윤진(胤縝)과 관계가 가장 가까웠고, 옹정제도 그를 남다르게 대우한다. 윤진이 즉위한 후 윤상은 화석이친왕(和碩怡親王)이 되어, 조정을 총.. 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2019.01.13
유방의 신비한 신세내력 (3): 유방은 유태공 일가를 어떻게 대했는가? 글: 정보(程步) 유태공의 일가는 모두 8명이다. 유태공과 정실부인 사이에는 2남1녀가 있다. 유방의 모친 유온은 동모이부(同母異父)의 두 아들이 있다. 8명의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가풍을 가졌고,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러했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에..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2018.10.23
네덜란드 기자가 쓴 "서태후 장례식" 글: 추월랑(秋月朗) 1908년 11월 9일 대청제국의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즉 서태후의 장례식이 열린다. 네덜란드 기자인 헨리 보렐은 서태후의 영구가 북경성을 나서는 장면을 모두 목격하고, 일련의 귀중한 사진을 남기며, 이번 중국 최고등급 장례식의 화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뿐 아..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서태후) 2017.12.21
가경제암살사건 글: 유대화(喩大華) 가경7년 납월(臘月) 중순, 서력으로 하면 1803년 1월초이다. 가경제는 사천총독, 섬감총독, 호광총독의 연명보고서를 받는다: "사천, 섬서, 호북에서 토비역적을 토벌하는 일이 완성되었다." 원래 9년동안 5개성에 세력이 미친 백련교의 난이 진압된 것이다. 이제 천하는 ..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2016.08.23
옹정제는 왜 생모와 사이가 나빴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옹정은 황위를 얻은 후, 생모인 덕비(德妃) 우야씨(烏雅氏)의 첫반응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청세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우야씨는 옹정이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의 아들이 대통을 승계하도록 명하는 것은 ..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옹정제) 2014.06.23
손전영(孫殿英)의 마작상술(麻雀相術) 글; 문재봉(文裁縫) 손전영은 근대의 중국군벌중에서 소인물이다. 부하가 가장 많았을 때도 2,3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실력과는 비례하지 않게 아주 크다. 이유는 대체로 그가 청동릉을 도굴해서 서태후를 관에서 끄집어 내고, 부장품인 보물을 모조리 훔쳐갔기 때문이다. ..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2014.04.04
도광제(道光帝)의 능묘는 왜 3번이나 옮겼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황제가 한 명 사망하면 일생동안 단지 1개의 능침을 건설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에, 도광제는 일생동안 자신을 위하여 3번이나 능침을 건설한다. 즉, 그는 3번이나 능묘를 옮긴 것이다. 제1차 능묘건설. 도광제가 황자(皇子)로 있을..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2013.09.13
청동릉(淸東陵)과 청서릉(淸西陵) 글: 왕위(王偉) 명나라때는 명십삼릉을 만들었다. 십여명의 명나라황제의 무덤은 모두 이 곳에 모여있어, 후세인들이 찾아가기가 용이하다. 청나라 입관후 첫번째 황제인 순치제는 하북성 준화에 청동릉을 만든다. 그런데, 순치제의 손자인 옹정제는 다시 하북 역현에 청서릉을 만든다. 조손 두 사람..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2010.03.20
도광제(道光帝)의 모릉(慕陵): 역사상 가장 가식적인 황제묘 글: 문재봉(文裁縫) 도광제의 일생은 비극적인 색채가 충만하다. 그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왕조가 쇠락하는 전환점에 서 있었다. 이때의 청나라는 문제가 산적하여 있었고,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각종 문제가 연이어 터져나왔고, 한 가지 문제가 터지면 온몸이 흔들렸다. 각종 조치는 더 이상 ..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2009.08.08
서태후의 능이 왜 동쪽에 있는가? 청나라 동치제때 황궁에는 두 명의 황태후가 있었다. 한명은 자안(慈安)황태후로, 동태후(東太后)라고도 불렀고, 다른 한명은 자희(慈禧)황태후로 서태후(西太后)라고도 불렀다. 두 황태후의 능침은 모두 하북성 준화현의 청동릉(淸東陵)에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동서에 나란히 있다. 중간..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서태후) 2007.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