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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계광19

서위(徐渭): 팔고부중(八考不中), 구사불사(九死不死) 글: 호연문사(浩然文史) 명나라때의 대문인(大文人)을 얘기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진(解縉), 당백호(唐伯虎)를 알고 있고; 능문능무(能文能武)의 인물을 말하면, 왕양명(王陽明)을 얘기한다. 그들의 경력은 모두 전설적이다. 다만 이들보다 더욱 전설적인 인물이 있으니 바로 가정(嘉靖), 융경(隆慶), 만력(萬歷)연간에 활약한 서위(徐渭)이다. 서위는 일생동안 8번 과거에 실패했으며, 그후 호종헌(胡宗憲)이 지휘하는 동남항왜전쟁(東南抗倭戰爭)에 참가한다. 서위의 책략하에 명나라는 대해도(大海盜) 서해(徐海), 왕직(汪直)을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종헌의 죽음으로, 서위는 의기소침해져서 9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지 않았다. 결국 빈곤하게 여생을 살아갔으며 죽을 때는 곁에 개 한마리만 그를 지켰다. 서.. 2023. 8. 16.
선유전투(仙遊戰鬪): 복건왜구(福建倭寇)의 명조관군(明朝官軍)에 대한 최후의 항전 작자: 미상 1563년, 흥화전투(興化戰鬪)가 끝나면서, 복건연해의 국면은 이미 어느 정도 제압되었다. 그러나, 왜구의 핵심인 해상집단은 여전히 원래의 체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속히 정비하여 계속 보전(莆田)을 중심으로 한 해역에서 새롭게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날로 위축되는 활동공간은 왜구의 생존현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일으킨 선유전투에서 패배한 후 부득이 오랫동안 경영해온 복건해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왜구는 천연적으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해안의 밀수집단으로서, 각지역의 왜구는 탄생때부터 아주 선명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의 구조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대로 무역에 종사하거나, 어업에 종사하거나 소금을.. 2021. 12. 30.
계주병변(薊州兵變): 명나라최강의 척가군(戚家軍)은 어떻게 우군에 참살당했는가? 글: 남북양조(南北兩謿) 만력23년(1595년)의 계주병변은 하나의 비극이며 지금도 차마 다 읽을 수가 없다. 이 사변은 사료에 기록으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에 몇 마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당시는 아직 삼대정(三大征)중 하나인 항왜원조(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가리킴)시기였으므로, 조선의 사료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만력이십삼년 십월, 기미(己未)일, 방해병(防海兵, 해안방어병)이 군량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북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鼓噪). 계진의 독(督), 무(撫), 도신(道臣)이 난리를 일으킨 자를 붙잡아 처형하고, 나머지 일당은 남쪽으로 되돌려 보냈다. 병부에 보고하였고, 병부에서 허가했다." 명신종(만력제)때 병변이 여러번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만력10년의 항주병변(杭州兵變), 1.. 2021. 5. 1.
명나라는 정말 "시망어가정(始亡於嘉靖)"일까? 글: 기점역사(起點歷史) 가정(嘉靖, 1522-1566)은 명나라의 열한번째 황제인 명세종(明世宗) 주후총(朱厚㷓)의 연호이다. 명나라때 가정이라는 이 연호는 모두 45년간 사용되었다. 명나라에서 두번째로 길게 사용된 연호에 해당한다(가장 길게 사용된 연호는 명신종 만력제의 만력으로 모두 4.. 2019. 12. 28.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십삼관(十三關) 글: 낭자일매(浪子一枚) "장성을 가보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 장성은 만리장성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호거용반(虎踞龍盤)의 장성은 중국 고대에 국경을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하려는 군사공정이었다. 오늘날 장성의 최우선적이었던 군사방어기능은 점점 .. 2019. 10. 4.
중국역사상 전신(戰神)이 될만한 72명의 장수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홍콩대작영화를 보면 우리는 경찰이건 흑사회이건 모두 관공(關公)을 모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무묘(武廟)에 대한 것은 모두 청나라때부터 시작된 관공무묘(關公武廟)에 머물러 있다. 혹은 아마도 살신(殺神) 백기(白起)를 떠올릴지.. 2019. 10. 2.
원명(元明)시기에 창궐했던 왜구(倭寇)가 청나라때 돌연 사라졌을까? 글: 원원설사(袁袁說史) 왜구를 얘기하면, 우리는 명나라와 척계광(戚繼光)을 떠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구가 명나라때 시작된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그런 생각은 틀렸다. 왜구는 일찌기 원나라후기부터 대거 중국의 연해지구에 해를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원나라장수 .. 2019. 5. 6.
장거정의 공과는 분명히 해야 한다 글: 조종국(曹宗國) 장거정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생각으로 청나라때의 기윤(紀昀, 기효람)이 <사고전서.제요>에 말한 것이 가장 공정한 것같다. 거기에 장거정은 "진작유위(振作有爲)의 공과 위복자천(威福自擅)의 죄는 모두 서로를 덮을 수가 없다." 어떤 사론과 문학작품에서는 그.. 2018. 7. 27.
이성량(李成梁): 누르하치를 생포한 적이 있는 대명의 명장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대명왕조의 명신종(明神宗) 만력제(萬歷帝) 주익균(朱翊鈞)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깡패황제"이고, 역사학자들도, "명나라가 망한 것은 명목상으로는 숭정제때 망했지만, 실제로는 만력제때 망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역사상 주익균은 그다지 무능하.. 2018. 1. 17.
장거정(張居正)의 사인(死因)은? 글: 정만군(程萬軍) 1582년 7월 9일, 대명의 수보(首輔)이자 일대정치강자인 장거정이 돌연 세상을 떠난다. 나이 겨우 58세이다. 58은 고대인들의 수명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많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장거정은 왜 돌연 사망하게 되었을까? 장거정의 죽음에 관하여, 정사의 기재는 아주 간.. 2018.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