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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47

원나라때 이슬람과의 천문학 교류와 접촉 글: 강효원(江曉原) 징기스칸이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면서,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뒤에는 중국을 차지한 원(元)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칸국이 병립하고 있었다. 원나라는 명목상 종주국이고, 각국간의 문화와 교류가 아주 활발했다. 이 시기의 중국천문학과 이슬람천문학간의 접촉에 관하여 국내외의 학자들이 모두 기술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이런 접촉이 존재한 것은 확실하지만, 적지 않은 구체적인 이슈는 아직 명확한 단서나 결론이 없다. 본문에서는 대체로 연대순서에 따라, 비교적 중요한 6가지 이슈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시기의 중국과 이슬람천문학간의 교류와 접촉에 대하여 더욱 전면적이고 분명한 인식을 얻고자 한다. 1. 야율초재(耶律楚.. 2023. 6. 18.
징기스칸은 중국인인가? 글: 자미도인(紫薇道人) 이건 원래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고의 난제로 만들어 버렸다.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답은 원래 간단하다. 중국의 국가구조는 영국과 유사하다. 몽골인과 중국의 관계는 스코틀랜드인과 영국의 관계와 비슿하다. 스코틀랜드인은 영국인이기도 하면서 영국인이 아니기도 하다. 그건 어느 영국을 가리키는지를 봐야 한다. England인지 United Kingdon인지?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중국인일 수도 있고, 중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중국은 해석권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영토를 확장하고 싶을 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고, 전략수축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공산당은 스스로 깨트려버린다. 공산당.. 2023. 1. 16.
저마오사건: 중문위키백과의 고대러시아에 관한 내용은 "허구"이다. 글: 불상급연구소(不相及硏究所) 당신이 중문위키백과에서 보는 고대러시아역사는 아마도 '허구'일 것이다. 한 중국인이 백만자이상의 글을 쓰고, 4,800여번 수정하면서, 모두 206개 주제에 대하여 써서, 무수한 교수와 학생들을 속였고, 위키백과에서 고대러시아역사를 '창조'해냈다. 그녀는 위키백과에 판타지소설을 쓴 것인데, 10년간이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10년만에 이반(伊凡)은 최초로 중문 위키백과에서 고대러시아역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다. 이반은 인터넷에 을 연재하고 있다. 이는 유럽과 동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소설이다. 6월경, 소설을 쓰기 위하여, 그는 위키백과에서 자료를 검색했는데, "카션은광(卡申銀鑛)"이라는 내용을 발견한다. 그 은광은 1344년에 발견되었고, 트베리대공.. 2022. 6. 27.
몽금십년전쟁(蒙金十年戰爭): 초원제국과 삼림제국의 결전 글: 문재봉(文裁縫) 1209년, 몽골제국은 건립된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징기스칸은 정예병을 양성해서 군사력이 강성해진다. 그는 초원의 백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거두어 들였다. 점점 세력이 커진 징기스칸은 다음 확장목표로 금나라를 겨냥한다. 이전까지 몽골은 금나라의 속국이었다. 다만 현재 몽골은 이미 옛날의 몽골이 아니다. 징기스칸은 이제 몽골은 그 어느 나라와도 일전을 벌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금나라가 이전에 목려(木驢)의 혹형으로 안바하이칸을 처형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이 해에 금장종(金章宗)이 붕어하고, 완안영제(完顔永濟)가 황위를 승계한다. 그는 문약한 서생이고, 징기스칸은 이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를 무시했다. 다음 해, 완안영제는 사신을 몽골로 파견해서,.. 2021. 4. 21.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중국의 명의(名醫) 글: 원사문(苑嗣文) 금나라(1115년-1234년), 중국역사상 여진족이 건립하여 중국의 북방과 동북지방을 통치한 봉건왕조.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건립했다. 서로는 서하, 몽골등과 국경을 접했고, 남으로는 남송과 대치했다. 모두 10명의 황제, 119년간 존속했다. 천경4년(1114년) 금태조 완안.. 2020. 2. 27.
선비족(鮮卑族)의 유래와 현재의 분포 글: 전위장(錢偉長) 북위(北魏)는 선비족이 건립했다. 선비족의 탁발씨족(拓跋氏族)은 일찌기 북위의 왕족이었고, 중국역사상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개략 3세기말때, 선비족은 평성(平城, 지금의 大同)을 점령하고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 당시 북방의 여러 민족이 중원을 침입할 .. 2019. 3. 13.
몽골과 티벳불교의 만남: "3차회맹(三次會盟)" 글: 진호무(陳浩武) 오늘 저녁 자리해 주신 학자분들과 여러분들. 저는 경제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그저 취미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독서의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오전에 우리는 둬룬(多倫)을 갔었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이곳이 이렇게 중요한 .. 2019. 2. 8.
서하(西夏): 신바하게 사라진 고대국가, 글: 문재봉(文裁縫) 1909년, 제정러시아의 대령이자 러시아왕립지리학회 회원인 코츠로프는 완전무장하 '탐험대'를 이끌고, 야생동물을 고찰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중국 내몽골의 흑성(黑城)으로 간다. 목적은 바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전설상의 보물.. 2019. 1. 18.
야율초재(耶律楚材): 징기스칸은 왜 그를 중용했는가. 글: 황수(黃帥) 1211년, 징기스칸의 철기(鐵騎)가 야호령(野狐嶺)에서 금나라군대와 격전을 벌일 때, 야율초재(耶律楚材)는 겨우 21살이었다. 그는 가슴에 큰 뜻을 품고 금나라 황제와 함께 곧 중원으로 쳐들어올 몽골인을 격퇴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역사의 저울은 이때 이미 몽골인에게 기울어 있었다. 수십년간의 향락과 소비로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의 자손들이 지탱해온 국가는 사상유례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야호령 전투에서 금나라군대는 정예병을 모조리 잃는다. 심지어 황제 금선종(金宣宗)마저 남으로 도망쳐 변경(지금의 개봉)으로 간다. 일시에 금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공포분위기가 중원의 대지를 감싸게 된다. 야율초재는 몽골인과 더욱 거리가 가까웠던 중도(中都)에 남는다. 즉 지금의 북경이다. 이곳은 여.. 2018. 12. 19.
다르후트(達爾扈特)인: 징기스칸능의 수호자 글: 취역사(趣歷史) 관직을 맡지도 않고, 세금을 내지도 않으며,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대대로 전한다. 700여년동안 한 전설의 몽골부락인 "다르후트"는 징기스칸능의 영워한 수호자가 되었다. 이 부락은 1227년 징기스칸이 병사한 이후 지금까지 충성스럽게 그의 능묘를 지키고 있다. 신중.. 2018.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