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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문왕7

선태후(宣太后): 중국역사상 최초의 "태후(太后)" 글: 왕자금(王子今) 선태후는 성이 미(羋)이고, 초(楚)나라 출신이다. 그녀가 진나라에서 겪은 정치인생은 진혜문왕(秦惠文王)의 집정부터 진소양왕(秦昭襄王)의 집정시기까지 진나라가 신속하게 강국으로 발전한 역사궤적과 걸음을 같이 한다. 그녀는 진나라의 정치를 수십년간 주재했다. 이 역사시기의 기본적인 특징은 "해내가 전공을 다투고(海內爭於戰功)" 각 대국은 "군사력을 키우고 다른 나라를 병합하는데 주력했으며(務在强兵幷敵)"(사기. 육국년표), "패망한 자를 추격하고, 패배한 자를 쫓아내고(追亡逐北)" "천하를 나누어 가지는(宰割天下)"(가의 ) 떄였다. 사마천의 "소양업제(昭襄業帝)"의 평가(사기.태사공자서)는 이 시기 진나라사람들의 역사적 성취가 이후 통일을 달성하는데 가지는 의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2023. 5. 3.
아방궁의 역사진상(9): 아방궁이 보존된 주요원인은 무엇일까? 글: 진경원(陳景元) 아방궁 문제를 연구하면서 실제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려면, 반고의 <한서>를 돌아가서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한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궁은 아성이라고도 부르고, 진혜문왕이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7): 아방궁이 불질러졌다는 사료는 어디에 있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명성조 주체는 영락4년(1406년)에 새로운 부지를 정해 북경고궁을 건설하도록 조서를 반포한다. 영락18년(1420년)에 공사는 완공되었다고 선언한다. 왜 이렇게 규모가 큰 궁전을 짧은 14년의 기간내에 완공할 수 있었을가? 원래 이것은 그저 ..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6): 후화원을 먼저 지을 수는 없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35녕에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관련된 관련 사료는 당연히 이육방선생과 그 고고팀이 아주 신뢰성있는 자료에 의하여 철저히 부정되었다. 다만, 이육방이 만일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진혜문왕때 아방궁이 건축되기 시작했다"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5): 아방궁연구의 새로운 시도 글: 진경원(陳景元) 역사상 많은 사료에서는 모두 아방궁의 규모가 엄청나게 거대하다고 했고, '삼백리아방궁'이라는 찬사를 붙였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건축군이라 칭한다. 이는 실제상황에 부합한다. 다만, 어떤 고고학자는 그중 과장된 성분이 너무 많다고 여긴다...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3): 궁전건축과 왕조교체 글: 진경원(陳景元) 먼저 강조할 것은 진나라가 육국을 통일하기 전에 사천은 일찌감치 진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화양국지.파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현왕(周顯王)때, 초나라가 쇠약해지고, 진혜문왕이 파촉(巴蜀)과 사이가 좋아졌다. 주신왕(周愼王) 5년, 촉왕(.. 2018. 2. 23.
컨센서스: 진나라의 상앙변법 글: 왕립군(王立群) 컨센서스는 국가방침대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중국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진시황이 육국을 합병하여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 진효공때의 상앙변법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변법이전에 한, 조, 위, 제, 초, 연이 모두 전국시대의 강국이었다. .. 2012.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