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서기처6

차이치(蔡奇): 중추를 장악했지만, 이빨없는 호랑이이다. 글: 호해(胡亥)​해외매체에서는 차이치를 "창위독공(厂卫督公)"이라고 불렀다. 그 뜻은 동창(东厂)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 이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창은 명나라때의 정보기구이고, 특무조직이며, 조정의 응견(鹰犬)이다. 차이치는 동창을 주관할 뿐아니라, 동시에 천하의 온갖 일을 관리감독하며, 중공의 일상사무도 처리한다. 그렇다면 '창공(厂公)'이 아니다. 오히려 사례병필태감(司礼监秉笔太监)에 가깝다. 황상을 도와 세상만물을 처리하며 재상의 권한을 대행하는 직위인.​저명한 중국문제전문가인 가오신(高新) 교수는 일찌기 아시아자유논단에 글을 올려, 시진핑이 왜 차이치를 신임하는지를 기술했다. 그는 푸젠(​福建)에서 저장(浙江) 그리고 다시 베이징(北京)까지 20여년에 걸친 "사적인 우정"외에 더욱 중요한.. 2024. 4. 29.
리창(李强) vs 차이치(蔡奇) : 누가 2인자인가? 글: 호해(胡亥) ​ 그동안 해외매체에서 당금 중공고위층 인물들은 분석할 때, 왕왕 표면에 거치고 심도있게 들어가지 못하여 오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리창과 차이치간에 해외매체에서 시진핑이 국무원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차이치를 중용하고, 차이치에게 서기처를 총괄하는 책임을 부여한 것을 보고, 리창을 차이치가 넘어섰고, 리창은 리커창처럼 허수아비로 전락하였다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3월에 양회가 개최된 이래, 해외매체에서는 더더욱 추측에 추측을 더하여 총리가 곧 사임할 것이라든지, 곧 면직되고 차이치가 대체할 것이라는 거짓뉴스가 나오게 되었다. ​ 이런 식의 여론조작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형세를 분석하고, 시진핑정부의 주요인사들에 대한 정치배경을 제대로 파악하여 정확하게 판단.. 2024. 3. 11.
왕후닝(王滬寧): 사상 가장 약한 상무서기(常務書記) 글: 최사방(崔士方)3월 4일의 중국의 제13기 전인대주석단회의에서 10명의 주석단 상무주석을 선출했다. 차례로 리잔수(栗戰書), 천시(陳希), 왕천(王晨), 차오젠밍(曹建明), 장춘셴(張春賢)등이다. 두번째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중공정치국상위, 중앙서기처 상무서기인 왕후닝이 아니라, 중앙조직부 부장인 천시였다. 이는 왕후낭이 관례에 따라 중국공산당의 조직, 인사를 관장하지 못한다는 중요한 현상이다.이전의 3기주석단에서 두번째로 이름을 올린 상무주석은 관례에 따라 조직,선전을 관장하는 중앙서기저 상무서기가 맡아왔다. 전인대의 인사교체는 중국공산당이 내정하고, 구체적인 고,중,하급 인선은 중앙조직부와 인사부에서 하고 중편판은 편제를 만든다. 여기에 국무원과 정협의 인사배치, 및 여러 외국매체에 대한 대외선.. 2018. 3. 7.
1959년 주덕(朱德)은 왜 국가주석직을 사양했는가?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1957년 4월 30일, 모택동은 처음으로 당외인사에게 그는 다음번 국가주석을 맡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범위내에서 이 소식을 퍼트려주어 '약간의 바람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한다. 1959년 4월 2일, 중공8기 7중전회가 .. 2015. 2. 13.
리잔슈(栗戰書): '대내총관(大內總官)'의 30년 관료의 길 글: 신당인 중공국가주석 시진핑이 취임한 후, 중공중앙판공청주임으로 임명되어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11번째 중남해 '대내총관'이 된 리잔슈는 자연히 매체의 촛점이 되었다. 소식에 따르면, 그는 일찌기 관료사회에서 아주 잘나갔다고 하지만, 그는 30년의 관료생활에서 주변으.. 2013. 4. 1.
중공(中共) 중앙서기처(中央書記處)의 유래와 직권 글: 이해문(李海文) 중국공산당이 설립된이래 중앙기구는 여러차례 변화를 겪었다. 1930년대에 중앙에 서기처를 두었다가; 1966년 8월, 중앙서기처의 업무가 정지되었다; 1980년 제11기 5중전회때 중앙서기처는 부활했다. 중앙서기처는 어떤 기구이고, 중앙정치국과는 무슨 관계인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 2008.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