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익균9 만력제(萬曆帝):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 글: 역사기실유취(歷史其實有趣) 만력14년, 서력1586년. 만력제 명신종(明神宗) 주익균(朱翊鈞)의 후계자분제가 정식으로 의사일정에 올라왔다. 황제의 나이가 적지 않고, 황제에게 아들도 있으니, 국본(國本)을 안정시키고 국조(國祚)를 이어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하루빨리 후계자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사자인 만력제는 후계자인 황태자의 후보와 관련하여, 일찌감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은 황삼자(皇三子) 주상순(朱常洵)이었다. 당연히 그가 이 아들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애옥급오(愛屋及烏)의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주상순의 모친은 바로 만력제가 가장 좋아한 비인 정귀비(鄭貴妃)였기 때문이다. 먼저, 만력제는 일찌기 정귀비에 대하여 "유가옥질(柔嘉玉質), 완닉란의(婉嬺蘭.. 2023. 11. 7. 명광종(明光宗) 주상락(朱常洛): 명나라의 가장 비극적인 황제, 19년태자 1달황제 글: 동동(東東) 고대 봉건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황제가 되고 싶었다. 심지어 황제에 오르기 위해 처를 버리고 아들을 버리며 집안이 풍비박산나기도 했으며, 부자간에 원수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황제에 오르는 길에서 사람들은 계속하여 앞 사람이 쓰러지면 뒷 사람이 뒤를 이어 계속.. 2019. 12. 12. 명망청흥의 60년간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글: 금검상월(琴劍霜月) 명나라 만력11년 즉 1583년, 내각수보 장거정이 사망한지 한 해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내각수보가 과감하게 개혁을 하여, 대명왕조의 면모는 일신했고, 경제상황도 크게 개선도었다. 젊은 명신종 주익균은 더욱 큰 뜻을 품고 있었다. 이때는 그에게서 주색에 빠.. 2018. 12. 31. 태감 위충현(魏忠賢)의 개인숭배운동 글: 위득승(魏得勝) 가난한 집안 출신인 위충현은 스스로 거세를 한 후 관계를 통해 궁으로 들어가 영광스럽게도 도분공(掏糞工)이 될 수 있었다. 십여년후, 그는 바닥을 벗어나 한 재인(才人)의 음식관리업무를 맡는다. 1620년, 위충현이 입궁한지 딱 30년이 되었고, 나이는 이미 52세였다. .. 2018. 10. 27. 장거정의 공과는 분명히 해야 한다 글: 조종국(曹宗國) 장거정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생각으로 청나라때의 기윤(紀昀, 기효람)이 <사고전서.제요>에 말한 것이 가장 공정한 것같다. 거기에 장거정은 "진작유위(振作有爲)의 공과 위복자천(威福自擅)의 죄는 모두 서로를 덮을 수가 없다." 어떤 사론과 문학작품에서는 그.. 2018. 7. 27. 이성량(李成梁): 누르하치를 생포한 적이 있는 대명의 명장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대명왕조의 명신종(明神宗) 만력제(萬歷帝) 주익균(朱翊鈞)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깡패황제"이고, 역사학자들도, "명나라가 망한 것은 명목상으로는 숭정제때 망했지만, 실제로는 만력제때 망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역사상 주익균은 그다지 무능하.. 2018. 1. 1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