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패(夏侯覇): 하후연의 아들은 왜 부친을 죽인 원수에게 투항했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하후연(夏侯淵)은 삼국시대초기의 수퍼맹장이며, 조조의 심복이다. 남정북전에서 혁셕한 전공을 세운다. 한마디로 말하면 "호보관우(虎步關右)"이다. '호보'는 휩쓸고 다닌다는 뜻이고, '관우'는 동관의 서쪽 즉, 장안을 비롯한 관중지역을 말한다.다만, 정군산(定軍山)..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17.10.11
애산해전(崖山海戰): 송나라의 비장한 최후 글: 강생연(姜生淵) 1279년, 애산(崖山), 바다에서 파도는 거칠었고, 바닷바람소리는 드높았다. 좌승상 육수부(陸秀夫)는 처자식이 울고불고 하는데도, 그들은 바다로 밀어넣었다. 그 후에 몸을 돌려 나이 겨우 7살 된 송회종(宋懷宗)에게 말한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폐하는 마땅..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송) 2017.10.01
유비와 제갈량은 왜 형주의 관우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글: 화운초(和運超) 유비가 서천을 공격하여 취하는데 거의 4년이 걸렸다(210년-213년). 건안20년(215년), 유비는 이미 익주를 완전히 점겨한다. 손권은 다시 형주를 달라고 하고 쌍방은 서로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조조는 기회를 틈타 서쪽으로 마초, 한수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마..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관우) 2017.09.03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도원결의는 <삼국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유비, 관우와 장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일찌기 탁군의 장비 집의 그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원(桃園)에서 성이 다르지만 의형제로 맺어진 이야기를 떠올린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나지는 ..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2017.08.18
역사상 진실한 사마의는 얼마나 악독했을까? 글: 아시삼갑제사명(我是三甲第四名) 1. "본제생가(本諸生家), 전례래구(傳禮來久)" 진무제 사마염은 즉위후에 조서를 내려 자신의 가족이, "본제생가, 전례래구"라고 말했다. 이것은 과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마씨가족은 명문거족이기 때문이다. 중국고대의 개국황제는 자신의 칠..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사마의) 2017.08.13
삼국의 지장(智將) 랭킹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인터넷에서 삼국에 관한 글들을 많이 보면서, 스스로의 견해도 말하고 싶어졌다. 이 랭킹은 정사(正史)만 고려한 것이고, 삼국연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연의를 고려한다면 제갈량이 당연히 랭킹 1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사를 보면, 필자의 생..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17.08.06
공성계(空城計)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패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고전명저 <삼국연의> 소설에서 전반부의 클라이칵스는 "화소적벽(火燒赤壁)"이고,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육출기산(六出祁山)"이다. 제갈량이 육출시간할 때, 신기묘산의 공명선생은 강대한 적수를 만난다. 그의 복성은 사마(司馬)이고 단명은 의(懿)이다. 하남 ..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사마의) 2017.07.29
사마의(司馬懿) vs. 제갈량(諸葛亮) (2) 3.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일대위인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일이 어렵고 쉽고는, 일이 큰지 작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에 있다; 시기가 되지 않으면 헛수고이고 아무런 득이 없다." 제갈량이 어떤 목적에서 북벌을 하였건, 그가 발동한 시기는 심각하게 잘..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2017.07.22
사마의(司馬懿) vs. 제갈량(諸葛亮) (1) 글: 망정(忘情) 1. 들어가는 말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대군사 사마의의 군사연맹>은 다시 한번 사마의와 제갈량중 누가 더 대단한지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본인은 과거에 졸문 <제갈량, '지성'이라는 허명만 가지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쓴 바 있다. 이제 핫이슈를 놓고 논..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2017.07.22
대교(大喬), 소교(小喬)는 교현(橋玄)의 친딸들인가? 글: 정순방(鄭純方) 후세에 널리 알려지기로는 동한말기의 강동미녀 대교, 소교는 한나라의 태위(太尉) 교현의 딸이라는 것이다. <삼국연의>도 그렇게 써서 거의 정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실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렇게 잘못 전해진 것일까? ..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17.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