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겸익 6

전겸익(錢謙益)으로 본 동림당의 변신; 신앙집단에서 이익집단으로

글: 정만군(程萬軍) 숭정2년, 즉 1629년 숭정제 주유검은 전면적으로 동림당인을 기용하기 시작한다. 대명정계에 동림당의 잔여인원들은 다시 중용된다. 다시 나온 동림당인들은 중망(衆望)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동림당인은 이미 옛날의 독림당이 아니었다. 왜 그런가? 다시 조정..

잔회팔염 유여시(柳如是): 가장 기개있는 진회명기(秦淮名妓)

글: 이신강(李新剛)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유여시는 진회팔염(秦淮八艶)의 하나로, 글재주가 있는 기녀일 뿐이다. 그러나 일대의 국학대가이며 두 눈이 거의 실명할 정도였던 진인각(陳寅恪)은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서, 10여년의 시간을 들여 그의 구술을 조수가 ..

중국인은 왜 극단과 편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글: 해새장(解璽璋) 내가 받은 교육에서, 한가지 점에 대하여 최근 들어 새로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 어느 해 여름, 모두가 타협해야할 것인가 아닌가로 논쟁을 크게 벌인 적이 있다. 결국 타협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밀리고 말이 궁색해지게 되었다. 끝까지 견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동소완(董小宛)은 어떻게 모벽강(冒辟疆)의 애정을 추구했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 사람은 모두 애정을 추구하고 애정을 얻을 권리가 있다. 자연히 기녀도 예외는 아니다. 기녀중에 유명한 기녀들은 일정한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뛰어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생각이 비교적 개방적이어서, 왕왕 적극적이고 대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