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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17

근정(勤政)은 제왕의 좋은 품성이 아니다. 글: 오구(吳鉤) 만일 중국역사상 3명의 가장 근정(勤政)한 군주를 꼽으라면, 나는 진시황, 주원장 그리고 옹정제를 꼽겠다. <한서>에는 진시황의 근정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궁조문묵(躬操文墨), 주단옥(晝斷獄), 야리서(夜理書), 자정결사(自程決事), 일현석지일(日懸石之一)" 진나라.. 2013. 6. 10.
오(吳): 주(周)나라때의 최대제후국 글: 오한운(吳閑雲) 아주 오래 전에 주나라때 중화대지에는 많은 제후가 있었다. 당시에 약 팔백여개의 제후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 부락이 한 나리아고, 한 가족이 한 나라이고, 한 성이 한 나라였다. 대국의 토지는 1백리 혹은 칠십리이고, 소국의 토지는 오십리등 서로 달랐다. 이렇게 좁은 땅을 가진 제후국들은 여러 별이 달을 감싸고 도는 것처럼 주천자의 왕성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전체 황하유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만일 주천자가 천하의 대왕이라고 한다면, 각 제후는 지방의 소왕이다. 그렇다면 이들 제후들 중에서 누가 주왕조의 제1의 제후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인상 속에서는 강자아(姜子牙)의 제(齊)나라가 아마도 제일로 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자아는 강자아는 주무왕의 스승이고, 주무왕의 장인이며,.. 2013. 5. 18.
이봉낭(李鳳娘): 조손3대황제들도 어쩔 수 없었던 여인 글: 수중한분비(水中寒紛飛) 송왕조의 문약함은 역사상 유명하다. 특히 남송은. 기실, 문약하냐 아니냐는 황제를 보면 된다. 군국대사는 제쳐놓고 후궁만 보더라도, 3대황제가 여인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오히려 황제 자신이 정신병에 걸릴 정도니, 이런 황제가 중원을 회복하기를 기대.. 2013. 5. 18.
조광윤: 전설상의 미복사방(微服私訪) 글: 허석림(許石林) 송나라의 재상 조보는 사는 것이 아주 곤혹스러웠다. 다른 관리들은 퇴조한 후, 편안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혹은 연회를 베풀거나, 혹은 금을 연주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가족들과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그럴 수 없을 뿐아니라 만.. 2013. 4. 28.
조광윤(趙匡胤)의 어인술(馭人術) 글: 신력건(信力建)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군인들이 병권(兵權)을 잃은 것은 송태조 조광윤때부터라는 것을. 건륭2년(961년) 칠월, 송태조 조광윤은 금군 숙장(宿將)들을 연회에 초청한다. 그리고 온화한 방식으로 그들의 병권을 해제시켰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2012. 8. 15.
왕흠약(王欽若): 모함도 기술이다 글: 안건회(晏建懷)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서 떡이 괜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상 발탁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어떤 원인이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었거나, 재능이 출중하거나, 혹은 조상이 덕을 쌓았거나, 조정내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돈을 많이 썼거나, 아부를 .. 2012. 1. 11.
주원장이 개국공신들을 미친듯이 살해한 이유 중국역사를 들추어보면, 매번 왕조가 바뀔 때마다 시체가 산을 이루거나 피가 흘러 강을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천하를 얻은 제왕은 권력을 얻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더욱 권력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거의 신경질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러, 누가 또 자기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 2006.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