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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오(吳): 주(周)나라때의 최대제후국

by 중은우시 2013. 5. 18.

글: 오한운(吳閑雲) 

 

아주 오래 전에 주나라때 중화대지에는 많은 제후가 있었다.

당시에 약 팔백여개의 제후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 부락이 한 나리아고, 한 가족이 한 나라이고, 한 성이 한 나라였다. 대국의 토지는 1백리 혹은 칠십리이고, 소국의 토지는 오십리등 서로 달랐다. 이렇게 좁은 땅을 가진 제후국들은 여러 별이 달을 감싸고 도는 것처럼 주천자의 왕성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전체 황하유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만일 주천자가 천하의 대왕이라고 한다면, 각 제후는 지방의 소왕이다.

그렇다면 이들 제후들 중에서 누가 주왕조의 제1의 제후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인상 속에서는 강자아(姜子牙)의 제(齊)나라가 아마도 제일로 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자아는 강자아는 주무왕의 스승이고, 주무왕의 장인이며, 주왕조의 만인지상 일인지하인 태사 재상이었으며 또한 처음 책봉된 제후로 다른 제후를 정벌할 특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나라를 제외하고 주공단(周公旦)의 노(魯)나라도 약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공단은 주무왕의 동생으로 개국대공신이고, 강자아를 이은 제2의 집정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晋)나라, 초(楚)나라, 진(秦)나라....등등이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가진 대제후이다. 이들 대제후들 속에서 도대체 어느 제후가 모든 제후들 중 서열이 가장 앞서는 제후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 우리는 각로 제후의 역사를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무왕벌주(武王伐紂)이후, 주왕조를 건립한다. 그리고 공신들을 대거 봉(封)한다. 가장 먼저 책봉된 강자아는 제나라 제후가 된다(대체로 지금의 산동성 임치 일대)

무왕의 동생인 주공단(실제로는 그의 아들)은 노나라 제후로 책봉된다(지금의 산동성 곡부)

무왕의 동부이모의 동생인 희석(姬奭)은 주공단이 섭정하는것을 지지했고, 연(燕)나라 제후로 봉해진다.(지금의 하북성 북부)

무왕의 동생 희선(姬鮮)은 관(管)나라 제후로 봉해진다(지금의 하남성 관성). 그는 관숙선(管叔鮮)이라 칭하는데 당시는 대국이었다. 전체 동방을 관리할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반란으로 관나라가 주공단에게 멸망한다. 그래서 이 국가는 아주 짧은 기간동안 존속했다.

무왕의 넷째동생 희진(姬振)은 채(蔡)나라 제후로 봉해진다(지금의 하남성 상채 일대). 그는 채숙진(蔡叔振)이다. 관나라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다. 그리하여 채나라는 소국으로 전락한다.

주무왕이 상왕조를 멸망시킨 후, 더 많은 지지자를 얻기 위하여 전대제왕의 후손을 찾는다. 대순(大舜)의 후손인 우만(虞滿)을 찾아서 장녀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그를 진(陳)나라 제후로 봉한다(지금의 하남성 회양 부근) 그가 진호공(陳胡公)이다.

무왕은 다시 대우의 후손 동루공(東樓公)을 찾아서 그를 기(杞)나라 제후로 봉한다(지금의 하남성 기현 일대). 이 자그마한 소국은 계속 이주할 수밖에없었다.  우리에게는 '기우(杞憂)'라는 성어만 남겼다. 그러나 기나라의 의의는 아주 중대하다. 그들은 하(夏)왕조의 후예인 것이다.

 

무왕이 사망한 후, 관숙, 채숙은 상왕조의 귀족인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주공단이 동정하여 관국을 멸망시키고, 채숙을 유배보내고, 상나라귀족을 쫓아낸다. 상나라의 옛 수도인 조가(朝歌)를 주심으로 동생 강숙(康叔)을 위(衛)나라제후로 봉한다. 이렇게 하여 주왕실을 보위하게 한다.

무경의 반란이 진압된 후, 모든 상왕조 유민을 축출한다. 그들은 조가에서 송(宋)의 땅으로 이주한다. 이곳을 주왕의 형제인 미자계(微子啓)로 하여금 관리하게 한다. 미자계는 주왕조에 의하여 송(宋)나라제후로 책봉받는다.

주공단이 동정때, 자그마한 당(唐)나라도 멸망시킨다(지금의 산서성 경내). 그들은 상고시대 요(堯)임금의 후손이다. 주공단은 그의 조카(무왕의 작은 아들)인 희우(姬虞)를 그곳에 파견하여 군왕으로 삼는다. 그것이 바로 춘추시대에 패주가 되는 진(晋)나라이다.

진(晋)나라와 겨룰 수 있을만한 곳은 초(楚)나라이다. 초나라의 창시인은 육웅(

熊)이다. 육웅은 주무왕의 부친 주문왕의 스승이다. 그래서 주나라초기에 그는 초나라 제후로 책봉된다.

초나라가 나중에 굴기하여 초장왕 시대에 천하의 패주가 된다. 초나라의 북상하는 기세를 막기 위하여, 초나라후방에 오(吳)나라가 돌연 흥기하여, 초나라와 서로 견제하는 국면을 이룬다. 그리하여 원래 중원과 아무런 내왕이 없던 오나라도 춘추후기에는 패주로 된다.

이상 이들 국가는 모두 주나라초기부터 이미 있었던 곳이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주천자는 무왕에서 10세 주려왕(周厲王)까지 내려온다. 주려왕은 그의 작은아들을 정(鄭)나라제후로 책봉한다(鄭桓公). 정나라는 이렇게 탄생한다. 주평왕의 동천을 보호할 때, 정나라의 공로가 가장 컸다. 그래서 정나라는 이때부터 흥기한다. 역사는 춘추시대로 접어든다.

주평왕이 동천하는데, 서방의 진(秦)부락도 호가(護駕)의 공로가 있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진(秦)나라제후로 책봉된다.

그래서, 정나라와 진나라는 서주말기, 춘추초기에 나타난 새로운 국가들이다.

 

다시 그 이후에 역사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중원에 있던 패주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여, 3대가족이 각각 한 지방씩을 차지하여 진(晋)나라는 삼분된다.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동방의 최초패주 제나라에도 4성의 난이 일어난다. 마지막에 전(田)씨가족이 대체하여 새로운 제(齊)나라제후가 된다. 역사에서는 이를 전제(田齊)라 부른다.

이 몇 개의 국가는 춘추시대말, 전국시대초기에 형성되었다.

 

이상의 제후국들, 제, 로, 연, 관, 채, 진, 기, 위, 송, 진, 초, 오, 월, 정, 진, 조, 위, 한, 전제는 주천자가 그들을 책봉한 시기에 따라 나열한 것이다.

이들 국가들중 어떤 국가는 실력이 강대하고, 어떤 국가는 의미가 심원하다. 사마천이 보기에, 이들 국가만이 그의 <사기>에 써넣을 가치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기타의 많은 소제후국들은 한마디로 언급하고 지나가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제후국들 중에 누가 진정한 1인자일까?

우리가 <사기>를 뒤적여보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제나라도 아니고, 노나라도 아니고, 진(晋)나라도 아니며, 초나라도 아니다. 진(秦)나라도 아니고 정나라도 아니다. 그런 무구인가? 바로 오(吳)나라이다.

오나라야말로 여러 제후국들 중에서 1인자였던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들 제후들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배열했다:오, 제, 노, 연, 관, 채, 진(陳), 기, 위(衛), 송, 진(晋), 초, 월(越), 정, 조, 위(魏), 한, 전제.

우리는 알고 있다. 춘추의 역사에서 제환공이 먼저 굴기한 후, 진문공이고, 진문공이 굴기한 후, 초장왕이다. 초장왕이 패자로 있을 때, 오나라는 아직 동남의 만황지지(蠻荒之地)로 원시부락이었다. 사람들은 옷도 입지 않았다. 수레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이 아직 개화되지도 않았고, 중원인의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빈곤한 소부락이 어떻게 하여 신속히 굴기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신속히 천하를 쟁패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공인된 제후중 제1인자가 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