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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교16

모택동 사후의 사인방(四人幇) 글: 서염(徐焰) 1976년 9월 9일, 모택동(毛澤東)이 서거한 후 1시간여가 지난 새벽2시경 중앙정치국은 202루(樓)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하여, 장례문제를 논의했다. 강청(江靑)은 회의에서 울며불며 소란을 피웠다. 그녀는 모주석이 등소평(鄧小平)때문에 화가 나서 죽은 것이라고 말하.. 2012. 1. 24.
요문원(姚文元): 잉크병안에서 기어올라온 정계고위층 글: 하국승(夏國勝) 요문원의 일생은 붓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해를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는 사람을 해치더라도 잘 해쳤고, 명리(名利)를 다 거둔 것은 3번이었다: 첫번째는 호풍을 비판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둘째는 <영이비고(靈以備考)>로 새로운 스타가 되.. 2012. 1. 11.
주은래 사망당일의 중국고위층동향 글: 여위(余偉) 1976년 1월 8일 9시경, 주은래가 입원해있는 병실 바깥의 벨이 돌연 울렸다. 이는 긴급상황을 대비하여 만들어놓은 벨이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모두 빠른 걸음으로 병실로 달려갔다. 거의 동시에 계기상의 심박수가 나타났다: 70여회. 계속하여 100여회를 .. 2012. 1. 8.
주은래의 총리지위를 위협했던 두 인물 글: 김산(金汕) 주은래는 신중국의 제1대 총리로서, 27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이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27년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문화대혁명시기에 그의 자리는 가장 큰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왕홍문(王洪文.. 2011. 3. 21.
장춘교(張春橋)의 죽음 글: 섭영렬(葉永烈) 2005년 5월 10일, 신화사는 북경발로 <<임표,강청반혁명집단사건의 주범 장춘교 병사>>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임표, 강청 반혁명집단사건의 주범 장춘교가 암으로 2005년 4월 21일 병사하였다. 장춘교. 88세, 1981년 1월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에서 사형, 2년.. 2011. 1. 12.
모택동의 다섯 명의 후계자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화국봉(華國鋒, 화궈펑)은 모택동이 다섯번째로 선택한 후계자이다. 유소기(劉少奇, 류샤오치)가 모택동이 선택한 첫번재 후계자이고. 1945년 중공칠대(中共七大, 중국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유소기는 모택동의 후계자라는 신분으로 나타났다. 그때 유소기를 위해서 여론을.. 2008.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