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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완15

제갈량 vs 이엄 (3): 촉국 인재고갈의 원인이었을까? 글: 의사리(衣賜履) 230년, 이엄은 제갈량에 의해 한중으로 옮겨가고,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를 관리한다. 231년, 봄에 제갈량은 다시 기산을 나선다(제4차북벌). 이엄은 양초의 운송을 책임진다. 이번 북벌은 제갈량과 사마의가 처음으로 맞붙은 전투였다. 구체적인 전황은 여기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여름,가을이 교체하는 시기에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고, 양식운송이 되지 않았다. 이엄은 참군 마충, 독군 성번을 보내 제갈량에게 철군하도록 말을 전한다. 제갈량은 그리하여 철군한다. [의사리] 이엄이 제갈량에게 철군을 통지하였다는 내용의 원문은 이러하다: "평견참군호충(平遣參軍狐忠) 독군성번유지(督軍成藩喩指), 호량내환(呼亮來還)" 여기의 유지(喩指)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이엄이 후주 유선의 뜻이라고 .. 2022. 3. 9.
"승상(丞相)"과 "재상(宰相)"은 어떻게 다른가? 글: 독립학자(獨立學者) 중국고대역사상 '승상'은 중요한 관직이었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제갈량(諸葛亮), 조조(曹操)라는 두 승상은 각자 조정이 대권을 장악한 바 있다. 승상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 2019. 12. 30.
제갈량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제갈량의 북벌은 삼국시기 촉한승상 제갈량이 광부한실(匡扶漢室), 천하통일을 위하여 228년 봄부터 234년 겨울까지 전후로 한중을 출발하여 조위에 일으킨 5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제갈량의 북벌에 대하여 결국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피로가 누.. 2018. 12. 28.
제갈량 사후 유선이 30년이나 촉한을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을 얘기하면 세상사람들은 모두 멸시한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의 눈에 유선은 "도저히 안되는 아두(阿斗)"이기 때문이다. 심한 사람은 그를 "망국(亡國)의 혼군(昏君), 상방(喪邦)의 용인(庸人)"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실한 유아두는 도.. 2018. 11. 15.
제갈량이 염두에 둔 군사후계자는 누구였을까" 글: 정정(丁丁) 제갈량의 임종전에, 개인의 후사에 대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고, 많은 것은 촉한의 인사안배였다. 정치 방면의 후계자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이 지정한 사람은 장완(蔣琓), 비위(費褘)이고, 사실상 동윤(董允)도 있다. 이들 3명은 제갈량과 더불어 "촉한사상(蜀漢.. 2017. 1. 28.
장완(蔣琬)의 기도(氣度) 글: 유건명(劉建明) 소위 "기도"는 기실 인품(人品)이다. 비판하는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결과는 심히 우려될 수밖에 없다. 장완은 삼국시대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가이다. 그는 승상으로 12년간 재임.. 2015.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