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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역지11

영태공주릉(永泰公主陵): 무측천 손녀의 묘에 얽힌 이야기... 글: 야독문사(夜讀文史) 1958년, 섬서(陝西) 함양(咸陽)부근의 양산(梁山)에서 채석노동자들이 산을 깎아 돌을 캐고 있었다. '쿠궁'하는 큰 소리와 함께, 열린 깨트린 돌의 아래에 크기가 균일하고, 배열이 나란한 돌로 쌓은 석벽이 발견된다. 이는 분명 능묘(陵墓)이다. 공사팀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현지의 문화재당국에 연락한다. 문물국은 소식을 들은 후, 즉시 고고인원을 파견하여 현장조사를 진행한다. 사료기재를 종합하여, 연구자들은 이곳은 당고종(唐高宗) 이치(李治)와 여황 무측천(武則天)의 합장능인 '건릉(乾陵)'이라고 판단한다. 그후 몇년간 고고학자들은 건릉주변을 탐사했고, 차례로 여러개의 배장묘(陪葬墓)를 발견한다. 그중 1킬로미터 바깥의 배장묘는 전문가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 묘는 총면적이 .. 2023. 4. 10.
상관완아(上官婉兒)의 묘지명(墓誌銘): 드러난 역사의 진실 글: 오붕(吳鵬) 2022년 4월 28일, 당나라의 상관완아묘지명이 섬서고고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일반대중에게 전시되기 시작했다. "건괵재상(巾幗宰相)"이라고 불리던 상관완아의 신세내력은 수수께끼로 휩싸여 있으나, 재주와 학문은 남자들에 못지 않았고, 운명은 기구했다. 그녀의 조부인 상관의(上官儀)는 무측천을 축출하려다가 죽임을 당했으나, 그녀는 무측천의 심복이 된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이당황실의 편에 섰으나, 오히려 당시 임치왕(臨淄王)이던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에게 피살당한다. 전통적인 정사와 세상에 전해져 내려오는 야사에서 상관완아의 본모습은 가려져 있었다. 새로 출토된 묘지명은 아마도 상관완아에 대한 이미지를 역사에 가깝게 환원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성참정의 역사적 진전을 이루었고, .. 2022. 5. 24.
해독이 어려운 건릉(乾陵)의 무자비(無字碑) 글: 중원수장대강당(中原收藏大講堂) 섬서에 위치한 건릉은 당고종 이치와 여황 무측천이 묻혀 있다. 그래서 중국역대제왕릉중 유일하게 두 황제가 합장된 묘이다. 능원내성 주작문밖의 사마도 서쪽에 당고종 이치의 문치무공을 칭송하는 공덕비인 "술성기비(述聖記碑)"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동쪽에 나란히 서 있는 비는 바로 그 유명한 "무자비"이다. "무자비"는 완전한 거석을 조각해서 만들었다. 높이는 7.53미터, 너비는 2.1미터, 두께는 1.49미터, 총중량은 98.84톤에 달한다. 비의 윗쪽에는 8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신(碑身)의 양측에는 '승룡도(昇龍圖)'가 새겨져 있다. 용의 몸은 튼튼하고, 자태는 신선처럼 표일하다. 전체적으로 비는 웅혼하고 조각도 정교하여 황실의 위엄을.. 2021. 4. 21.
포스트 무측천시대의 여성정치참여현상 글: 정아여(鄭雅如) 705년 2월, 여황 무측천(武則天)이 병이 들어 상양궁(上陽宮)에 드러누웠다. 재신(宰臣) 장간지(張柬之)등은 그 기회를 틈타 여황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쥐고 있던 장역지(張易之) 형제를 주살하고, 여황을 퇴위하도록 핍박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밀어내고, 황태자를 .. 2019. 11. 15.
신룡정변 5대공신의 최후는? 글: 소조(篠趙) 봉각시랑(鳳閣侍郞) 장간지(張柬之), 난대시랑(鸞臺侍郞) 최현위(崔玄暐),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 경휘(敬暉), 우우림장군(右羽林將軍) 환언범(桓彦範), 사형소경(司刑少卿) 원서기(袁恕己)는 우우림위상장 이다조(李多祚), 좌우림장군 이흥종(李興宗)등과 연합하여, 이현(.. 2019. 1. 28.
양국충(楊國忠)의 부인과 애인 글: 사지동(謝志東) 양국충은 당현종 시기의 유명한 간상(奸相)이다. 그는 양귀비의 먼 친적 오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적에서는 모두 양국충이 양귀비의 언니인 괵국부인(虢國夫人)과 간통했다고 적고 있다. 예를 들어, <구당서.양국충전>에서는 "귀비의 언니 괵국부인은.. 2018. 12. 2.
무측천은 하야후에 어떻게 여생을 보냈을까? 글: 두문자(杜文子) 무측천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도 갈수록 허약해졌다. 신룡원년에 무측천은 이미 병으로 침상에 누워서 일어나질 못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무측천의 모든 것이 귀찮아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그저 장역지(張易之), 장창종(張昌宗) 형제만이 그녀를 곁에서 .. 2018. 7. 27.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차목탑교패(借木搭橋牌) 농업, 공업, 상업을 경영하건, 아니면 제왕의 사업을 투기적으로 경영하건 차목탑교(나무를 빌려 다리를 놓는다)의 방식은 상책중의 상책이다. 무슨 일을 하건 먼저 어느 정도의 본전을 투입해야 한다. 여불위 같이 제왕지업(帝王之嶪)을 경영하면 일본만리(一本萬利)할 수도 있다. 그리.. 2015. 10. 11.
무측천은 임종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무측천의 심정은 처량했을 것이다. 그녀가 여황제로 있을 때, 모든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측천은 자신이 하늘과 통한다고 여겼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사서에서는 무측천이.. 2013. 12. 8.
당나라의 명재상 요숭(姚崇)은 어떻게 정적에 대처했는가? 글: 소풍(小楓) 당시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재상은 큰 수수께끼이다. 생각해보라. 깊은 저택에 앉아서, 호풍환우의 능력을 지니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누가 그의 생각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요숭은 바로 이런 재상이었다. 그는 650년에 태어났고, 섬주 섬석(지.. 2012.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