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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11

주체(朱棣)와 주고후(朱高煦): 닮은꼴 부자의 서로 다른 운명 글: 두문자(杜文子) 주고치(朱高熾)는 주체의 적장자(嫡長子)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무예에는 능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주체의 마음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후계자는 아니었다. 반대로, 주체는 정난지역때 많은 공을 세우고, 여러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차남 주고후를 높이 평가하고.. 2018. 7. 11.
중국에서 1000년이상 개명하지 않은 역사도시들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12. 남창(南昌)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인 959년 남당(南唐)은 홍주(洪州)를 남창부(南昌府)로 승격시킨다. 지금까지 1000여년이 흘렀다. 11. 복주(福州) 당(唐)나라 개원13년(725년), 원래의 민주(閩州)를 복주(福州)로 개명한다. 지금으로부터 1300년전의 일이다. 10. 양주(.. 2018. 6. 26.
유파(劉巴): 유비가 전중국을 쫓아다녀 가장 힘들게 얻은 인재 글: 모운서(慕雲舒) 사람들은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삼고초려"한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비의 수하에 있는 인재중에서 얻을 때의 난도로 따지자면 제갈량의 삼고초려는 첫째가 아니다. 첫째는 당연히 유비가 중국의 거의 절반을 돌아다녀서야 겨우 얻은 유파라고 해야할 .. 2018. 5. 10.
송(宋) 요(遼)간의 4대전투 글: 장효민(張曉珉) <요사(遼史)>의 기록에 따르면, 짧은 13일내에 송나라와 요나라간에는 4번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4번의 전투결과에 대하여 <요사>에는 역사책이 영원히 기록하고 있지만, <송사>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송,요의 제1차대전은 십일월 초하루에 발생한.. 2016. 8. 6.
손권이 유비에게 "차형주(借荊州)"해준 것은 부득이한 조치였다. 글: 양민복(楊民僕) 역사상 유비는 '차형주'하였고, 한번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은 철두철미한 '무뢰한'이라는 견해가 있다. 손권은 부인도 주고 병사도 잃었으며, 호의를 베풀었지만 보답은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람의 동정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손권과 같이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 2015. 2. 10.
같은 이름의 시,현(市,縣). 글: 십년감시(十年砍柴) 몇년전, 한 외지의 친구가 인터넷에서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차를 몰고 가면서 원래 소양시(邵陽市)로 가려고 했는데, 길표지판을 따라가보니 시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소양현성(邵陽縣城, 즉 당도구진(塘渡口鎭)으로 갔다. 만일 호남성의 지리에 .. 2014. 11. 6.
하장령(賀長齡): 좌종당(左宗棠)을 키워준 인물 글: 기련해(紀連海) 중국역사상 소인물들이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양발(梁發)과 임칙서, 홍수전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대인물이 또 다른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준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얘기할 내용이다: 좌종당은 누가 키워.. 2014. 9. 8.
유비는 '적벽대전'을 이용하여 어떻게 자신의 세력을 키웠는가?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유비의 가장 열정적인 시기는 적벽대전을 전후해서일 것이다. 이전에 그는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고, 어느 곳도 머물 곳이 없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의탁했으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황숙'이라는 명분은 그럴 듯하기.. 2014. 6. 23.
황포군관학교의 4개 분교 글: 마려(馬麗) 제1차국공합작이 실현된 후, 국민혁명사업에 충성하기로 뜻을 세운 군사인재를 배양하기 위하여, 1924년 5월, 손중산(孫中山)은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주 황포에 중국국민당육군군관학교(1926년 3월에 중앙군사정치학교로 개칭함), 간칭 "황포군관학교"를 .. 2013. 11. 24.
비전형적인 청백리 증국번: 청백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일을 하기 위해서 글: 요망동방주간 증국번이 사망한 후, 증씨집안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을 잃었고,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다. 증국번이 죽은 후 5년째 되는 해, 아들 증기택은 가족의 병이 위중했으나, 치료할 돈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좌종당에게 부탁하여 멀리 신강에 있던 유금당(劉錦棠)에게 돈을 빌.. 2013.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