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도시

같은 이름의 시,현(市,縣).

by 중은우시 2014. 11. 6.

글: 십년감시(十年砍柴)

 

몇년전, 한 외지의 친구가 인터넷에서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차를 몰고 가면서 원래 소양시(邵陽市)로 가려고 했는데, 길표지판을 따라가보니 시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소양현성(邵陽縣城, 즉 당도구진(塘渡口鎭)으로 갔다.

 

만일 호남성의 지리에 관해 이해가 부족하면 소양에서만 이런 잘못을 범하게 되지 않는다. 호남성에는 장사시(長沙市)와 장사현(長沙縣)이 있고, 악양시(岳陽市)와 악양현(岳陽縣)이 있으며, 형양시(衡陽市)와 형양현(衡陽縣)이 있다. 호남성의 사람들은 왕왕 현청을 성사진(星沙鎭)에 두고있는 장사현을 '소장사(小長沙)'라고 불러서, 성회(省會)인 대장사(大長沙)와 구분한다.

 

이 '대소의 구분'은 외지인으로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설사 소양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18살때 소양을 떠나 북상한 사람도 자신의 고향을 소개할 때 역시 설명하는데 힘이 들게 된다.

 

중국의 전통적인 견해대로라면, 한 사람의 적관(籍貫)은 '성에 현의 이름을 더한다(省加縣名)'. 예를 들어 누구는 '적예호남상담(籍隸湖南湘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호남성 상담현 사람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적예호남소양"이라고 했다면 자연히 그의 적관은 호남성 소양현이다. 중간의 부급(府級) 행정단위는 생략해버린다. 그러나 근 100여년동안, 중국의 현, 시의 구획은 변화가 너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한두마디 말로 자시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설명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본인을 예로 들면, 호남성 소양시 신소현(新邵縣) 사람이다. '시'는 성, 현의 중간에 있는 행정구역이다(등급은 명청시기의 부(府)에 상당한다). 최근 20여년동안 유행한 행정구역이다. 신소현은 1952년에야 비로소 서립되었다. 소양현과 신화현(新化縣)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합하여 이루어졌다. 나의 집은 원래 소양현에 속했다. 그러므로, 나의 부친, 조부가 젊어을 때 적관을 써넣을 때면, '소양현'이라고 적었다. 정확한 적관을 적자면, 나의 모든 인사자료에 써넣어야 하는 것은 '호남신소'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신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아예 어디인지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은근슬쩍 '나는 호남 소양사람이다'라고 하게 된다. 어쨌든 신소현도 소양시에 속하니까.

 

소양시와 소양현은 이름이 같다. 이것은 최근 100여년동안의 중국행정구역의 변화, 지명의 변화가 빈번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소양시의 관할지역에는 일찌기 소릉군(邵陵郡), 소주군(邵州郡)과 보경부(寶慶府)의 건제가 있었다. 그러나, '소양'은 1913년이전의 일천여년동안 계속하여 현의 명칭이었다. 시와 현이 같은 이름을 쓰게 된 원인은 바로 1913년 중화민국이 폐부설도(廢府設道, 부를 폐지하고 도를 설치함. 도는 나중에 행정공서(行政公署)가 됨)하였기 때문이다. 즉, 성과 현의 중간에 있던 부를 폐지하고, 여러 현을 합하여 느슨한 전구(專區)를 설치하여 성부에서 공무원을 파견하여 다스렸다.

 

명청의 양대 근 600여년동안, 중국의 부,현의 구획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소양현이 소속된 보경부를 예로 들면, 계속하여, 소양, 신화, 신녕, 성보사현에 무강주를 더해서 속칭 '오읍(五邑)'을 관할했다. 보경부는 남송때 송이종의 연호에서 따왔다. 그가 등극하기 전에 일찌기 소주방어사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명청양대에 일부 부(府)와 수현(首縣)이 같은 이름인 경우를 제외하면(예를 들어 성도부의 두개의 수현은 성도, 화양이었고, 장사부의 2개 수현은 장사현, 선화현이었으며, 남창부의 2개 수현은 남창, 신건이었다), 대부분의 부와 부성소재 현(즉 부곽현(府廓縣))은 명칭이 달랐다.  이렇게 하면 구분이 쉬웠다. 적관을 물으면 현의 이름을 대면 그만이었다. 예를 들어, 유곤일(劉坤一)은 신녕현 사람이고, 진천화(陳天華)는 신화 사람이며, 위원(魏源)은 소양 사람이다. 문화적으로 구분하자면, 수백년간 지역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부는 모종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부'를 단위로 강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군(湘軍)'이 전성기일 때, 중요한 병원(兵源)은 보경의 5개 주현에서 나왔다. 그래서 "보용(寶勇)"이라고 불렀다. "보고로(寶古)"는 이 5개 주현의 사람을 가리키는데, 강직한 사람을 의미한다.

 

민국초기에 '부'라는 행정등급을 없애게 되면서, 원래의 부명(府名)'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처리되었다: 첫째는 부명을 완전히 폐지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귀덕부, 평양부, 여녕부, 남강부, 가응부, 휘주부등등이 그것이다. 많은 유명한 부도 이름을 잃어버린다. 예를 들어, 광주부(廣州府)는 월해도(粤海道)를 설치하고, 성구는 번옹(番禺), 남해(南海) 두 현에 속했다. 중경부(重慶府)는 천동도(川東道)를 설치하고, 성구는 파현(巴縣)에 속했으며, 소주부(蘇州府)는 강소도독행서 소재지가 되며, 성구는 오현(吳縣)에 속하게 된다; 둘째는 수현의 이름을 없애고, 부의 이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13년 보경부를 폐지하면서, 소양현은 보경현으로 개명된다; 개붕부를 폐지하면서, 수현인 상부현(祥符縣)은 개봉현으로 개명한다; 소흥부(紹興府)를 폐지하면서 부곽양현인 산음현, 회계현을 합병하여 소흥현이라고 하게 된다; 항주부를 폐지하면서, 부곽현인 전장, 인화현을 합병하여 항현(杭縣)이 된다.

 

민국초기의 이런 행정구역개편으로 행정구역은 엉망진창이 된다. 역사가 유구한 많은 부성의 지명이 사라지게 된다. 생각해보라 세상에 광주, 소주, 항주, 중경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1920년대 특히 국민당이 북벌에 성공한 후, 중앙정부는 일부 시정을 하게 된다. 그중 한 가지 조치는 바로 성구(城區, 도시구역)을 현에서 떼어내어 단독으로 성할시(省轄市)를 두는 것이다. 시, 현의 분리가 시작된 것이다. 에를 들어, 1921년 손중산 대원수부의 아래에 광동은 광주시를 설치한다. 손중산은 아들 손과(孫科)를 시장에 임명한다. 이 때로부터, '시(市)'는 행정구역이 되었고, 등급이 '현(縣)'보다 높아졌다. 이전까지,중국의 현(당덕강의 고증에 따르면, '현이불봉(懸而不封)"이라는 의미라고 하며,춘추시대의 하나의 국(國)에 상당한다. 그래서 현령을 백리후(百里侯)라고 불렀다)은 시보다 컸었다. 이전까지 시는 그저 상품거래하는 장소를 가리켰고, '성(城)'과 마찬가지로 어느 현의 관할에 속했다. 예를 들어, 진시(津市, 원레 풍현에 속했고, 진시진이다), 소양현의 양시진(兩市鎭, 지금의 소동현성)이 그것이다. 1928년 소주시가 설치되고, 1927년 항주시가 설치되며, 1929년 중경시가 설치된다. '보경'이라는 이름은 이 개혁에서 완전히 버림받는다. 1928년 보경현은 소양현으로 이름을 되돌린다. 원래 보경부성의 상업번화정도, 거주주민수 그리고 지리위치가 확실히 광주, 항주, 중경, 소주만 못했다. 소양현경에서 분리해내서 '보경시'를 만들만한 정도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조치는 나중에 시, 현의 이름이 같아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민국때, 다수의 수현에서 떨어져 나온 시는 현치(縣治)와 같은 성에 있으면서, 시는 성(城)을 다스리고, 현은 향(鄕)을 다스리는 것으로 임무를 나누었다. 서로간에는 통할관계가 없었다. 시는 다수가 성의 직할이고, 수개현을 관할하는 행정전구가 이 시에 '차주(借駐)'했다. 성할시로 승격하지 못한 수현은 여전히 청나라때와 마찬가지로, '성시(城市)'가 현의 안에 있었다. 하나의 행정구역이 아니었다. 에를 들어, 민국시대에 소양현은 소양도시지구를 관할했다. 1937년, 호남성 제6행정독찰전원공서가 소양에 설치된다. "행정독찰전원공서"는 성정부에서 파견하지만 어느 등급의 정부는 아니었다. 전원(專員)의 권력은 명청앙대의 지부(知府)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닐 때, <소양일보>에 연재된 "난세황금안(亂世黃金案)'을 읽은 바 있다. 거기서 민국시대 소양현 현장인 서군호(徐君虎)이 담량과 정직에 감탄한 바 있다. 현재 생각해보면, 서군호가 전원에 맞서서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담량이 남다른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당시의 현은 행정적으로 보자면 성정부에 직속되어 있고, '전원'은 단지 성정부를 대신하여 현의 정무를 독찰하는 권한을 가졌을 뿐인 것이다.

 

1949년이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많은 현은 분할되고, 일부 새로운 현급행정구역이 나타났다. 초대형 현인 소양은 더욱 그러했다. 소양시지구는 현급시(縣級市)로 승격하면서, 남게된 소양현의 현정부를 시지역에서 옮겨서 당도구로 이전한다. 신설된 소동현과 신소현은 양시진과 양계진에 설치된다. 소양시는 '소양전원공서'의 주재지가 된다. '전원'은 전체 국가의 권력구조에서 명청시대 여러개 현을 관할하던 '지부'에 상당한다. 다만, '전구'는 민국시기의 '독찰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파출기구였고, 일급정부가 아니었다. 소양시와 소양현은 동급의 기구이고, 대소의 구분은 없었다.

 

1986년,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소양지구의 건제를 취소한다. 소양시는 전체성의 최대 도시로, 소동, 신소, 동구, 융회, 수녕, 성보, 무강, 신녕, 소양의 9개 현과 동구, 서구, 교두구, 교구의 4개구를 관할한다. 1987년 교두구는 동구에 편입된다. 1994년 3월, 부강현은 현급시인 무강시로 바뀌고, 무강시는 소양시가 대관(代管)한다. 이때부터 지급시(地級市)인 소양시가 소양현과 현급시인 무강시를 관할하게 된다.

 

1980년대말 1990년대초, 전국의 각 성, 자치구는 지구(地區)를 취소하고, 지급시로 바꾸는 것이 유행했다. '시'는 가장 혼란스러운 행정구역이 된다. 성과 동격인 직할시가 있는 가 하면(예를 들어, 북경, 상해, 천진, 중경), 계획단열시인 부성급시(副省級市)도있다(예를 들어, 심천, 청도, 하문 등등). 더더구나 지급시(地級市)인 소양, 형양, 악양, 상덕 등등이 있고, 지급시의 관할을 받는 현급시도 있다. 예를 들어, 무강, 유양, 예릉, 곤산, 상숙, 의정 등등. 그중 일부 지급시는 현과 이름이 가아서 혼란을 더하고있다.

 

일부 지구가 지급시로 바뀐 것이 늦은 경우에는 시,현이 같은 명칭이 되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감숙의 무위와 장액이 그것이다. 원래 무위현과 장액현은 나중에 현급인 무위시와 장액시로 바뀐다. 그리하여 무위지구와 장액지구의 주재지가 된다. 지구가 취소되어 지급시로 된 후, 현급시의 이름을 그대로 써서, '무위시', '장액시'로 되었는데 이는 단지 승격일 뿐이다. 원래의 현급시의 관할구역은 '양주구(凉州區)'와 '감주구(甘州區)'가 된다. 이렇게 하는 것도 유감은 남는다. 사람들에게 배분이 어지럽혀졌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나라때, 양주부는 무위현을 관할했고, 감주부는 장액현을 관할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꾸로 되었다. 다만 필자의 생각으로 시,현의 이름이 같은 것보다는 낫다.

 

요 몇년, 호남 소양시의 일부 인대대표는 소양시를 '보경시'로 개명하자고 건의했다. 이렇게 하면, 역사가 유구한 대부(大府)의 이름을 남겨둘 수 있을 뿐아니라, 시,현의 명칭이 같아지는 것도 피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전국에 시,현의 명칭이 같은 성,자치구에서도 이런 방식을 따를 수 있을 것같다. 예전 부의 이름을 되살려 지급시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경", "형주(衡州)", "진주(陳州)"등이 그것이다. 혹은 유명현의 이름을 회복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흥시의 이름을 남겨두면서 회계현(會稽縣)의 이름을 되살리는 것이다.

 

만일 더 나아가서, 중앙에서 '시(市)'가 4등급으로 나뉘어지는 등급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성급과 지급의 '시'만을 남기고, 직할시는 '직할도(直割都)'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경도', '상해도', '천진도', '중경도'....그리고 현급시는 일률적으로 현으로 바꾸거나 시할구(區)로 바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