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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방5

아방궁의 역사진상(9): 아방궁이 보존된 주요원인은 무엇일까? 글: 진경원(陳景元) 아방궁 문제를 연구하면서 실제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려면, 반고의 <한서>를 돌아가서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한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궁은 아성이라고도 부르고, 진혜문왕이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7): 아방궁이 불질러졌다는 사료는 어디에 있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명성조 주체는 영락4년(1406년)에 새로운 부지를 정해 북경고궁을 건설하도록 조서를 반포한다. 영락18년(1420년)에 공사는 완공되었다고 선언한다. 왜 이렇게 규모가 큰 궁전을 짧은 14년의 기간내에 완공할 수 있었을가? 원래 이것은 그저 ..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6): 후화원을 먼저 지을 수는 없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35녕에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관련된 관련 사료는 당연히 이육방선생과 그 고고팀이 아주 신뢰성있는 자료에 의하여 철저히 부정되었다. 다만, 이육방이 만일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진혜문왕때 아방궁이 건축되기 시작했다"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5): 아방궁연구의 새로운 시도 글: 진경원(陳景元) 역사상 많은 사료에서는 모두 아방궁의 규모가 엄청나게 거대하다고 했고, '삼백리아방궁'이라는 찬사를 붙였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건축군이라 칭한다. 이는 실제상황에 부합한다. 다만, 어떤 고고학자는 그중 과장된 성분이 너무 많다고 여긴다...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 (1): 아방궁 "삼백리"는 가능한가. 글: 진경원(陳景元) 만일 중국 대부분의 경전적인 사료를 뒤져보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아방궁(阿房宮)'이라는 세 글자를. 항상 진시황의 이름과 같이 나오며 둘은 굳게 연결되어 있다. 소위 "진황위무도(秦皇爲無道), 작아방지궁(作阿房之宮)"; "진축아방(秦築阿房), 영성이전(赢.. 2018.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