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항12

한혜제(漢惠帝) 유영(劉盈)은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왜 동생 유항(劉恒)에게 황위가 넘어갔을까? 글: 조문사(朝文社) 한혜제 유영이 재위하던 기간동안 비록 명목상으로 황제였지만, 사실상 권력자는 모친인 여후(呂后)였다. 유영이 사망한 후, 전소제(前少帝) 유공(劉恭), 후소제(後少帝) 유홍(劉弘)이 전후로 즉위한다. 비록 이들 둘은 허수아비라고 하기에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황제에 오르긴 한다. 사료에 따르면, "밤에, 각각 사람을 나누어 양왕(梁王), 회양왕(淮陽王), 상산왕(常山王)과 소제(少帝)를 자택에서 주살했다." 바꾸어 말하면, 유영의 6명 아들 중에서, 2명은 황제에 올랐다. 전소제 유공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반여집단(反呂集團)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에는 반여집단의 진평(陳平), 주발(周勃)등의 옹립하에,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이 즉위한다. 그렇다면, 왜 유영의 남은 .. 2020. 11. 25.
진양성(晋陽城): 중국에서 풍수가 가장 뛰어난 도시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에 이런 용흥지성(龍興之城, 개국황제가 태어난 곳)이 있다. 춘추시기에 성이 만들어진 후, 여러 황제를 배출했다. 그러나 송나라에 이르러 철저히 파괴된다. 춘추말기, 진(晋)나라의 대경(大卿) 조간자(趙簡子)의 가신 동안(董安)은 태원분지의 북단 진수(晋水.. 2019. 1. 30.
전성자(田成子): 천하를 얻기 위한 기발한 묘책 글: 삼갑제사(三甲第四) 춘추전국시대 사대부들은 윗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으며, 그 방식은 오화팔문이었다. 그중 가장 표신입이(標新立異)하고 예의염치를 다 버린 것으로는 전성자 전상(田常)을 꼽아야 할 것이다. 전성자에 대하여 얘기하면 아마도 잘 모르.. 2019. 1. 7.
유수가 황제에 오른다는 "사상최고의 참어(讖語)"는 사실일까?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1 인터넷에는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 왕망이 황위를 찬탈한 후, 그의 국사(國師)인 유흠(劉歆)은 어느 날 <적복부(赤伏符)>라는 기서(奇書)를 보고 한 마다 참어를 추산해 낸다: "유수발병포부도(劉秀發兵捕不道), 사이운집용투야(四夷雲集龍鬪野), 사칠염제.. 2018. 12. 13.
허부(許負): 한고조 유방이 19살의 그녀를 제후로 봉하다. 글: 효풍모우(曉風暮雨) 한나라5년(기원전202년), 유방이 황제를 칭한 후, 공신들에게 봉상을 내린다. 이때 나이 겨우19살의 여인이 명자정후(鳴雌亭侯)에 봉해진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한나라의 개국공신들과 함께 제후로 봉해질 수 있었을까? 이 여자의 이름은 허부이다... 2018. 10. 22.
유방의 8명 아들의 운명 글: 춘지와(春之蛙) 1. 제왕(齊王) 유비(劉肥): 하마터면 피살될 뻔했으나, 최후는 괜찮았다. 유비는 유방의 큰아들이다. 유방이 아직 결혼하기 전에 조씨(曹氏)와 좋아지내면서 유비를 낳았다. 서출이다보니 태자가 되지 못했다. 유비는 모친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유방이 이 어미없이 자.. 2018.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