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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54

리창(李强) vs 차이치(蔡奇) : 누가 2인자인가? 글: 호해(胡亥) ​ 그동안 해외매체에서 당금 중공고위층 인물들은 분석할 때, 왕왕 표면에 거치고 심도있게 들어가지 못하여 오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리창과 차이치간에 해외매체에서 시진핑이 국무원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차이치를 중용하고, 차이치에게 서기처를 총괄하는 책임을 부여한 것을 보고, 리창을 차이치가 넘어섰고, 리창은 리커창처럼 허수아비로 전락하였다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3월에 양회가 개최된 이래, 해외매체에서는 더더욱 추측에 추측을 더하여 총리가 곧 사임할 것이라든지, 곧 면직되고 차이치가 대체할 것이라는 거짓뉴스가 나오게 되었다. ​ 이런 식의 여론조작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형세를 분석하고, 시진핑정부의 주요인사들에 대한 정치배경을 제대로 파악하여 정확하게 판단.. 2024. 3. 11.
베이징에 "정변"이 발생했을까? 글: 유원명(劉元明) 최근 해외주요매체와 개인미디어 정치평론가들이 속속 베이징에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시진핑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가 중앙경위단에 통제된 후, 중남해에 연금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는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105세의 송핑의 동의를 받은 후 중앙경위단을 설득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임시중앙군사위가 만들어져, 류위안(劉源)이 군사위주석을 맡았다고 한다. 이 소식은 잠정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7중전회에서 정식으로 시진핑을 파면한 후 선포될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이 소문은 엄중하게 기본상식에 위배된다. 첫째, 시진핑이 취임한 10년이래, 일찌감치 장쩌민, 후진타오의 군사심복들은 물러나거나 교체되었고 오직 군사위부주석 쉬치량(許其亮) 한명뿐이다. 그는 단지 군.. 2022. 9. 28.
2012년 정변미수사건의 내막 출처: 미국지음(美國之音) 미국최대의 오프라인 서점 Barnes & Noble의 판매대에는 최근 영문판 신간서적 "China Duel(중국대결)"이라는 책이 올라왔다. 이 책에서는 2012년 중국내부의 경심동백(驚心動魄)할 정변미수사건의 내막을 소개하고 있다. 만일 정변의 결과가 달랐더라면, 분명 오늘날의 "동태청령"이나 홍콩의 "일국양제"의 분쇄등등도 없었을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정국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작자인 향양(向陽)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중공의 당파투쟁과 정치체제에서 외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부사정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외부의 중공내부에 대한 의문은 모두 이 책 안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고위층의 내막은 모두 내가 근.. 2022. 7. 5.
소위 "주룽지 9개조 건의"의 배후는 간단하지 않다. 글: 석산(石山) 3월 17일,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의 보도를 소개한 바 있다. 그 글에서는 소위 내부소식통의 말을 인용해서, 일부 중공원로들이 시진핑의 연임을 반대했다는 것인데, 특별히 중국의 전 총리 주룽지(朱鎔基)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현재 이 소식에 진전된 내용들이 나오고 있다. 트위터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주룽지가 중공중앙에 9개조의 건의를 냈다는 것이며, 이는 당중앙에 보낸 서신이라고 한다. 낙관일자는 3월 10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날짜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와 부합한다. 이 "9개조"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지금 증거도 없고,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다만 어떤 각도에서 보자면 진위를 가릴 필요도 없는 것같다. 우리는 먼저 이 "9개조"의 대체적인 내용부터 살펴 보.. 2022. 4. 1.
리커창의 후임자는 누가 될 것인가? 글: 종원(鍾原) 3월 11일, 리커창은 관례에 따라 양회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총리를 맡은 마지막 1년"이라고 말했다. 1년후 리커창의 뒤를 이을 후임총리는 누가될지, 리커창 본인의 거취는 어떻게 될지, 리커창의 발언을 통해서 단서를 알아보기로 하자. 과거 4번의 중국총리는 모두 부총리가 이어받았다. 이번 전인대에서 부총리를 추가로 선임하지는 않았다. 중국국무원의 과거 4차례의 총리교체관례를 보면, 모두 부총리중에서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2008년, 리커창은 중공정치국상위의 신분으로 부총리로 승진한다. 5년후 원자바오의 뒤를 이은 총리로 내정되었다; 2013년, 원자바오가 총리에서 물러난 후, 리커창이 총리에 오른 후 지금까지 맡아왔다. 1998년, 원자바오는 중공정치국상위, 중앙서.. 2022. 3. 15.
헝다(恒大)사태로 본 중국 글: 걸삼(傑森) 우리가 오늘 얘기할 것은 헝다의 일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 여러분은 중국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얘기하고 있고, 저도 지난 주에 프로그램에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다만, 지난 주에 발전한 것을 보면, 헝다의 문제는 이미 중국당국이 언제 손을 내밀어 헝다를 구해주느냐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헝다는 이미 중국당국이 단계적으로 통제가능한 환경하에서 폭탄을 터트리면서 위험요소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이런 견해는 현재 국내외에서 어떻게 헝다채무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대한 주류의 관점과 반대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보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인터뷰한 모든 은행가, 금융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은 모두 중국당국이 헝.. 2021. 9. 21.
보시라이(薄熙來) 비서실장의 낙마는 20대 내부투쟁의 시작인가? 글: 진사민(陳思敏) 7월 13일, 전 국가양식국 부국장 쉬밍(徐鳴)이 조사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관영매체의 보도는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쉬밍은 일찌기 상무부와 충칭에서 일했으며, 일찌기 보시라이의 '비서실장'이었다고. 쉬밍은 2013년 3월 국가양식국 부국장이 된다. 당시는 보시라이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후였다. 황치판(黃奇帆)을 제외하고 보시라이의 당시 심복수하들은 모조리 제거되었었다. 중공 18대이래 호랑이를 잡는 방식은 먼저 호랑이의 비서실장부터 낙마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쉬밍은 보시라이의 충칭에서의 비서실장이었고, 충칭에서의 '창홍(唱紅)'의 중요군사였는데, 단지 국가양식국으로 전보되었을 뿐, 부부장급(차관급)의 대우는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의 여론에 따르면 쉬밍의 연착륙은 분명 '귀인'.. 2021. 7. 16.
중공20대: 딩쉐샹(丁薛祥)의 거취는...? 글: 호연삭(呼延朔) 중공중앙 정치국위원중 오직 3명밖에 없는 "60후"중 한명인 중앙판공청주임 딩쉐샹은 모든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 중에서 두번째로 나이가 젊다. 그는 오직 1963년생인 국무원 부총리 후춘화(胡春華)보다 1살이 어릴 뿐이다. 정치국위원중 또 다른 "60후"는 충칭시위서기 천민얼(陳敏爾)이다(1960년생). 후춘화 및 딩쉐샹과 함께 이들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을 기회가 있다고 여겨진다. 2022년의 중공20대때 딩쉐샹은 만60세가 된다. 외부에서는 그가 계속 중앙판공청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직위를 맡을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딩쉐샹은 상하이에서 성장한 관리이다. 사실상 1999년에 정식으로 관계에 들어왔다. 이전에 그는 상하이재료연구소에서 근무했고, 14년간 보통연구원에서 .. 2021. 7. 1.
중국의 차기 총리는 후춘화(胡春華)일까? 글: 소미(蘇米) 중국헌법 제87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무원의 매기의 임기는 전인대대회의 매기 임기와 같다.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의 연임은 2기를 초과할 수 없다." 는 7월 21일 이렇게 보도했다. 리커창은 2013년 제12기 전인데 제1차회의에서 총리에 취임했다. 헌법의 규정에 다르면, 그의 임기는 2013년 제14기전인대 제1차회의에서 임기가 만료된다. 그리고 관례에 따르면, 새 총리는 반드시 전인대에서 임명되기 1년전의 당대표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리커창의 후계자는 반드시 2022년 가을에 개최되는 제20대에서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점은 건국총리인 주은래를 제외하고, 국무원의 역대총리는 취임전에 반드시 부총리 경력을.. 2020. 7. 21.
중국 고위층에 코로나확진자가 나온 것일까? 글: 종원(鍾原) 6월 11일 베이징에서 돌연 코로나확진자가 나타난 후, 중국고위층들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권력중심을 지키지 못하여, 중국고위층들은 부득이 떠나야 했다. 권력공백은 두려운 일이지만, 감염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 옛날 SARS때도 중남해는 마찬가지였다. 2003년, SARS가 광둥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베이징으로 퍼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중공총서기 후진타오와 국무원총리 원자바오, 국무원부총리 우이등이 A조로 운영되었다. 베이징을 지키면서 1선방역업무를 주재하였다. B조관리들에는 국가부주석 쩡칭홍, 전인대상임위원장 우방궈, 상무부총리 황쥐등은 최대한 공개활동을 제한하여, 감염기회를 감소시켰다. 나머지 중공의 은퇴한 고위층 장쩌민, 주룽지, 리펑등.. 2020.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