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명원24

원명원(圓明園) 이야기 글: 전심생(田沈生) ​ 얼마전 인터넷에서 유머 하나를 보았다: 소명(小明)이 역사수업때 잠이 들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보고 돌연 질문을 했다. 소명학생 원명원은 누가 불태우고 파괴시켰지? 잠에서 덜 깬 소명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급히 대답했다: 제가 불태우고 파괴한 게 아닙니다. 절말 제가 안했습니다. 선생은 화가나서, 수업이 끝난 후, 소명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 아들이 원명원을 그가 불태우고 파괴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명의 졸부 부친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이 자식이 또 말썽을 부렸군요. 그 놈이 불을 질렀건 아니건간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십시오. 얼마를 배상해주면 됩니까. 우스개는 우스개인데, 이는 나의 원명원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환기시켰다. ​ 원명원.. 2024. 2. 20.
경신지변(庚申之變): 1860년의 영불연합군(하) 글: 구양철생(歐陽哲生) 외교조약의 체결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의식이다. 청나라의 전통적인 관례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외국인과 북경에서 담판하고 직접 조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제2차아편전쟁을 종결시키는 은 청나라가 처음 북경에서 서양인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이 관례를 깬 것이다. 청나라조정에 있어서 실로 영불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해서 압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역사가들은 역대이래로 체결된 조약의 내용을 주목했고, 조약체결현장의 내외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실 북경에서 조약을 체결한 것은 그 자체가 연구해볼만한 중요한 이슈이다. 영국군은 원명원을 불태운 후, 공친왕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들은 이 조치의 의도를 표명하고, "30만은냥을 피해자가족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 2023. 6. 25.
경신지변(庚申之變): 1860년 북경의 영불연합군(상) 글: 구양철생(歐陽哲生) 1860년의 "경신지변"은 근대중국이 급전직하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또한 청나라 통치집단이 진정으로 깨닫고, 자구자강을 도모한 시작점이다. 이 해에 영불연합군은 원명원(圓明園)을 불태우고, 안정문(安定門)을 점령했다. 청나라조정은 어쩔 수 없이 영불연합군과 을 체결하게 된다. 만일 제2차아편전쟁이 끝났을 때 을 체결한다. 그것은 단지 아편전쟁의 재판이었다. 나중에 다시 곡절이 생겨 제2차아편전쟁은 새로운 업그레이드버전, 확대버전으로 상승하게 되고, 전쟁은 쌍방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역사의 조류는 열려진 갑문처럼 더 이상 청나라통치자의 의지대로 흐르지 않았다. 중국은 영불연합군의 무력공세에 밀려 자본주의세계의 식민체계로 한걸음 더 빠져들게 된다. 제2차아편전쟁은 중국.. 2023. 6. 25.
원명원(圓明園): 중국이 감추는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글: 사로(思蘆) 원명원유적지는 중국의 애국주의교육기지이다. 중국이 열강으로부터 침략받은 굴육사를 증명하는. 다만,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단지 절반만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샤오펀홍들이 걸핏하면 원명원을 가지고 서방에 대한 원한을 표시하는데,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원명원을 불태운 사건은 소위 제2차아편전쟁때 일어났다. 1. 전쟁의 원인과 과정 제2차아편전쟁이라는 명칭은 오인시킬 수 있다. 제2차아편전쟁은 아편과 완전히 무관하다. 오히려 남경조약에 규정한 입성, 조약수정등 요구를 청나라정부가 온갖 방법으로 제지하고, 또한 홍콩에 등록된 애로우호(亞羅號)선박이 청나라수군에 수색을 당하고, 프랑스 선교사가 광서에서 지방관리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벌어.. 2023. 5. 9.
팔국연합군이야말로 중국인민해방군이다 - 아편전쟁이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이다. 글: 우별자(右撇子) 중국의 우민교육은 황당 그 자체이다. 중공이 만들어낸 각종 정치용어를 보면, 코메디와 몰염치로 충만핟. "해방(解放)"이라는 말을 보기로 하자. 곳곳을 다니며 강탈하고는 모두 '해방'이라는 명목을 붙인다. 전중국을 해방했다는 것은 기실 전중국을 강탈하여 자기 소유로 했다는 말이다. 특히 '대만해방'이라는 것은 더욱 가소롭다. 대만인들을 아주 잘 살고 있는데, 한 무리의 '못사는 자'들이 하루종일 '대만해방'시키겠다고 떠들고 있다니, 자신은 발에 족쇄를 달고서, 다른 사람을 해방시켜주겠다고 떠들고 있다. 이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중국인의 일상언어를 보면, 우리는 자주 해방전에 어떠했고, 해방후에는 어떻고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공산당이 국민당과 강산을 쟁탈한 전쟁을.. 2023. 1. 13.
1861년: 함풍제(咸豊帝)와 공친왕(恭親王) 글: 언구림(言九林) 1861년, 러시아는 농노제를 폐지했고,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제국의 운명도 마찬가지로 미묘한 전환점에 놓여 있었다. 이 해에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청나라조정에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 성립되었고, 다른 하나는 함풍제가 열하(熱河)에서 사망한다. 1. 함풍제의 존엄 총리각국사무아문은 이 해의 1월에 성립된다. 나중에 '총리아문'이라고 약칭된다. 이전에 외국관련업무를 처리하던 중앙기관은 "무이국(撫夷局)"이었는데, 이는 임시기구였다. "무이"에서 "총리각국사무"로 바뀐 배후에는 청나라조정의 외교에 대한 심리상태가 미묘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함풍제 혁저(奕詝)에 있어서, 도광제(道光帝) 시절 '영이(英夷, 영국오랑캐)'에 패배한 것.. 2022. 8. 9.
왜 청나라의 황후들은 곤녕궁(坤寧宮)에 거처하지 않았을까? 글: 역사순간(歷史瞬間) 항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청나라때 황후가 곤녕궁에 거처하지 않은 것은 망자(亡者)의 회기(晦氣), 즉 죽은 사람의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나라 숭정제(崇禎帝)의 주황후(周皇后)는 이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기실 청나라가.. 2020. 2. 26.
낭세녕(郎世寧): 중국에 51년간 머문 이탈리아화가 글: 희랄인(嘻剌人) 낭세녕은 청나라의 유명한 궁중화가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낭세녕의 대명을 오랫동안 앙모하여 왔다. 나이가 들면서, 청나라황제의 배경에 대하여는 더 잘 알게 되었지만, 낭세녕에 대한 이해는 그저 "서양에서 온 궁중화가"라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청나라때 궁.. 2019. 6. 8.
화신(和珅)의 "십홀원(十笏園)"의 전세금생(前世今生) 글: 가군(賈珺) 십홀원은 '숙춘원(淑春園)'이라고도 불린다. 북경 해정구에 위치하고 있고, 명학원(鳴鶴園)의 남쪽에 있으며 화신의 교외사원(郊外賜園) 즉 황제에게 하사받은 장원이다. 예친왕 소련의 <숙정잡록>에 따르면, 건륭,가경시기 모든 왕공대신의 서교(西郊)에 있는 화원(花.. 2019. 6. 2.
몰락한 외삼영(外三營) 글: 범정(范晶) 1922년, 목유개(穆儒丐)라는 만주족작가가 심양의 <성경시보>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동명원앙(同命鴛鴦)> 이야기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주로 청말민초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책에서의 장면이 아주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 2019. 1. 9.